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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Oct 11. 2023

20여 년 만에 만난 사람

<나의 아름다운 정원, 2002>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캠퍼스 학생식당은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했기에, 한동안 햇볕이 잘 드는 통유리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책들을 읽곤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들은 3학년 가을학기 정도가 되면 그때부터 미리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었는데,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나는 졸업을 하고도 한참 동안이나 여유를 부리며 딴짓을 일삼았었다. 무언가 몰두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자꾸만 다른 것에 곁눈질을 하게 되는 딱 그 꼴이었다. 내일까지 작성해서 제출해야 할 자료가 있는데 지금도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늑장 부리며 다른 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걸 보면, 지난날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는 일이 생각만큼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당시에 주로 읽었던 건 각종 문학상을 받았던 작품들이었는데, 집 근처 도서를 대여해 주는 곳을 찾아 쉼 없이 들락날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작품을 읽는 것과는 별도로, 상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지 또 각각의 문학상 타이틀별로 어떤 성향의 글을 선호하는지 가늠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때 만났던 작품들 중 하나가 바로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 느낌이 여느 책들과는 사뭇 달랐다. 단순히 재미있었다, 좋았다, 인상 깊었다 등등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꼭 누군가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때 나는, 당시로서는 알지 못했던 그 누군가에 대해 얼마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품고 있었을까. 내 인생에서 독서라는 걸 시작한 후 처음으로 가져보는 감정이었다.


작품 속에 그려진 1977년과 1981년 사이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독의 시대였다. 어느 것 하나 이해하기 힘들었고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던 시기였다. 10.26 사태, 12.12 사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숨 가쁘게 돌아갔던 국내 정세.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그래서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난독의 시대 상황이 인왕산 아래 산동네에 자리한 동구네 집에 그대로 재현된다. 난독의 사회를 바라보는 개개인의 자세에서 치열함을 찾기란 상당히 어렵지만,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가정에 난독이 깃들면 보다 구체적인 가해와 피해가 오가는 갈등상황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진저리 치게 느낄 수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었을 분노, 좌절, 체념, 그리고 희망 등등을 독자인 나 또한 오롯이 실감할 수 있었던 소설. 난독의 희생양이 되었던 사람들과 난독을 치유하는 빛이었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소설. 어린 시절 국어 시험 문항으로나 접했던 카타르시스란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작중 화자 동구는 난독증을 가진 아이로 등장한다. 실제로 단어를 정확히 읽지 못하거나 철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학습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작품에서 중요한 건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난독증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 사이 빚어지는 갈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피하기만 한다거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시류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그런 모습의 난독증이다. 어머니 시어머니 할머니라는 존재, 아들 남편 아버지라는 존재, 그리고 며느리 아내 어머니라는 존재들 사이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상대방을 읽고 공감하려는 노력의 부재로 나타나는 난독의 결과물.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작가는 치유의 희망이 보이는 동구의 난독증을 더 부각했을지 모른다. 자상한 박영은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단어를 읽고 익히는 데 있어 개선의 여지가 엿보인다. 총명한 여동생 영주가 가족에게 선사하는 화목은, 가족 간 불화가 혹 자신으로부터 야기된 것일지 모른다는 자책으로 의기소침해하던 동구를 위로한다. 증상이 호전되는 동구 때문에 가족이 기뻐한다. 영특한 영주 때문에 가족이 웃는다. 그렇게 드문드문 가족 간의 갈등이 잦아든다. 난독이 해소되는 걸까. 그래서 박영은 선생님과 여동생 영주가 동구에게는 그저 빛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가족을 욱죄는 난독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빛무리가 결국 난독의 사회 속에서, 그리고 난독의 가정 안에서 허무하게 사그라질 때 동구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소설의 말미, 속 깊은 아이 동구의 결심은 눈물겹다.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난독의 가정에 평화를 가져오게 할 동구의 선택은 아름답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저 덧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던 선생님과 여동생의 사랑이 알게 모르게 동구의 마음속에 터를 잡고는 한 뼘 한 뼘 동구를 키워내고 있었다. 그렇게 동구는 성장한다. 마치 다른 세상인 것 같았던 아랫동네 3층짜리 부잣집, 그리고 그 안에 자리했던 아름다운 정원. 대문 틈 사이로 엿보거나 때때로 직접 드나들기도 하면서 만끽했던 정원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보면 오래전부터 동구 스스로 키워온 마음속 풍경일지도 모른다. 비록 눈에서 멀어진다 한들, 언제까지고 자신 안에서 예쁜 꽃과 나무가 자라고 귀여운 새들이 노래할 것만 같은 정원.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 독자들은, 동구가 가꿔나갈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 마음 한편에도 그려 넣고 싶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씩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지는 책을 만난다. 동구의 정원만큼이나 아름다운 문장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이 글을 과연 어떤 사람이 썼는지 알고 싶었다. 편견의 소산이겠으나 자연계열을 전공했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학창 시절 어쩌다 스치듯 캠퍼스 안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나 같은 사람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정원이 자리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했다. 돌이켜 보면 20여 년 전의 내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생각했던 건, 그때 내가 품었던 정원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혹시 그도 이 책을 읽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비로소 그 누군가를 만났다. "보는 내내 키득키득거리기도 하고, 눈물도 찔끔 나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20여 년 만에 만난 그가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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