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지금껏 들깨나 부추, 아니면 새우젓 정도를 넣어 먹은 국밥은 있었으나 씨발존나지랄을 말아 먹은 국밥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삶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국밥집이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연중무휴 24시간 운영으로 언제든 생각나면 들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용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생활 터전을 이곳으로 옮긴 후 작년에야 비로소 직장 동료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운 좋게도 집에서 가까워 그동안 출근길에 아침 식사를 하러 몇 번 들르곤 했었다. 아침잠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1인 가구라 오롯이 스스로 살펴야 하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되도록이면 아침은 꼭 먹고 있기에 생활 반경 이내 접근성 좋은 맛집이 있다는 건 나름 행운이라면 행운이겠다.
추석과 개천절이 맞물려 자그마치 6일이나 되었던 지난 연휴, 오랜만에 국밥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 추석이니 이 기간엔 영업을 안 하겠지 생각을 해야 했는데, 은연중 "연중무휴 24시간 운영"이라는 글귀가 각인된 탓인지 정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식당을 찾아갔다. 굳게 닫힌 문.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1일까지 휴무. 어느 모로 보나 이건 내 불찰이었다.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시각, 자책으로 갈아버린 간절함 때문인지 곱절로 허기가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오늘, 드디어 국밥을 먹었다. 사실 저번에 헛걸음을 한 후 월요일 비슷한 시각에 다시 찾아갔는데 웬일인지 여전히 문을 열지 않아 또다시 그냥 돌아왔었다. 분명 1일까지 휴무라 적혀 있었거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찾아보기도 했다. 오늘부터 영업을 하는 건 맞는데, 고기도 익히고 여러 가지 다시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 늦은 아침이나 오후부터 문을 열기로 한 건가. 아무리 따져봐도 이유랄 게 이것밖에 떠오르는 게 없고 또 그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어찌 되었든 연휴 기간 동안 두 번의 방문은 모두 허사가 되었고, 그렇게 기대와 좌절로 점철되었던 국밥을 마침내 오늘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그 국밥이 보통 국밥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았다. 출입문 가까이 비어있는 1인석을 찾아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이내 테이블에 올려진 국밥을 한두 숟가락 뜨던 참이었다. 식당이 그리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신경이 거슬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목소리. 전반적인 톤은 서로 엇비슷했는데 유독 비속어가 난무하는 테이블 한 곳이 있었다. 씨발, 존나, 지랄. 불금으로 밤을 새운 듯 보이는 일행 몇몇이 대화를 나누는데,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렇게 삼종세트 비속어를 섞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도 그런 단어들을 끼워 넣을 만큼 심각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비속어가 채 몇 술 뜨지 않은 내 국밥 속으로 첨벙첨벙 빠져들었다. 씨발존나지랄 아우성치며 낙하하는 비속어 때문에 한 입 한 입 국밥을 삼킬 때마다 그 맛이 시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일행 사이에 나누는 대화 그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도 친한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한 시절을 살며 희로애락을 공유했던 입장으로서 자연스레 욕도 하고 비속어를 섞으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단어들은 비단 개인의 울분을 토해내거나 적대적인 상대방을 향해 쏘아붙이는 도구로써의 기능만을 하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 상황에 따라 경직된 분위기를 완화하거나 친밀감을 가중시키는 등의 효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자든 후자든 그 나름의 효용 가치는 충분히 있으나, 다만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테이블을 흘끗 보니 그들은 이미 식사를 다 마친 상태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금세 정리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 헛걸음으로 두 번이나 맛봤던 좌절을 보상받는답시고 천천히 음미하듯 국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나는 며칠을 굶은 자다. 터무니없는 자기 암시를 하며 국밥 먹는 속도를 높였다. 뜨거움을 식히려 연신 세차게 불어대는 입김에도 불구하고, 입천장을 자극하며 끝내 목구멍을 긁고 가는 열기로 존재 증명을 하는 국밥. 씨발, 존나, 지랄. 나도 모르게 비속어를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계산을 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천장이야 좀 얼얼했을지언정 역시 내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하고는 내심 뿌듯했다. 식당 문을 나선 후 차에 올라 잠시 생각했다. 공공장소니까 주의를 해달라 요구할 만큼 그들의 목소리가 컸던 건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에 끼어들어 비속어를 자제해 달라 간섭하는 건, 요즘 세상에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엔 아무래도 애매한 상황. 그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들과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며칠 전부터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국밥에 씨발존나지랄을 말아 먹는 일도 없었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