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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Dec 19. 2023

모르는 척해줄게요

요즘 들어 카더가든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언제 처음으로 이 가수를 알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 그의 존재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바로 이 노래 때문이다. <tree>.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인디 계열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해당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보여주는 작명 센스에는 뭔가 좀 특이한 면이 있다고 늘 생각해 오던 차였다. 카더가든. 나야 한물간 세대라서 그런지 언뜻 카더라 통신 뭐 그 정도 수준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궁금해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름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었다. 킨더조이, 가터벨트, 가두리양식, 칼든강도 등등. 대부분 웃자고 한 얘기들이었겠으나, 막상 카더가든이라 이름 붙여진 유래를 제대로 알고 나서는 약간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해당 가수의 성이 차, 이름이 정원. 그래서 Car, the garden. 동료 후배가 추천한 이름이라는데, 그래도 그의 초창기 활동명 메이슨 더 소울보다는 훨씬 나은 느낌이었다.


Gray Tree (1911) / Piet Mondrian / Oil on Canvas / 79.7 cm X 109.1 cm

 

카더가든의 <tree>를 처음 들었을 때 오래전에 보았던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몬드리안의 회색 나무. 글, 그림, 음악 등등 여러 분야에서 나름의 감수성을 좀 키워보겠다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일환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읽고, 보고, 들은 후 감상문이랍시고 몇 자 끼적거리곤 했었는데 몬드리안의 이 그림 또한 그 대상들 중의 하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글들을 삭제해 버린 터라 당시에 어떤 내용으로 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적어 내려 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카더가든의 <tree>를 듣다가 이 그림이 떠오른 건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느낌으로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았던 걸까.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 / 그 안에 투박한 음악은 나예요"


삐죽삐죽 제멋대로 산발한 것 같으면서도 규칙적인 호흡으로 뻗쳐 있는 나뭇가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순간, 뭔가 정형화되지 않은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형체 같은 게 눈으로 들어온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회색 톤 때문인지 쓸쓸이 부유하는 것만 같아, 이를 지켜보는 나도 어느 순간 그 속에 빠져들어 서툰 허밍과 함께 투박한 춤동작을 일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쓸쓸을 몸을 빌려 드러낼 때, 나는 가끔씩 알몸의 남녀가 서로를 애무하며 절정으로 치달아 가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끝내 서로가 서로를 폭발하도록 하지 못한 채로 끝없이 서로를 보듬고 어루만지는 상상. 그 치열함의 끝에 다다르지 못해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려나. 이런 것도 하나의 슬픔이라면 슬픔이겠다 싶다.


지난주 토요일의 시작은 그다지 특별하다 할 만한 것 없이 여느 때처럼 평범했다. 새벽 어스름이 걷히기 전 집에서 멀지 않은 국밥집에 들러 아침을 해결했고, 곧바로 집에 돌아와 별스럽지 않은 일상의 길을 걸었다. TV를 켜고, 컴퓨터를 켜고, 카더가든의 <tree>를 반복해서 들으며 이런저런 글들을 읽었다. 가끔씩 베란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려 몇 달 전부터 품기 시작한 의원면직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세무공무원을 그만두었던 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량이 주된 이유였으나, 이번엔 뭔가 구체적으로 들먹일 만한 이유란 게 없다. 아니, 그때보다는 뭔가 투명하지 않은 이유들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사리 그 어떤 결정이란 걸 내릴 수가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게으름에 사고를 멈춘 건지, 아니면 해야 할 일임은 분명한데 그냥 늑장을 부리고 있는 건지도 잘 알지 못하겠다. 늦은 오후엔, 잠시 같은 곳에서 근무를 했던 지인 분의 여혼이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빵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추천하는 빵집으로 안내해 맛있는 빵 두어 가지를 들려줘도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듯 딱히 모난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오후 느지막이 시간에 맞춰 결혼식장에 갔다. 흰머리가 일종의 시그니처였던 지인 분은 딸의 결혼식을 위해 머리카락을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파격적이었다. 딸을 위한 선물이라 생각했다. 비록 몇 개월 동안이긴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했던 입장으로 보건대, 아마도 그에게 있어 염색은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의 머리는 다시 하얗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뜻,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축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오늘 혼인 서약을 하는 두 사람은 그의 머리가 다시 하얗게 되는 시간은 닮지 말고 그냥 그 과정만 닮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식장 맨 끝 출구 옆에 서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단상이 있는 곳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여러 하객들로 주변 또한 어수선해서 주례사의 내용도 지인 분이 딸에게 전하는 사연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한쪽 손은 팔짱을 낀 자세로 남은 한쪽 손으로는 턱을 괴고는 소리가 불분명한 장면 장면을 줄곧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뭔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 오던 감정선 하나가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출구가 바로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급히 식장을 빠져나와 복도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반투명 커튼으로 가려진 통유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가득 차올라 뺨을 타고 흐르는데, 황당하기도 하고 또 이미 흐르고 있는 눈물 때문인지 정말로 슬픈 것 같기도 한 감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들 연회장으로 장소를 옮겨가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낯선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모습.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도무지 숨길 방도가 없었다. 이런 얼굴로는 연회장에 모여 있을 일행들을 마주할 수 없겠다 싶어 그 즉시 결혼식장을 빠져나왔다. 언제부턴가 눈이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툭, 툭, 툭, 툭, 쿵, 쿵, 쿵, 쿵... 손바닥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추락의 기운을 심장으로 느끼며 차를 세워둔 야외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쉼 없이 낙하하는 눈을 보면서 심장을 짓누르는 눈의 무게를 느끼면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어서, 혹시라도 내 부재를 궁금해하는 이가 있을까 싶어 전화기를 꺼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녁도 챙기지 않고 때 이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억지로 청했던 잠이어서 그랬는지 일요일 아침 제대로 눈을 뜨기까지 깨고 잠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9시가 훌쩍 넘은 시각. 그토록 마음이 심란했던 이유를 여전히 알아내지 못한 채 브런치를 할 겸 어제 가볼 요량이었던 빵집을 찾아갔다. Ciel de France. 프랑스의 하늘. 오늘따라 그쪽 하늘은 유독 더 푸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밤새 여기저기 쏟아진 눈들이 길가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치워져 있었다. 변두리로 물러난 눈에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가끔씩 눈을 찡그리면서 평소 즐겨 먹던 빵 두어 가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빵 몇 조각을 뜯으며, 음료를 홀짝이며, 카더가든의 노래를 들으며, 몬드리안의 그림을 상상하며 모니터 화면에 띄워놓은 글을 들여다보았다. 웬일인지 눈에 들어오는 글씨들이 읽히지가 않았다. ㄱ, ㄴ, ㄷ, ㄹ, ㅏ, ㅑ, ㅓ, ㅕ.. 마치 난독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해석이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글귀 하나로 어제보다 더 큰 슬픔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가족이 없다." 나도 모르게 떠올랐던 말. 머릿속에 맴돌기만 했는지 아니면 입밖으로까지 튀어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가 나를 툭, 건드린 것 같았는데, 이 말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혼자를 혼자로서 인식하는 것과 가족이 없음으로 혼자를 돌아보는 일이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었던 건가 싶었다. 의원면직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엮어 들어갔던 여러 상념들. 카더가든의 노래와 몬드리안의 회색 나무로 상상하게 된 쓸쓸이 휘도는 춤사위. 소리가 불분명해 오히려 더 집중해서 보았던 지인 분의 여혼. 아버지가 딸에게 전하는 사연을 들을 수 없었으나 그 때문에 되려 그 장면이 더욱 크게 부각되던 순간.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상상하던 것들이 결혼이라는 의식과 맞물리며 끝내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것 같았다. 혼자인 지금의 나에게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 일가를 이룬 형이 있음에도, "가족이 없다."라는 그 문구가 왜 그렇게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눈물 때문에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하루를 온통 견디는 일로 보냈다. 견딜 수 없는 시간의 괴로움에 맞서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또다시 견디는 일뿐이었다. 도무지 견딜 자신이 없을 땐 눈을 감았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순간순간을 버텼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순간도 있겠으나, 피할 수 없으면서도 계속 피해야 하는 노력을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 동훈과 지안이 나눴던 대화 중에 가끔씩 생각나는 게 있다. 모르는 척해주겠다는 말.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말. 의원면직, 카더가든의 노래, 몬드리안의 그림, 그리고 누군가의 결혼식.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순간을 틈타 서로를 보듬고는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걸까. 아무것도 아닌 그것들 때문에 흘린 내 눈물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을 해봐도 기실 그것들은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혼자만의 다짐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게 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오래전 어느 시인은 노래했지만, 굳이 그 시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긴 하지만, 혼자라는 말로 삶을 살아가는 게 그 삶을 견뎌내는 게 짐짓 버거운 일이라는 걸 부정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가 다른 혼자에게 말을 건네는 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 걸까.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겪었던 일, 모르는 척해줄게요. 이미 알고 있으나, 그것이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이해와 공감의 몸짓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모르는 척해주겠다고 하면, 결국은 정말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에서 동훈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다 갑자기 격한 울음을 쏟아내었다. 도청장치를 제거했던 지안도 그 시각 그의 눈물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의 슬픔을 목도할 수 없었으나 시청자인 나는 달랐다. 그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모르는 척해주겠다고.


울음을 그쳤다. 철없음, 민망함, 부끄러움과 같은 것들을 마저 정리하고 휴대폰 전원을 켰다. 두 개의 카톡이 와 있었다. 걱정이 담겨있는 각각의 카톡에, 사정이 좀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며 좋은 시간 보냈기를 바란다는 짤막한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했다. 어제 일 모르는 척해주겠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군가 연락을 보내왔다면 어땠을까. 아니, 어제 무슨 일 있었냐는 연락에 나 또한 자연스레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마지막엔 다시 그에게서 모르는 척해주겠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사람이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냥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나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과 함께 떠올랐던 얼굴 하나를 지우고 나는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살다 보면, 내가 떨어뜨린 것도 아닌데, 그냥 뭔가가 나를 가볍게 살짝 건드렸던 것인데, 그 일 때문에 내 가슴 높이에 머물러 있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무게 중심을 잃고 스스로 낙하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툭, 가슴에서 발치로 떨어지기까지 그 찰나의 순간을 맞닥뜨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뒤늦게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로 서가는 중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울음으로 새삼스레 알게 된 사실 하나를 남겨 놓는다. 혼자이지만, 혼자일 것이지만, 나는 그토록 외로워 이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구나.


"모르는 척해줄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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