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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Aug 13. 2022

아침 기도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전쟁일기>>를 읽고

#1

“쾅!” 

빼곡히 45명이 모여 자습을 하던 교실의 뒷문이 닫혔다. 4월의 봄바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세게 부나 싶어 창을 바라봤다. 보관한 지 오래되어 상하기 직전, 희끄무레한 오렌지 같은 싸한 색깔의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잠시 후, 집에서 입던 옷매무새의 아줌마가 교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같은 운동장을 쓰고 있던 옆 건물 중학교로 숨을 헐떡이며 다급하게 들어가는 아줌마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아줌마들이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은 금세 풀렸다. 교무실에 갔던 출석부 담당 친구가 큰소리로 외쳤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대!

1995년 4월 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 가스 폭발사고. 246명의 사상자를 내고 600여억 원의 피해를 냈던 사고의 기록에는 집 근처 남중, 여중의 많은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아빠와 이별했던 친구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 이름도 명단에서 확인했다. 웃기고 슬프게도 당시 0교시 자습을 위해 이른 아침에 등교했던 고등학생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등교와 출근 준비를 위해 길을 나섰던 어린 학생과 많은 직장인은 하루아침에 시신이 되어 중학교 운동장에 뉘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난 줄을 몰랐던 건지, 알고도 어쩔 수 없었던 건지, 예정되어 있던 1교시 영어 듣기시험은 그대로 진행되었고, 뉴스를 보기 위해 틀었던 교실 TV에 야구 중계만 나오고 있었다. 동생을 잃은 우리 반 연극부 반장과 1년 사이에 아빠와 동생을 떠나보낸 친구의 울먹거리는 소리로 기억되는 그 날의 공포는 연해졌지만 잊을 수는 없다. 아주 오래된 TV 프로그램이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서 연상되듯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뛰어 들어오던 아줌마의 허우적대던 팔과 다리는 내 안에서 재생된다.      

#2

새 학기를 시작하고 이 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은정(가명)이가 일하는 오전 시간에 스타벅스 매니저의 전화를 받았다.

“은정이가 출근하지 않아 전화했는데, 핸드폰도 꺼져 있고 연락이 닿지 않아요.”

은정이네 집에서는 출근 시간에 맞춰 집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반 학생인 도연이(가명)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을 찾지 말라는 문자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은정이와 도연이는 친구이다. 둘이 함께 나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렇게 하루 이틀. 훌쩍 일주일이 흘렀다. 지적장애인이긴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 실종으로 보긴 힘들고 가출로 봐야 한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다. 자신을 찾지 말라며 잘 있다는 문자가 증거라고 했다. 

전단을 만들었다. 피시방, 찜질방, 모텔이 많은 곳이 어딜까 생각했다. 강남구 일대 3곳. 역삼동에서 무작정 들어갔던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이 말끝을 흐렸다. 

“어떤 남자들과 함께 왔었어요. 문신 한 남자들이요.” 

학생을 찾으러 나섰던 10명이 계획을 바꿔 P 호텔 앞에서 잠복했다. (잠복이란 단어를 이럴 때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몸을 숨긴 것이 잠복이라면 우리도 잠복한 거다. 떼거리로) 결국, 용무늬가 새겨져 있는 팔을 휘저으며 연신 자신은 은정이의 그냥 아는 오빠라던 남자 한 명, 경찰 옆에서 어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우리를 아래위로 노려보던 여자 한 명을 잡을 수 있었다. 은정이는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여자와 남자의 친구들은(아니, 일당) 도연이를 데리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은정이의 그냥 아는 오빠라고 말을 하던 남자는 강남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아, 제기랄, 그냥 목포에서 배 타고 가게 해야 했는데. 중국으로” 머리에서 전기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뇌가 잠깐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희 진짜 인간이 아니구나.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들이 장애가 있는 학생이라고 너희를 속였구나. 집을 떠나 돈 많이 벌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던 너희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 전에 다시는 도연이를 만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무서웠다.      

북한이 금강산 댐을 만드니 우리도 평화의 댐을 건설해야 한다며 모금하던 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서울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사는 곳은 남쪽이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매일 밤 기도했다. ‘북한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미사일이 옆집에 떨어졌다.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

아랫배를 쥐어짜는 두려움이란 어떤 걸까, 내가 아는 두려움의 상황을 모두 기억에서 꺼내 봐도 아랫배를 쥐어짤 만큼의 공포는 아니었다. 걷지 못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향에 남을 수밖에 없는 엄마, 타국으로 나갈 수 없는 남편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하는 상황은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슬픔이다. 폭격으로 옆집이 무너지고, 내가 숨은 이곳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의 순간이 금방 올 것이라는 두려움. 지구상 저편에 퍼져 있는 두려움의 실체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뭐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멈춰야겠다. 

“이 책의 번역료 전액과 출판사 수익 일부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합니다.”

12,000원을 아끼며 도서관에 간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날, 칭찬했던 내 의식의 흐름이 부끄러워진 순간이다. 가스와 함께 가슴이 산산이 조각났던 18세의 내 친구와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이 자신을 속인 사기꾼임을 알게 된 20살의 내 제자, 팔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평화를 만날 수 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책을 펼치며, 더운 날씨에 잠깐 짜증 냈다가 맛있게 식사를 하는 일상을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기도한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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