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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Aug 13. 2022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 8시 4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하는데 큰일이다. 어제 운전한 후 차에 두고 왔을지 모르니 주차장에 가볼까도 했지만, 그러기엔 출발할 시간이 너무 임박했다. 불현듯, 이사하면서 아무렇게나 두었던 카드가 번뜩 생각이 났다. 지갑을 냉장고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며 늘어난 건망증에 대한 염려, 배차 간격이 큰 공항 철도의 시간에 대한 걱정, 미리 가방을 챙겨두지 못한 후회까지 섞인 걸음을 빨리 옮겼다. 그런데 웬걸. 카드 한 장을 들고 허둥거리며 늦어서 어떡하나 했는데, 약속 장소에 평소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바로바로 와준 지하철과 버스 덕택이다. 참 신기하다. 일찍 준비하여 나서도 차가 오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하듯 모임에 참석하는 날도 있는데 말이다.     

2021년 5월 7일, 마치 막내의 어설픈 손으로 여민 옷자락의 단추 같은 날이었다. 서로의 짝을 찾지 못하여 하나 덜렁 남은 맨 마지막 단추처럼 너덜너덜해진 날, 어버이날을 앞둔 금요일이기도 했다. 아침에 갈까 하다 세탁기의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보며 빨래도 널고, 아이들이 오면 점심이나 차려주고 나가야겠다 생각했다. 동네 죽집에 전화를 걸어 전복죽을 주문하였다. 삼 남매의 분량, 아빠의 점심을 계산하여 죽을 나눠서 통에 담아드리면 모두의 식사는 간단히 해결되겠다 싶었다. 거기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 멋진 아들이 되겠어요.’라고 막내가 학교에서 만든 카드를 죽 가방에 쏙 집어넣으면 아빠가 좋아할 것 같았다. 서둘러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들이 아니고 손자인데 친정에 얼른 다녀와서 가르쳐줘야겠다고. 운전하려고 보니 그날은 지갑이 아닌 핸드폰이 없었다. 가까운 거리니 괜찮겠지, 다시 집에 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시간인데 아이들이 그새 전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 앞의 신문, 식탁 위의 과일, 그리고 아빠의 옷가지. 평소와 비슷하나 생경한 적막함이 얹어져 이상하리라 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공기. 지금 생각하니 무거움이 아닌 무서움이었다. 핸드폰을 써야 하는데 전화가 없었다. 아빠의 전화기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경비실로 인터폰을 했다. 도와주세요.     

경비원 아저씨의 도움으로 경찰, 응급차가 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복도에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아빠를 옮기는 것도. 아빠의 상황을 남편에게 알리는 전화를 하는 것도. 아,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소식을 전한 것도 내가 아니었다. 5월 1일이 되자마자, 하늘이 예쁘다고 좋아했는데. 5월은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어 바쁘지만, 햇살이 적당하여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어 좋아했는데. 아빠의 기일까지 추가될지 몰랐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 반짝반짝하는 햇살이 싫어 커튼을 치고 매일 한 시간 이상씩 낮잠에 빠져들었다. 울다가 자고, 멍하게 있다가 자고, 열심히 움직이면 뭐 하나 싶어 또 잤다. 한참을 꿈속에서 헤매고 나니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아빠를 보내는 시간을 함께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는 응당 내가 할 일이지 생각하니 누워 있을 수만 없었다. 파란 간판의 빵집에서 기다랗게 돌돌 말려있는 빵과 하나씩 개별포장 되어 있는 과자를 샀다. 파란 종이봉투에 담긴 그것을 들고 친정 아파트 경비실을 찾았다. 경비원 아저씨가 아니었다. 내 나이 또래, 어쩌면 나보다 몇 살 아래일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린아이의 아빠처럼 보이는데 그에게 내가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부탁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하물며 딸인 나는 고개를 돌리고, 울면서 뒷걸음만 했는데.     

자주 들르며 글을 읽는 온라인 게시판에 ‘인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맞이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남은 가족을 생각하면 병원이나 시설이 좋겠지만 나를 위한다면 평소 사용하던 포근한 침대에서 자면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는 글이 많았다. 마지막 인사를 숙제하듯 하지 않고, 내일도 만날 것처럼 함께 TV보고 손주들과 깔깔거리며 헤어지는 것을 아빠가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 자꾸 시계를 보게 만드는 버스처럼, 아빠와의 추억을 간절히 떠올리고 싶어도 기억나지 않을 날이 올 수도 있다. 아무도 귀띔해주지 않았던 죽음처럼 인생의 길목에서 기댈 친구도 갑자기 나타나기도 했다. 지갑을 찾지 못해 종종거리느라 가쁜 숨을 내쉴 때 노란색 창에 메시지가 뜬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해 꽃 화분을 하나 보내니, 그녀라고 생각하며 매일 예뻐해 주고 잘 키우라는 이야기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오는 나를 살짝 보고는 기다려주리라 마음먹은 버스 운전사 같은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인터폰을 받고 급하게 뛰어온 아파트 경비원, 쏟아내는 우울과 원망을 핸드폰 영상 통화로 들어 준 상담사, 줌으로 수업 듣다가도 뜬금없는 눈물을 흘리는 나를 묵묵히 기다린 동료, 맥락 없는 슬픔이 툭 튀어나온 글을 끝까지 읽어준 블로그 친구 모두가 나의 운전사이다. 길을 잃지 않도록 지도를 펴놓고 알려주지 않아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힘을 내어 길바닥에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년이 지나 엄마와 함께 아빠의 첫 기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엄마, 아빠 기록을 남긴 후 내 이야기를 올려 삼 남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가 쓴 글을 들어주는 동무도 있다. 내 슬픔에 빠져 감사함을 전할 시간을 놓쳤지만, 이제라도 전할 수 있으니 그것도 참 좋다. 이제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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