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미국엔 어떻게 갔을까?
"너무 아파요. 선화상인, 영화스님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함이 극에 달했는지, 응답이 바로 왔다.
마치 중고차를 종잇장처럼 구기는 어마어마한 쇳덩이가 양 허벅다리 위로 올라와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말로 형용할 단계를 넘어선 고통으로 땅 밑으로 까마득하게 꺼져버리는 느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때부턴가 갑자기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미친 듯이 떨어대기 시작했다. 서울 국제선센터 짧은 선칠 중에 그렇게 쉐이킹 하던 사람들을 보며 '저것은 혹시.. 빙의?'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러고 있었다. 온몸에 땀과 한기가 동시에 돌기 시작했고 쉐이킹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그때, 현순스님은 "Your qi is strong. 스님의 기(氣)가 강해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들리긴 해도 눈조차 뜰 수 없었고 점점 아득해져 갔다.
얼마나 버텼을까... 더 이상은 못견디겠다 싶었을 때, 내 앞에 있던 작은 테이블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현순스님도 도와 같이 치워줬다. 그리고 바로 바닥으로 누워버리곤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짧은 실신?을 해버렸다.
눕는 순간에도 웬일인지 결가부좌는 풀지 않았다. 잠시 기절 후 주섬 주섬 일어나 앉았다. 마치 한~참을 자다 일어난 느낌이었다. 9시간까지도 차가웠던 손 발은 핏기가 돌며 따뜻해졌고 온몸은 땀에 젖어있었다. 아까처럼 극심한 통증은 없지만 뭉근하고 날카롭게 이어지는 통증은 여전했다.
결정적 순간에 단호하고 준엄했던 현순스님은, 다시 온순하고 인자한 스님이 되어 "Are you Ok, Sunim?"을 시전 하셨다.
'설마 오케이겠냐고요... 흑..' 속마음은 이랬지만 우는 듯 웃는 표정으로 "Wow.."라고 답한 것 같다.
불칠 법문 시간까지 3시간이 더 남았는데, 그때까지 더 앉아보라는 권유에 저항 없이 '오케이'했다. 아파봤자 아까만큼 아플 것 같지도 않았고, 그냥 '에라 모르겠다'가 그때 심정이었던 듯.
영화스님의 법문을 앞두고야 다리를 풀었다. 총 12시간을 앉은 거다. 지하 다이닝 홀을 한참 걸어 다녔다. 왼쪽 발목과 고관절 쪽이 무척 뻐근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게다가 앉는 내내 나의 고질적인 허리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현순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현순스님 왈, "No problem. Next time, 24 hours? 천만에요. 그럼 다음엔 24시간 도전?!"
난 아연실색한 미소로 뒷걸음치며 얼른 법당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 이어서)
‘오래 앉기를 시도하려는 경우에는 경험 있는 승가의 지도를 먼저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