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미국엔 어떻게 갔을까?
마음갈피가 정해졌다.
미국 도량의 수행 스킬을 벤치마킹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본래의 목표였지만, 달라졌다.
'마스터의 제자가 되고 싶다.'
당신 아래서 더 많이 배우고 계속 이 가풍에서 수행해야겠단 맘이 조급히 들었다.
실은, 한 달가량 위산사에서 지내며 이곳이 예사 도량이 아님을 직감해 왔다.
깨달음의 세 가지 조건이 선지식, 도량, 도반이라는 소릴 들어왔었다.(출처는 불분명)
선지식: 이곳에 오기 전, 선방에서 선지식 발원을 간절히 했었다. 그리고 만난 영화스님. 매일의 법문이 그렇게 재밌고 시원할 수 없었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소리 같았던 얘기들이 깔끔 명료해졌다. 법문 내내 미소를 짓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도량: 내가 느낀 위산사는 어둡고 낡은 건물이지만 시퍼렇고 쨍한 정진의 기운이 가득한 도량이었다. 그리고 든든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된 불상도 불단도 갖춰지지 않았지만 진짜 정수로 승부하는 곳임에 분명했다.
도반: 미국에 계신 스님들은 대부분 법랍이 한참 아래였다. 그러나 그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그냥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행력, 청정함, 헌신 등등 어떤 면에서나 다. 나이만 먹고 법랍만 먹은 내가 부끄러웠다. 동시에 그런 분들과 한 테이블에서 같이 점심도 먹고 얘기도 하고 있는 현실이 어느 순간엔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출가자뿐 아니었다. 재가자들도 본인 정진엔 서슬 퍼렇지만, 남을 돕는 데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선칠기간엔 법당 좌우로 남녀를 나누어 벽을 등지고 앉아 정진한다. 다리가 아파 실눈을 뜨고 꾀를 부려볼라치면 부동으로 앉아 있는 재가불자님들이 코 앞에 계셔서 엄두를 못 내고 강제 정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 못 참고 실눈을 뜨면 저~반대편에 계신 노 비구스님이 삐뚜름하게 앉은 채로도 몇 시간씩 계셔서 신음을 꾹 삼키고 다시 앉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을 만났는데 내가 어떻게 귀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겐 출가할 때만 해도 선방에서 열심히 참선하면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겠지, 지혜를 열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행자, 사미니, 비구니를 거치며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를 보는데, 금생의 성불은 감히 생각도 못하는 염세적인 출가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복이 있어 출가를 했지만, 말법시대에 업많은 여성의 모습으로 태어나 금생의 성불은 요원한 일이므로, 선방 문고리라도 잡으며 수행의 인연이라도 지어 다음 생이던 그다음 생이던 장부의 모습으로 출가하여 참선하고 성불을 기약'하는 것이 여성 출가자의 전형적 숙명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로 출가생활 내내 일종의 브레인와시가 되어왔달까...
서글프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희망을 보았다. 수행이 재밌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나도 이곳에서 열심히 스케줄과 지침을 따르며 수행하면 언젠가는 저 스님들처럼 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도전(challenge)과 재미(fun)'를 택함으로써 비로소 올드한 비극의 서사를 등질 수 있게 됐다.
모처럼 몸에 짜릿한 전율이 돌았다.
'드디어 진짜를 만났다. 이제 나도 진짜 할 수 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