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니 Apr 27. 2024

처음 용돈을 받던 날

1장. 나는 평생 어린아이 일 줄 알았어

 띠링-

잊을만하면 울리 결제 알람에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백만 년 만에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이 무슨 예의 없는 경우!!!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자본주의에 찌든 돈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무작정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다. 대학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아주 최소한의 조건만 내걸었지만 사회는 갓 스무 살, 그것도 알바 경력 하나 없는 초짜에겐 쉽게 일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겨우 얻은 첫 일자리는 집 근처 작은 호프집.

나는 그곳에서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처음 진상 손님을 대하다 물벼락을 맞은 날에는 내가 이런 대우를 받고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러워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콧물을 다 흘렸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 하는 생각에 빠지다가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확률보다 돈이 있어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는 건 이미 깨달은 지 오래였다.


 낭만주의 인생을 꿈꾸는 입장으로서 인정하긴 싫지만 돈은 곧 힘이고, 권력이고, 내가 아는 세상을 넓혀 주는 수단이다. 심지어 내 능력을 키우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니 정말이지 이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닐 수 없다.

팍팍하고 차가운 현실을 깨달을 때면 처음 용돈을 받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른다.


 열 살 된 지 얼마 안 됐던 1월의 어느 날, 엄마 아빠가 나를 거실에 불러 앉혔다.

진지한 분위기에 뭔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머리를 굴렸지만 나를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닌 용돈 때문이었다.


  아빠는 내게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필요할 때마다 엄마에게 돈을 받았지만 이제부터는 학교 준비물같이 꼭 필요한 물건을 빼고는 모두 내 용돈으로 사야 한다고.


 아빠는 그 돈을 다 쓰면 다음 용돈 날까지 아무것도 살 수 없으니 신중하게 쓰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내 돈이 생긴 어린아이에게 그런 말 귀를 거쳐 흘러나갈 뿐이었다.


 그동안 준비물을 사고 남은 몇 백 원으로 불량식품을 사 먹는 게 전부였던 내게 오천 원은 엄청난 거금이었다.

지금 같은 고물가 시대엔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그 당시 천 원으로는 문구점에서 불량식품 4~5개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떡볶이 집에서도 천 원만 있으면 컵 떡볶이에 튀김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천 원이면 떡볶이 집에서 천 원이 넘는 요술컵과 회오리 감자를 두 개씩 사 먹고도 돈이 남았다.

빨리 용돈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음 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 없이 떡볶이 집에 가서 외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없어서 못 썼지, 돈이 생기니 쓰는 건 한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거금 오천 원을 순식간에 다 써버린 후였고, 호랑이 같은 아빠에게 혼날 거라 생각하니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땐 아빠한테 혼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사고를 쳤을 땐 어떻게 해야 안 들키고 안 혼날 수 있는지가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간이 흐르고 현실에 찌들어보니 저건 새발의 피보다 작고 하찮은 고민이었다.


 그때의 아빠는 내가 잘못을 했을 때만 나를 혼냈다.

하지만 가게 사장님은 본인 기분이 나쁜 날 툭하면 내게 이유 없이 화를 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잘못을 해서 혼이 나도 이제는 아무도 아빠처럼 반성했다고 안아주거나 손잡고 마트에 가서 과자를 사 주지 않는다.

사고를 쳐도 내가 해결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평생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세상은 나 빼고 다 오토바이 타고 달리나 보다.

부모님께 혼나는 게 제일 무서웠던 아이는 마트에서 채소값을 보며 벌벌 떨고, 엄마 잔소리보다 후불 교통카드 결제일을 두려워하는 겁쟁이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직 부모님께 신세 지고 있는 월세와 보험료를 내 돈으로 직접 내게 된다면 아마 공포영화를 보는 것보다 훨씬 무섭겠지.


 성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 건 좋지만 현실을 깨닫고 어른의 책임감을 가지는 건 싫다.

무책임한 말이겠지만 아직은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


 어른들이 각자 짊어진 삶, 그 책임의 무게.

그 무게의 절반조차 나에겐 벅차기만 한데 정말 내가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워 돌아가고만 싶다.

첫 용돈 오천 원을 다 쓰고 벌벌 떨던 그로.


ps. 사실 꼭 어릴 때로 안 돌아가도 되니까 제발 물가만 그때처럼 내려가주라~~ 나 이제 채소도 먹어야 살거든?

ᆓᗣᆓ





이전 01화 일곱 살 어느 겨울, 엄마 아빠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