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니 May 11. 2024

세상에서 제일 길었던 밤

1장. 나는 평생 어린아이 일 줄 알았어

 시간은 정말 심술쟁이 같다.

행복했던 시간은 한순간에 흘러가게 만들면서 왜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은 그리도 늦장을 부리는지.. 괘씸하기 짝이 없이 없다니까.


 오늘은 정말이지 너무나 느린 하루였다.

분명 기운은 며칠 밤샘작업을 하는 것 마냥 쭉쭉 빠지는데 시계를 보면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오늘따라 수업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창가 너머로 살랑거리는 나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던 중,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나의 부모님은 서로를 너무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다른 문제였다.

각자 앞에 놓인 현실의 무게가 점점 버거워져서일까? 어느 날부터 평화롭던 집에는 듣기 힘든 소음이 득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만큼이나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아빠는 조직의 발전과 성과를, 엄마는 공동체의 화합과 평화를 장 추구했다.


 아빠는 사람들에게 너무 애쓰느성과가 느린 엄마를 답답해했고, 엄마는 결과만 보고 달리느라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아빠를 매정했다.

사랑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균열의 시작이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예전의 두 사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체 어른이란 뭐길래 사랑을 노래하던 두 남녀를 저렇게나 바꿔버린 걸까.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주워 먹어도 둘이라서 행복했던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둘 사이의 희미했던 균열은 하나의 사건으로 이킬 수 없 파국을 맞이했다.

그때의 난 고작 열한 살이었기에 정확한 대화 내용이나 그들의 입장은 모른다.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더 나빴고는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고, 그날의 일은 결국 일어났기 때문에.


 하루종일 폭풍우가 치던 씨처럼 집안에도 거센 폭풍이 불었다.

평소라면 베란다 밖으로 나가 엄마 아빠의 말소리를 애써 외면했지만 비바람 탓에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방문을 굳게 잠그고 그저 1평 남짓한 이부자리에 엎드려 이불로 최대한 귀를 막는 것뿐이었다.


 이 긴 싸움의 끝은 항상 똑같았다.

이성의 끈을 최대한 붙잡은 아빠가 현관문을 박차고 어디론가 나갔다가 다음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든 게 해결된 채 다시금 평화가 찾아와 있었다.


 그래서 아빠가 빨리 나가기를 바랐다.

평소처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접시 따위를 '실수로' 떨어트려 깨트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고작 열한 살이었던 어린아이는 불안함을 외면한 채 방에 숨어 모른 척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그날의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조각, 피 묻은 손으로 이마를 움켜쥔 채 쓰러져있던 엄마, 비바람에 흔들리던 분홍커튼,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아빠.


 나의 아빠는 소름 끼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부부싸움에서도 먼저 언성을 높이는 건 엄마였고, 참다못한 아빠의 언성이 따라 올라가는 게 그들의 루틴이었다.

그런 아빠가 이성을 잃었다.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순간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빠가 들고 있던 뚝배기가 나에게 날아왔다.

내가 아플 때면 엄마는 늘 그 뚝배기에 따듯한 계란죽을 끓주었다.

바로 전까지도 따스한 추억이 담겨있던 그릇이 내 머리를 가까스로 스쳐 지나가며 멀리서 들리던 굉음이 귀 옆에서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온몸이 떨리고 숨 쉬기가 힘들으며, 충격이 컸던 건지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애한테 미쳤냐며 소리 지르는 엄마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빠는 그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때문에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과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폭풍우 치던 그날 밤, 그 공간에 멈춰져 굳게 닫히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피구와 배드민턴을 하지 못했다.


그날 밤은 세상에서 가장 긴 밤이었다.


ps. 한 번 닫힌 마음의 문을 열려면 길고 긴 어둠 속을 헤쳐 나갈 용기가 필요해! 힘든 거 알아. 많이 무서울 거야. 분명 출구를 찾는 과정에서 상처도 받겠지. 하지만 이 어두운 밤을 벗어나고 싶다면 용기를 내야 해. 어쩌면 널 기다리는 세상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따듯할지도 몰라:) 네가 조심스레 여는 마음의 문 넘어가 너무 춥지만은 않기를 내가 항상 바라고 있을게. 힘들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보자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 줄래?ꕤ*.°

이전 03화 특별한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