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늦은 아침, 초인종 소리에 내가 먼저 부스스 일어나. 어제 온라인으로 함께 고른 마트의 식자재들이 방문 앞까지 배달 온 거야. 나는 냉장고에 넣어야 할 식품만 대충 정리하고 재료 밑손질을 시작해. 도마 토닥이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면, 잠시 후 네가 잠 덜 깬 모습으로 부엌에 나오지. 썰어 놓은 재료를 보고 너는 점심 메뉴가 뭔지 맞춰보려 하지. 오늘은 아쉽게도 틀렸으니, 설거지는 네 담당이네. 요리가 완성되면 너는 소스 통을 들어 계란 위에 하트를 그리곤 해.
하트를 그리는 네 실력도 점점 늘더라.
네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뒤에 앉아서, 베스킨라빈스에 새로운 맛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네게 알려. 늘 먹던 맛 몇 가지와 신메뉴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설거지가 다 끝날 즈음에야 겨우 주문을 하지. 핸드크림을 나눠 바르고, 오늘의 하늘에 어울리는 찻잔을 골라 창밖을 보며 향기로운 꽃차를 타 마셔. 차가 식어갈 즈음 아이스크림이 도착하고, 신상을 한두 스푼 맛본 너는 ‘이 맛없는 거 너나 다 먹어라’며 푹 퍼서 뚜껑에 덜어줘.
살짝 졸리니까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웃긴 영상이 있으면 같이 봐. 잠이 오면 잠시 잠들고, 아니면 이불의 결을 따라 전해지는 서로의 꼼지락대는 발가락 움직임과 옅은 먼지 냄새를 통해 시간이 흘러감을 느끼지. 오래 누워있어서 허리가 아플 즈음엔 일어나서 가고팠던 카페를 하나씩 얘기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어딜 갈지 정해. ‘오늘의 드레스코드는 무엇인가요?’ 서로에게 물어보고, 말끔히 차려입은 다음 카페에 가. 낮에 먹은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달곰한 디저트에 조그마한 커피를 마시고, 예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 몇 장을 찍어준 다음 방에 돌아오지.
너와 가보고픈 예쁜 카페가 얼마나 많은지 너는 아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지운 뒤, 유튜브로 플레이리스트를 골라서 방안 가득 잔잔한 음악을 틀어. 낯선 음악 속에서 나는 글 쓰길 좋아하고 너는 책 읽길 좋아해. 두 시간 정도의 평온함을 즐기다가, 네 배꼽시계 소리가 들리면 나는 물을 끓여서 면을 삶지. 가벼운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으며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어 건배. 너는 ‘아까 들은 음악 중에서 이게 제일 맘에 들었어’라고 재잘여. 그 음악만 다시 찾아 들어보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넷플릭스 영화를 하나 골라.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너는 불을 끄고 프로젝터를 켠 다음, 전자레인지로 종이봉투 팝콘을 만들지. 너는 꼭 팝콘에 와인을 마시더라. 그리고 한쪽 눈을 감은 채, 굴곡진 와인잔 너머로 영화 보는걸 좋아하지. 나도 이젠 팝콘을 먹을 때 와인이 없으면 어색해.
와인을 다 마실 즈음엔 영화도 재미없어지고, 눕고 싶어져. ‘역시 프로젝터는 비싼 걸 사야 해’라며, 너는 흐릿한 빔프로젝터의 코드를 뽑아버리지. 우린 이불 안에 들어가서, 침대 머리맡의 핸드폰 걸이에 폰을 걸고 나란히 누워 영화를 마저 봐. 너는 ‘나 오늘 먹기만 했으니 살 엄청 쪘겠지?’라고 물어보고, 나는 ‘점심에 설탕 대신 꿀을 썼으니 살 안 찔 거야’라고 대답하지. 너는 ‘그 이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으니 밤 산책을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어. 외투와 모자를 눌러쓴 채 할증 붙은 택시를 타고 달동네에 가서,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며 잠깐 야경을 구경해.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젤리 한 봉지를 사고, 방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먹어버리지.
네가 젤리를 좋아한다는 게 왜 그리 귀여울까.
나는, ‘이젠 진짜 졸리다’며 침대에 누웠지만 잠들기는 아쉬워 보이는 네 표정을 구경해. 새근새근 자는 네 모습을 좋아하는 나는 네가 어서 잠들길 바라서, ‘괜찮아, 좀 더 늦게 자도 내일은 일요일이야’라는 말은 속으로만 생각하며 살짝 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