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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r 19. 2024

우리 집 2호를 처음 만난 날

길에서 태어났어요

아기 2호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8월의 여름이 그렇듯이 더위는 꺾일 생각이 없었고, 가만히 서 있어도 옷은 땀으로 금세 축축해졌다.


나는 그날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차들이 다니는 골목 어귀에서 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길바닥에서 새끼들 젖을 물리고 있었다. 어미를 닮아 새끼들도 모두 올블랙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갓 청소년기가 지났을 것 같은 앳된 외모였다. 고양이들이 젖을 먹는 자리는 몇 발자국 걸어 나가면 차들이 지나는 길이었는데도, 어미는 그 자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자리에서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잔해 보여서 집으로 가자마자 시원한 물과 간식을 조금 챙겨서 아까 그 어미 고양이에게 주려고 다시 나왔다. 길어봤자 한 십오 분 정도 지체되었을 텐데 조금 전 있었던 고양이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분명 이 자리였는데, 이상하다.' 


주위에 있는 다른 골목에도 가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숨으려고 하면 못 숨을 데가 없는 고양이였다. 하는 수없이 아쉬워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던 찰나 골목 저쪽에서 흰색 페인트 컨테이너(흰색 페인트통)를 들고 아주머니 몇 분이서 이쪽으로 급히 걸어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당연히 나를 보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마치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처럼...


아주머니 무리와 내 거리가 가까워지자 양동이 안에 있는 무언가의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궁금해서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가 안에 뭐가 있는지 물었더니 새끼 고양이라고 했다.


페인트 회사 로고가 그려진 흰색 플라스틱 컨테이너 그 안에 고양이가 있다 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담요를 한 겹 깔고 그 위에 작고 까만 새끼 고양이가 앞발 두 개를 컨테이너에 딛고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녀석은 꼭 물에 젖은 생쥐만큼 작았고 그것보다 더 못생긴 외계생명체 같았다. 털은 온통 젖어 있었는데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애가 오줌을 쌌나 봐." 하는 것이다.


나름 새끼 고양이라 무언가를 깔고 아이를 올려놓은 것 같긴 한데 오줌 쌀 거라고는 예상을 못한 건지 아주머니들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녀들은 새끼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아기 고양이가 먹는 분유는 따로 있는데, 동물병원이나 가야 있을 거라고 했더니 조금 전보다 더 당황스러워했다. 


"우리 손주들이 보면 좋아할 거 같아서 데려왔더니, 내가 괜한 짓을 했나 봐."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서 구할만한 일상용품으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음을 그날 알게 된 아주머니는 후회와 당황, 자신의 경솔함 등을 자책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데려가서 키울래요?" 

"......?!!"

"난 동물도 처음이고, 너무 불쌍해서 데려왔는데... 어미랑 형제들은 방금 전 교통사고 나서 죽었어요. 우리가 신고해 놨어요. 얘만 살아서 데려온 건데. 우리 아저씨가 보호소 보내자고 하는 걸 내가 괜히 데려왔나."


'아, 그래서 혹시 그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진 거였을까? 길에 사고 난 자국도 없었는데.'


 사고를 더 자세히 물어볼까 하다가 페인트 컨테이너 안에서 점점 더 크고 날카롭게 울어재끼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내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었다.


몇 분 후...


내 손에 들려진 작은 새끼 고양이. 

지린내가 진동했다. 어떻게 작은 고양이를 집으로 들고 왔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욕실 개수대에 더운물을 틀고 아이를 맹물로 씻겼다. 오줌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냄새가 많이 나서 먼저 씻기고 싶었다. 개수대 물은 금방 대걸레를 빤 물처럼 검게 변했다. 요 작은 몸에서 그렇게 많은 구정물이 나오다니...


베란다에서 세상없이  놀고 있던 1호는 새끼 고양이의 냄새를 맡고 냉큼 달려와 내가 1호로부터 처음 듣는 괴음을 내며 경계했다. 마른 수건으로 닦이는 중에도 1호는 떠나지 않고 고양이들이 적에게 내는 괴상한 소리를 연신 발사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도 아기 고양이에게 줄 분유는 없어서 일단 24시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서너 시간 간격으로 우유를 먹어야 하는 아기 고양이들이라 낮에는 직장을 다니는 내가 케어해 줄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분유를 먹고 조금 진정된 2호


수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왜 목욕은 시키고 데려왔냐며 체온이 떨어지면 새끼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선생님이 그 오줌밭에 구른 애를 못 보셔서 그래요.'라는 말은 입 속에 넣어두었다.


생후 2주쯤 된 거 같고, 눈을 뜬 지 며칠 안된 거 같다는 말. 눈은 떴지만, 아직 시력은 없을 거라고 했다.

눈을 들여다 보니, 오묘하고 신비로운 고양이 눈이 아니고 그냥 외계인 눈동자 같다. 그래도 생후 2주 치고는 매우 똘망해 보인다.


24시 동물병원에서는 아픈 아이가 아닌데, 수유를 위해 입원시키는 경우는 드물다며 입원을 받아줄지 말지 조금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일단 입원장에 여유가 있어서 2호의 입원은 받아들여졌다. 이 날 이후 2주 동안 병원에서 몇 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먹었고, 병동 막내로서 병원 스탭들의 '예쁨'도 같이 받아 먹었다. 분유가 맞지 않아서 조금 고생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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