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17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네 얼굴을 외면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넌 턱을 괴로 엎드린 채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 거야?'
'..... 응 '
웃어넘겼지만, 속은 흔들렸다.
그 자리는 네 자리가 아니었잖아.
'거기 네 자리 아니잖아.'
'네가 잘 보이는 자리니까. 바꿨지.'
그때의 눈빛을 기억한다.
내가 전부인 듯 바라보던 그 눈.
그 눈빛에 나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사랑받는 기분은 달콤했고, 그래서 더 독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그렇게 소중히 대했던 네가 고마웠다.
그래서였을까.
훗날 네가 등을 돌렸을 때, 나는 그토록 무너졌다.
그때의 널 잃은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던 네 시선을 잃은 게
너무 아팠던 걸지도.
그 순간 넌 어디로 갔을까.
내 기억 속엔 아직 있는데,
너의 기억 속 나는 어떤 얼굴일까.
아마 다르겠지. 기억은 늘 비틀리니까.
나는 태생부터 사랑받지 못할 운명이었다.
늘 짐처럼 여겨지고, 눈치를 보고, 기죽으며 살았다.
내 잘못도 아닌 사건들이 내 인생을 망쳐놓았고,
그게 날 불안하게, 망가뜨리게,
애정에 굶주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나를 사랑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월 안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나? 겉만 멀쩡하지 속은 다 타버린 정신병자야.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부서진 나를,
네가 사랑할 수 있겠어?
나는 의심했고, 시험했고, 또 시험했다.
조금 믿을 만하다 싶으면,
그땐 네가 이미 지쳐버렸지.
사랑은
결국 그런 거다.
끝내 닳아 없어지고,
별것도 아닌데 목숨 걸게 되는 것.
대단한 척하지만 결국 허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