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원은 용서로부터 오지 않는다

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15

by 라미


그땐 안 읽혔는데 지금은 읽히는 책이 있다.

그땐 보다가 지루해서 꺼버린 영화가 지금은 끝까지 보인다.


나이에 맞는 책이 있고, 영화가 있고, 음악이 있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땐 그냥 넘겼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삶은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허투른 경험은 하나도 없다.

실패도, 고통도, 즐거움도 모두 누적되어

조금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영화 <밀양>을 그렇게 보았다.

예전에는 지루해서 중간에 끊어버렸던 영화를

이번엔 울면서 끝까지 봤다.

아이가 있어서인지 감정이입이 더 됐다.


나는 여전히 용서라는 단어가 싫다.

나를 위해서 용서하라는 말도 싫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용서하려고 노력한다고 편안해질 수 있다는건 이해가 안된다.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용서하라.

아직은 이해되지 않는 말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안전하다.


그런데 그 거리를 무시하고 다가와

모욕적인 말을 하고 상처주는 사람들을

왜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도 , 나의 아이를 죽인 그 범인을

왜 용서해야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그 인간은 어째서 주님께 구원을 받고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신애의 마음도 그러지 않았을까.

"네가 뭔데 용서를 받아.

누구 마음대로 하나님은 먼저 이 인간을 용서해."



사람을 미워하는 건 힘들다.

감정 소모가 크다.


그렇지만 나는 싫어하는 사람은 욕할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얽혀서 살고 싶지 않다.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은 내가 구원해야 한다.

인간은 모두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원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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