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내가, 죽고 싶은 나를 토닥인다

나의 우울증에 관하여#18

by 라미



감정이 무너져도
나는 여전히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집에 와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약을 먹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이 모든 건 끝없이 반복된다.
하염없이 반복된다.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똑같은 24시간을 맞이한다.
내가 무얼 하든, 하지 않든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데 정말 ‘흘러간다’는 표현이 맞을까.
지구는 순환하고,
그 안의 인간은 우연처럼 태어나
늙어가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가.
꼭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가.

갑작스러운 비에 발걸음을 멈추고
낯선 가게 앞에 서서 생각한다.

비가 내린다.
소담한 빗소리가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죽고 싶지만,
삶의 작은 틈 사이마다
나를 멈추게 하는 반짝임이 있다.

살아있는 내가 말한다.

“넌 예쁜 것들을 좋아하잖아.
세상엔 이렇게 예쁜 게 많아.
더 느껴보고 싶지 않니?
소소하고 소박한 행복들을.”

살아있는 내가,
죽고 싶은 나를 조용히 다독인다.

토닥토닥,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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