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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Oct 30. 2022

심리상담을 다녀온 이후, 어머님과 헤어질 결심을 하다

시맘과 워킹맘의 동거일지 끝낼 결심 

어머님과의 에피소드는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서로 공감하며 마음을 다독였던 긍정적인 경험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뭐 하나 어머님과 맞는 게 없다고 생각한 어려운 경험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의 시간을 빼곡히 채웠다. 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다 담고 싶어 총 4부의 대주제와 20 꼭지의 소주제가 나와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만들어 투고를 하리라 다짐했다. 몇 안 되는 지인들이지만 내 글을 읽고 재밌다고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피드백을 주었고, 그 힘으로 나는 글 쓸 동력을 키워 나갔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8월까지의 내 기운은 마치 호랑이 기운처럼 넘쳐흘렀으니까. 이틀에 한 번 글 한 꼭지를 쓰면서 이 정도의 분량은 너무나 식은 죽 먹기라는 괴상한 자신감까지 호랑이 기운처럼 솟아올랐으니까.      


그러던 나에게도 번 아웃이 찾아왔다. 결혼 후 산후 우울을 포함해 ‘살고 싶지 않다’라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때 나는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외면했다. 그러다 보면 또 어느새 단전 밑에 숨어 있던 호랑이 기운이 스멀스멀 솟아올라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 것도 모자라 몸까지 아파왔다. 결국 20 꼭지를 완성하겠다는 글은 9화를 끝으로 한 달 반을 쉬어버리게 되었다.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라는 브런치 알림을 읽고 ‘네까짓게 뭘 알아!! 아니야!!’ 분노하며 외면하곤 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는 이것이다. 어머님이 아이들을 살뜰하게 봐주신다는 핑계로 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이루고 끝내 놓고 퇴근하면 보통 10시 정도였는데, 그때는 이미 집에 가도 육퇴가 끝난 어머님이 주무실 준비를 하기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시는 어머님을 거슬리게 하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은 어쩐지 너무나 눈치 보이는 일이다.      


그 시간에 나는 사무실에 들어앉아 술을 마셨다. 폭음이나 과음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하루 끝 단상을 시원한 맥주 한 캔 (사실 두세 캔 먹는다)이나 청하 한 병, 혹은 위스키 한두 잔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보상인지 모른다. 이렇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알코올에 대한 오남용이 심각하다 생각한 시점 역시 두 달 전부터다.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따뜻한 보상을 주기 위해 마시고 퇴근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죄책감이었다. 이 시간에 일찍 가서 아이들 옆에 누워있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내 삶은 그 반대였으니까.     


삐용삐용. 이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생각한 나는 여기저기서 정신과와 심리상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조언을 얻고 병식이 확실하지 않은 나에게 심리상담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처음으로 낯선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발가벗겨지는 창피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과 두근거림으로 사전 질문지에 나의 알코올 문제에 대해 세세히 적어나갔다. 몇 안 되는 질문이었지만 최대한 사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자처럼 감정 없이 단문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선생님께서는 꼼꼼하게 쓴 사전 질문 답변을 읽어보셨다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비교적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이 와중에도 칭찬받으니까 기분이 좋은 나는 정말 긍정이 디폴트가 맞았다. 뭐 요즘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칭찬은 행복한 거니까! 질문이 진행될수록 원가족에 대한 질문과 현재의 가족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시면서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곳에 와서 울지 않으리라 굳은 다짐을 하고 왔는데 선생님의 첫 질문이 눈물 버튼이 되어 버렸다.     


“보름 씨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어? 나 인문학 강사인데, 삶이 무의미한 걸 알기에 끝없는 유의미함을 찾고 있는데. 나 메타인지 개쩌는데! 왜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지? 순간적으로 질문에 답할 수 없던 나는 새하얗게 변해버릿 두뇌를 풀가동했다. 어떤 삶일까,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 순간 나는 무기력하게 변한 내 삶과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어서 포기해 버리고 회피하고 도망치는 내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렸다.      

“모르겠어요. 흐흑. 흑..엉엉”      


선생님, 제 문제는 알코올이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본격적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시는 거죠? 나는 한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이었고 어쩐지 처음 본 사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해방감을 느끼게 해서 그냥 그렇게 흐르게 한참을 두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우는 동안 사전 질문에서 나온 키워드를 ‘무기력’ ‘자기혐오’를 꼽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무기력하고 자기혐오가 오는지 생각해 보라 하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30분쯤 흘렀을까? 적게는 1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 강연을 하는 나에게 말하기는 일종의 긴장이었고 열심히 일을 하고 돌아왔을 때 쉴 공간이 고작 사무실뿐이라는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보름 씨는 쉬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그동안 항상 어머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집이 편한 공간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그나마 쉴 수 있는 사무실에 가서 공허한 마음을 술로 채우고 있는 거예요. 보름씨, 왜 시어머님과의 문제 대신 술 문제 뒤에 숨으려고 하세요?”    

 

아아, 2차 눈물 버튼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그동안 글을 쓰며 어머님과 내 사이에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음을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 치부했다. 어머님 덕에 얻는 이점이 크므로, 어머님과 함께하는 시간 또한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므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조이가 슬픔이를 억누르며 사춘기 주인공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든다. 긍정이 이 녀석. 내 속에서도 조이처럼 말썽을 피우고 있었구나. 어머님과의 동거는 기쁨과 동시에 슬픔이 있었는데 나는 지나치게 한 면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보름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어머님도 좋은 사람이고요. 그런데, 아무리 어머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게 어떻게 100% 편할 수 있겠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부딪히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다못해 주방만 가봐도 우린 알잖아요. 시어머님이 그것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며느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사람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해요. 보름 씨는 착한 어머님을 탓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술 먹는 것도 들키도 싶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죠.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아아, 3차 눈물 버튼이었다. 아무리 내가 나를 객관화하고 연민의 대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속으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진득하니 하며 ‘내 얘기 좀 들어줄래?’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미술심리상담의 일원인 자화상 그리기에서 ‘할 말이 많은데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미술치료도 꽤나 정확한 것 같네). 선생님께서는 어머님이 우리 집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계시고 이미 그렇게 되신 기간이 3년 정도 흘렀기 때문에 시간이 더 흐르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더 어려울 것이라 말씀하셨다. 울고 또 울었다. 휴지를 얼마나 썼는지 모르겠고 콧물은 나오다 코를 다 막아 대답도 거의 꺼이꺼이 하고 있었다. 머리는 띵 했고, 이 띵함이 눈물 때문인지 외면한 진실과 마주한 진실의 종 때문인지 헷갈렸다.   

        

상담을 마치고 팔랑귀의 아이콘은 심리상담의 힘을 믿으며 심리검사와 2차 상담 예약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실행했다. 돌아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어머님은 잠시 병원에 가신 상태라 집은 비어 있었다. 한 것도 없던 하루인데 이상하게 피곤했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고 누우면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그냥 누웠다. 한 시간 정도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 보니 시계가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냅따 어머님 오시기 전에 빨리 사무실로 도망가야겠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사무실로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님과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고 행복했고 때로는 우울했지만, 이제는 홀로서기를 할 때라는 사실과 마주한다. 내 일을 줄여서라도, 나와 남편이 더 치열하더라도 우리 문제는 우리의 원가족끼리 해결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동안 함께했던 어머님과 헤어질 결심을 한 날이다.      

어머님과의 안전 이별,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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