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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Sep 26. 2022

대결 시어머니vs며느리: 정리 편

정리를 못해 죄송한 며느리도 나름 스트레스가 있답니다 

강사로 살아가면서 모두 롤모델의 대명사로 쓰는 사람이 있다. ‘김미경’ 강사. 그렇다. 강사를 시작하면서 나 역시 그의 영향력과 에너지에 동기부여를 받고 지금은 중년 여성의 워너비가 된 그의 궤적을 따라가며 나 역시도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용처럼 앉아 있다(대체 언제 똬리를 풀지). 그의 강연 스타일과 사람을 훅킹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동안 MKYU에 있는 그의 동영상을 낱낱이 보고 분석했던 시절도 있었다. 한번은 ‘시간 관리’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우선순위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김미경 강사는 ‘나에게 옷 정리와 물건 정리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급하고 중요도가 높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응? 갑자기 분위기 찾았다 도플갱어... 김미경 강사만큼의 영향력도 능력도 안 되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동질감을 느끼며 친정엄마에게 정리 면에서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명언을 레퍼런스로 가져왔다. 


“엄마, 김미경 강사도 정리 정돈은 뒷전이래, 그보다 중요한 일이 많아서!”


그때 마다 엄마는,


“그 사람은 큰일 하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김미경 강사였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정리 정돈에 젬병인 내가 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3n 년 평생 정리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담쌓기 보다는 필요할 때 눈에 거슬릴 때 한 번에 정리한다고 해야 하나? 


어머님은 정리 정돈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잘하신다(다행히 이 피를 남편이 물려받았다). 빨래 하나를 개더라도 각을 맞춰서 갤 줄 아시고 옷장에 넣을 때도 차곡차곡 넣으셔서 빈 곳 활용을 알뜰살뜰 하신다. 반면에 나는 정리 정돈에는 젬병이고 내 옷장은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옷들이 쌓여 있기 일쑤다.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는 옷장의 옷들은 항상 내 인생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버려서 그냥 눈에 보이는 양말이나 속옷을 꺼내 입는 것이 내 삶의 패턴이 되었다. 나름대로 정리 좀 해보겠다고 사 온 칸막이 정리대는 무용지물로 형태를 알 수 없게 찌그러져 버렸고, 결국 그 녀석들을 꺼내 내다 버렸다. 초반에 어머님도 내 옷장에 옷들을 정리해 주셨는데 어느샌가 포기하시고 옷장 선반 위에 개킨 옷을 내려놓고 가신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굳이 예쁘게 접지 않아도 어차피 꺼내 입을 옷인데, 세탁기에 넣을 땐 뒤집어 놓으며 가끔 안쪽도 박박 세탁되는 매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그냥 넣기 일쑤... 



한번은 남편에게 어머님이 ‘보름인가 맨날 옷을 뒤집어서 벗어놔서 스트레스받는다. 걔는 왜 옷을 자꾸 뒤집어 벗느냐’며 핀잔을 주셨다고 했다. 남편은 오래된 답습으로 즉시 그 말을 전하지는 않고 ‘그냥 원래 엄마랑 보름이랑 사는 방식이 다른 거니까 이해하면서 살아’라며 어머니의 속을 한 번 더 뒤집어 놓으셨(?)다. 어머님은 그 뒤로 며칠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셨다고 하셨다. 놀랍게도 나는 뒤집어진 옷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뒤집어 챙겨 입고 나갔다고 한다. 당연하지, 그건 내 삶의 방식이고 나는 그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어머님께는 그 모습이 문화 충격이었다고 한다. 어머님 입장에서 ‘불편해’ 보였던 행위가 나에겐 전혀 불편하지 않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보름이가 아무렇지 않게 옷을 뒤집어 입고 가는 걸 보고, 그 뒤로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라고 덧붙인 어머님의 말씀에는 어른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의식을 거슬러 잔소리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나를 관찰하고 이해하려 애썼다는 증거니까. 별것 아닌 사소한 에피소드에 나는 감동했다. 어머님은 그런 분이다. 대통령 선거를 하실 때도 ‘빨간 게 좋은지 퍼런 게 좋은지 나는 모르겠으니까 아들 네가 말해주라. 나보단 너희가 오래 살 것이니 누굴 뽑으면 좋을지’라고 말했던 일화는 어머님이 얼마나 대의를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로운 어머님과 사는 나는 가끔 며느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눈치 보임이 없을 리 만무하다. 아이들 옷은 차곡차곡 정리되어 옷장에 넣어져 있는 반면에 덩그러니 옷장 위에 올려진 내 옷들은 어머님이 서랍을 열 때마다 받았던 스트레스의 높이였을까. 한번은 어머님이 안 계신 틈을 타 강의가 없는 날 사무실에서 사무 일을 보다가 집에 돌아가 점심을 먹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굳이 어머님이 안 계신 틈을 탄 이유는 계실 때 늘어지게 자는 모습은 왠지 할 일 없는 며느리, 쓸모없는 며느리 같은 느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calm 앱을 켜 두고 늘어지게 자도 있다가 ‘삐삐’울리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신발을 벗으시면서 ‘아휴~~~~~~~~~~~이걸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없어지고, 만들어 놓으면 없어지고...’를 연신 내뱉고 계신 어머님에게 차마 ‘어머님!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하며 나가기가 민망했다. 그렇게 되면 1차로 낮잠 잔 며느리, 2차로 신발 정리 엉망으로 해 놓은 며느리, 3차로 그 말을 몰래 듣고 있던 며느리가 되어 쌍방이 묘연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정리 정돈을 일부러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공부 머리와 운동 머리가 있든 정리 머리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사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행동에서도 그 성향이 과감히 드러나는데,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 애쓰는 것 자체가 나라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는 말도 안 되는 핑계다. 금요일 밤에 시동생 집에 가셔서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돌아오시는 어머님은 주말에 엉망이 된 집을 보며 ‘스트레스받아 못 살겠다’고 남편에게 전한 적도 있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뭐가 그리 억울했는지 ‘나라고 뭐 힘든 게 없는 줄 아냐!’며 울부짖었던 과거가 필름처럼 머리에 남아있어서인지 어머님이 오시기 전에 나는 최선을 다해 정리한다. 하지만 매사 깔끔한 모자 인생에 덜 정리된 채로 살아가는 내가 아무리 정리해 봐야 어떤 만족감이 있을까? 아무리 정리해야 여기 있던 물건은 저~기 어디쯤 가 있고, 저기 있던 물건은 난데 없이 식탁 위에서 출몰할 뿐이다. 나에게 물건의 자리란 아무리 마련하려 해도 쉽게 떠오르고 기억되지 않는 영역이다. 할 수 없는 영역은 인정하고 최대한 깨끗하게 어머님이 오시기 전에 물건들을 여기저기 숨기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누군가 그랬다. 함께 살아가는 동거인의 경우 더러운 걸 참는 쪽이 속이 편하고 못 참는 쪽이 피해 보는 것이라고. 아마 그런 동등한 관계에서 피해를 보는 쪽은 우리 어머님이겠다. 하지만, 가부장제 안에서 시어머님과 함께 살아가는 며느리인 나에게 그 역할 역시 또 다른 무게가 되어 나의 투두리스트를 채우게 된다. 고로 어머니와 나 쌍방에게 고통이 되는 것이라는 점. 가끔은 내가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났으며 이런 성격으로 살고 있는지 진심으로 개조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치고 들어오는 육아 일과 업무 일로 오늘의 정리를 또 내일로 미룬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럴 때마다 내 마음도 여전히 편치는 않다는 것과 이런 며느리가 밉더라도 어머님이 조금 더 관용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제는 어머님도 많이 포기하고 (혹은 수용하고) 살고 계신 것 같다. 나는 그 고마움에 빚을 지고 좀 더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으며 언젠가는 멋들어진 정리컨설턴트의 가이드를 받고 살아가면 어떨까 상상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머님은 웃으실 것이다. 정리를 대신 해 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저거 다 일주일 간다~’고 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잠깐만, 어머님 혹시 그 말은 저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언젠가 돈으로 무장하고 깔끔해질 내 옷장과 서랍을 꿈꿔 본다. 그런 의미로 오늘도 일 열심히 할게요, 어머님. 항상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도 옷을 뒤집어서 내어놓은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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