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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Sep 09. 2022

대결 시어머님 vs친정엄마: 김치 편

김치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 1985년 발표된 김치 예찬 곡은 동년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곡이다. 김치는 이렇듯 한국인의 밥상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있는 하나의 견고한 문화이자 집안일을 하던 여성들의 자부심이다. 


타고난 요리 솜씨와 플레이팅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매번 친정엄마의 요리 솜씨에 감탄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현란한 요리 솜씨에 당연히 여느 엄마들 모두가 그런 음식 솜씨를 가졌다고 단정 지었던 나는 중학교 때 도시락을 싸며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을 먹으며 모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볼품없는 채식 위주의 반찬은 요즘 같았으면 환경을 생각하는 비건식이라고 칭송받아 마땅했겠지만 기후위기나 비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그 시대의 내 도시락은 항상 초라해 보였다. 햄이며 치킨 너겟이며 당시 도시락 반찬 프로듀스 101이 있었다면 단연 1-2등을 다투었던 녀석들은 내 도시락에 없었고, 그 칸을 채우는 친구들은 무말랭이나 무생채, 오이지 등의 반찬이었다. 고맙게도 나와 함께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은 소박한 내 도시락의 반찬도 너무 맛있다며 먹어 주었던 친구들이었다. 세 남매를 키우던 엄마는 당시 일하고 있던 식당에서 남은 재료들로 살뜰하게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셨던 기억이 있는데, 정의로운 요즘이라면 그 또한 모종의 횡령으로 부당해고를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치킨이나 피자를 먹어 본 적이 없지만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닭으로 만든 통닭은 우리에겐 특식이었고, 낡은 한옥집의 부엌에 서서 초벌만 해서 피가 고여있던 닭을 서 있는 자리에서 반마리라 먹어 치워서 기함했던 엄마의 표정도 생경하다. 익은 닭이 아니었어도 엄마의 치킨은 너무 맛있었다. 엄마가 반찬가게를 했다면 백종원의 원픽도 모자라 허영만의 식객 리스트에도 분명 올랐으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외식은 나쁜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핀잔에 엄마는 뭐든 척척 해주셨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 아귀찜이나 닭발을 밖에서 돈 주고 사 먹는 사람들을 보고 신기했던 기억도 있으니 엄마가 어떤 음식이든 집에서 하며 절약하려 했다는 걸 아이를 낳고 키우는 반 주부가 되니 이해가 갔다.


      

이 이야기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알리려는 빌드업이다. 그랬다. 어머님의 음식은 소박하고 예쁘게 플래이팅 된 면에서 엄마의 그것과 매우 닮았지만 맛에서 29년 평생 내 혀를 책임졌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가장 입맛에 차이가 나는 것은 김치. 어머님 김치도 훌륭했지만, 지역적 특색인지 경기도와 경상도(혹은 어머님의 고향 충청도)의 김치 맛의 차이는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최초로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김치에 익숙하지 않은 생선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원하고 담백한 친정엄마식 김치가 아닌 어머님의 김치는 진한 풍미의 깊은 맛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김치 사이사이에 있던 가자미 덕분(?)이라는 사실에 나는 당황했다. 맛은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아, 이 김치는 여행 다니면서 먹으면 참 맛있고 의미 있겠지만 매일 먹기는 좀 거시기(?)한데!’라는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했으니까. 아, 대관절 왜 김치에 생선이 있는 거죠? 물고기는 모름지기 회로 먹거나 찜으로 먹거나하는 특별한 요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김치와 생선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하면서도 내 젓가락은 연신 김치를 향하고 있기는 했다. 그 첫 경험은 강렬했지만 사실 매일 경험하고 싶은 미각은 아니었다. 몇 년 뒤에 가자미는 빠졌지만 여전히 어머님의 김치 맛에 적응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영화 <B급 며느리>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김진영 작가는 그의 저서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중 ‘김치 전쟁’ 편에서 김치는 시어머니가 부엌 문화를 전수해주고 싶은 것을 뜻하며 시어머님은 항상 아들 내외 집에 김치를 채워 주고 싶어 하신다고 전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거가 시작되기 전 명절에 항상 김치를 잔뜩 싸 주시며 우리 집 냉장고의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 버렸다. 우리 엄마 역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친정엄마의 김치가 조금 다른 점은 시어머니의 문화 보존 욕구가 아닌 엄마 김치를 좋아하는 딸의 입맛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한 그야말로 친정엄마의 걱정이 한가득 담긴 김치였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을 때에 주로 주방 일을 담당했던 나는 당연히 두 김치 중 선택한 것은 엄마 김치였고, 빠르게 줄어드는 김치 역시 엄마표 김치였다. 가끔씩 집에 오실 때마다 여전히 남아있는 김치를 정리하면서 서운함을 내비치는 어머님의 표정을 보며 나 역시 민망했지만, 망할 놈의 혀는 너무 예민해서 항상 엄마 김치를 찾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머님과 동거가 시작된 후, 나는 결단을 내렸다. 생선이 빠진 건 고사하고 김장을 함께 할 시간이 없을뿐더러 어머님이든 친정엄마든 누구의 김치 매직도 전수받을 생각이 없던 나는, 어머님께 ‘그냥 사 드시는 게 어떨까요?’라는 발칙한 제안을 했다. 어머님도 처음에는 상당히 서운해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자본주의가 주는 몸의 편안함을 거부하지 못하셨는지 한번 사 먹고 난 뒤에는 앞으로 사 먹는 게 낫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셨다. 문제는 여전히 친정엄마가 보내는 김치에 었고, 나는 이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의 음식은 정말 기가 막힌데, 그중에서 한국인이라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김치 맛은 사 먹는 그것과는 비견할 수 없다는 마음에 주는 김치를 거부하지 못하고 항상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어느 순간 나는 연락조차 잘 주고받지 않는 엄마와 어머님 사이의 불꽃 튀는 요리 대결이 도사리고 있다는 살 떨리는 경쟁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예민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님이 올라온 이후 주방의 몫은 어머님이 차지했는데, 거기에 눈치 없이 끼어드는 친정엄마의 거부할 수 없는 요리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을지 싶었다. 물론 서술하는 모든 것은 나의 뇌피셜이고 나는 어머님께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없기에, 그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내가 느끼기에(강조) 엄마의 밑반찬과 김치는 어머님이 할 수 있는 요리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빨간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엄마의 반찬을 실어 나를 때마다 어머님은 ‘엄마가 힘든데 이것까지 챙기느라 고생이 많으시다.’라고 하셨지만 이는 걱정 반, 그리고 경계 반이 함께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충청도 특유의 화법으로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포장된 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추측할 수밖에 없는 나의 멍청함이 한스럽긴 하지만, 이 레이더는 거짓은 아니었다. 이건 분명 보이지 않는 경쟁이었다. 특히 엄마 반찬을 ‘장모님 음식은 진짜 맛있어.’라고 멍청하게 우걱우걱 먹는 남편은 알게 모르게 경쟁의식에 불을 지피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휴전을 요청했다. 이는 전쟁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하게 파악된 상황일지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설령 내 오해였더라도 나는 어머님의 영역은 불가침의 영역, 신성한 영역으로서 존중해야 한다 생각했고 엄마의 반찬은 친정에 갈 때 신나게 먹을 테니 딸이 걱정되고 꼭 싸주고 싶다면 최소한으로 싸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 내외의 가족 사이에서 어머님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영역 중 하나인 요리, 엄마의 위치에서 딸의 엄마로서 엄마가 느낄 수 있는 ‘자기 효능감’의 영역 중 하나인 요리. 이 둘 사이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님의 요리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더 슬픈 건 이 이유를 엄마에게 요목조목 설명할 때 엄마 역시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며 이해한다고 동의한다는 점이다. 똑같이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요리’의 영역에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경쟁은 친정엄마 쪽이 질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며느리들은 어머님의 김치를 단호하게 거부한다고도 한다. 나의 경우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거부보다는 수용 쪽이 더 슬기로운 방법이기에, 또 어머님의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것이 친정엄마의 그것을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외에도 밑반찬을 잔뜩 깔아 두고 식사를 즐기는 우리 가족과 메인 반찬 하나로도 식사를 즐기는 남편 가족의 벽이 느껴졌지만, 나는 어느새 어머님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권력이고 가부장제인 건 알고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 중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기에. 요구하는 사람인 내가 포기하는 편이 빠르기에 선택한 슬기로운 해결 방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친정엄마의 김치를 ‘더’ 사랑한다. 그렇다고 어머님의 김치를 사랑하지 않는 쪽은 아니다. 어머님의 김치, 사온 김치 모두 사랑하는 나는 K-한국인이다(?). 다만 가끔 엄마 김치를 죽죽 찢어서 막 끓인 파송송 계란 탁 풀은 라면에 얹어 먹는 단란함이 그립긴 하다. 이런 이유로 친정에 가는 날은 푸드파이터로 무장한다. 위는 깨끗이 비우고 김치부터 나물반찬까지 모조리 ‘짜게’ 먹을 가고를 하고 간다. 밥은 적게 반찬은 많이. 그때 아니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없기 때문에. 어머님과 친정엄마의 요리 대결은 그즈음에 막을 내렸다. 명절이 낀 오늘 엄마의 반찬을 싸 오긴 했지만, 그전에 싸 주시던 것과는 양도 가짓수도 차이가 날 정도로 아주 적은 양이다. 어머님이 우리 집으로 복귀하시기 전 그 반찬들을 있는 힘을 다해 먹어 없애야 한다. 그래야 어머님이 오셨을 때 또 다른 어머님의 요리를 할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기에.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혹은 자위하며) 어머님을 옹호하고 싶다.      



아니야, 가끔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거야. 친정엄마 김치를 더 맛깔나게 해 준 결혼제도가 또 나쁘지는 않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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