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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Sep 01. 2022

대결 시어머니vs며느리: 청소 편

어머님, 하수구 청소는 자신 있다고요!

2대결 시어머니 vs 며느리

- 청소 편


굳이 고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같은 배 속에서 나온 혈육이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든 , 동거를 시작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부분에서 부딪히기 마련이다. 36년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무수히 많은 동거인과 싸움을 해 왔던 것 같다. 첫 번째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머나먼 타지의 호주에서 시작된다. 함께 사는 언니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아서 출근하자마자 함께 일하는 동료의 귀에 피가 나도록 뒷담화했던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홍대에서 친구와 자취할 때에도 락스 청소를 누가 할 것인지, 머리카락을 그냥 손으로 집어서 휴지통에 버리면 되는 걸 왜 까맣게 될 때까지 두는지부터 아주 사소한 문제로 투덕거린 기억도 떠오른다. 혈연지간인 친언니와 함께 살 땐 주로 스트레스받는 쪽은 덜 깨끗한 내 쪽이 아니라 더 깨끗한 언니였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잔소리를 들으며 파이트 했었더랬다. 남은 남이라서 말로 끝나지만 가족끼리는 정말 어휴, 상상만 해도 언니와의 우정에 금이 쩍쩍 가는 것만 같다. 이 글을 보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맞지 않는 동거 메이트와 파이트를 짙게 해 본 경험이 있으리라 믿는다. 있다면 푸쳐 핸접?! 안타깝게도 주로 동거인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인생을 관통하며 축적한 경험 속에 새겨진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에 못 미쳤을 때, 그리고 그 기준이 상대방보다 많은 쪽이다. 그러니까 더 예민한 개복치 쪽이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개복치가 누구인지는 상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어머님과 나 사이에 개복치는 과연 누구일까?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걸 알 길이 없었다. 어머님과 나의 사이는 가족도 친구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이였기에 그 기준에 대해 마음 놓고 이야기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최대한 내가 피해자라고 말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피해자인 척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둘 사이 중 개복치인 쪽은 나라고 스스로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머님의 입장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더 스트레스받는 쪽이 내가 아니라 어머님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청소를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확실한 점은 둘 다 지저분하진 않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청결 문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확고함이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지구와 지금은 태양계에서 탈락해버린 명왕성 정도의 거리라고 해야 할까? 남편과는 싸우면서 어느 정도 타협이 된다지만, 어머님이랑은 감히 타협하기가 힘들다. 집안일로는 대슨배님인 어머님께 내가 감히! 전업주부도 해보지 않은 내가 감히!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뿐더러 돌봄 노동을 거의 평생 사이드잡으로 해 오신 어머님께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님이 집안일을 맡아서 해 주신다고 하면 항상 부러워한다. 애 맡길 곳 없어 힘들어하는 워킹맘들이 ‘어머님과 함께 살며 뭐가 좋아요?’라고 물었을 때 ‘집안일을 도와주셔요.’라고 하면 하나 같이 보이는 눈빛이 있는데 그 반짝이는 눈빛에서 상당히 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좋겠다, 부럽다, 나도 그런 시어머니 있었으면...’ 하는 눈빛과 동시에 ‘어쩌면 피곤하겠다’라는 다중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자유롭고 편안한 점도 있지만 어머님이 집안일을 해 주시는 것은 때로는 힘들 때가 있다. 성향상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행동을 선호하는 나는 통제 상황에 있는 걸 극도로 꺼린다. 어머님이 계시기 전에 내 손길이 닿았던 집안일이 어머님 손에서 해결되었을 때, 여기 있던 물건이 저만치 치워졌을 때 그걸 옮기고 싶은 손짓을 꾹꾹 참아내야만 할 때, 나는 그럴 때 스트레스를 받았다. 통제상황이라 이야기하면 되게 거창해 보이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두루마리 화장지는 항상 풀리는 쪽이 안쪽으로 향하게 했던 나였는데, 어느새 바깥을 향해 있다. 엥? 이게 무슨 일이지? 글을 보는 독자 역시 휴지 방향이 안쪽으로 혹은 바깥쪽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방향이 다를 것이다. 남편과 나는 안쪽, 어머님은 바깥쪽. 다소 폭력적이지만 효율적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면 안쪽이 편한 우리 둘의 손을 들어주셨어야 합당한데, 유교문화 기반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우리 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어머님의 의견에 맞추어 드릴 수밖에. 처음엔 휴지 방향이 내 집(결혼하기 전 포함 내가 살던 모든 곳)에서는 태어나서 난생처음 보는 방향이라 돌려놨었는데, 반대로 된 휴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위치로(그러니까 어머님이 원하는 위치로) 돌려져 있었고, 몇 번을 반복하다 나는 결국 그 기싸움에 지고 말았다. 그래서 타협한 점이 거실 화장실은 어머님 마음대로 두되 안방 화장실은 내 마음대로 두자는 것이다. 그 뒤로도 안방 화장실 휴지가 몇 번 돌려져 있었지만(대체 어머님 여기는 왜죠...?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만큼은 내 공간이라 생각하고 이곳의 기싸움에서는 나도 물러서지 않았고, 안방에서는 결국 내가 승리했다. 참 내, 이게 뭐라고. 하지만 동거인이 있는 사람들은 다 내 맘 알죠? 알고 있죠? 그렇다고 대답해줘요, 제발...



 청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그 기준을 나누자면 어머님은 깔끔한 편이고 나는 청결한 편이다. 물건이 어떻게 나와 있든 구석구석 더러운 것이 없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에 어머님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청소의 기준으로 삼는 듯하다. 날 잡고 대청소를 하는 날에는 소파 밑 TV다이 뒤, 침대 매트릭스까지 뒤집어엎어서 청소를 하는 반면에, 어머님은 거기까지 신경 쓰기엔 힘에 부치시는 듯하다. 여기까지는 너무 오케이. 어머님 몸도 안 좋으신데, 그거까지 부탁하면 정말 싹퉁바가지 며느리니까. 그런데 세탁기 먼지떨이, 하수구 청소 등 가끔 신경 쓰기엔 자주 지저분해지는 구석구석이 지저분해진 걸 볼 때 나는 그곳을 닦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럴 땐 일단 어머님이 가시길 기다리는데 어머님이 없는 주말이나 시골에 내려가신 틈은 내가 신나게 그런 곳을 청소할 기회다. 처음엔 이해가 안 갔다. 왜 우리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어머님은 구석구석 청소하지 않으시는 건지. 그렇다고 어머님 보는 앞에서 내가 그곳을 닦고 있다는 건 마치...



‘아니, 어머님 여기도 청소 안 하고 뭐 하신 거예요?’라는 핀잔처럼 들릴까 봐 움직이고 싶은 손을 꾹꾹 참고 눌러 담았다.



어머님은 가끔 아버님이 계신 시골에 가신다. 그날도 제사 때문에 시골에 가 계시고 청소할 수 있는 시간이 마침 생긴 때였다. 나는 온 집 안 구석구석을 다 뒤집어엎으며 청소했다. 그야말로 신나게. 싱크대 하수구에 락스를 쫄쫄쫄 부으며 칫솔로 이곳저곳 물때를 닦아 냈고, 화장실에 잔뜩 쌓여 있는 용품을 걷어내며 어디 곰팡이는 없나 확인했고, 화장실 하수구를 열어서 뚜껑도 하나씩 정성스레 세제 물에 담가 소독했다. 그간 꾹꾹 참아온 나의 알 수 없는 청결 욕구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다 닦고 나면 너무나 뿌듯하다. 이 뿌듯함은 어머님이 집으로 복귀하셨을 때 내가 이 정도 닦아 둔 것을 눈치채겠지 싶은 은근한 기대와 더러운 것을 치웠다는 일종의 해방감과 결합한 중간 어딘가의 지점이다. 역사적으로 집안일에 별 관심이 없어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이 아닌, 집안의 구석구석의 레이더를 켜고 있는 여성 둘이 함께 살 땐 성별이 다른 그들과 함께 할 때 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갈등이 생긴다. 청소, 휴지 거는 방향, 이게 대체 뭐라고 심각하게 고민하나 싶지만 처음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내가 생활을 영위한 방식과 어머님의 그것이 너무나 달랐기에. 남편은 사실 이 관계에서 우리가 가진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휴지 방향에서 한번 불만을 표하긴 했지만 결국 어머님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그런 이유로 이 관계가 힘들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좁은 시야를 넓혀 나가려 노력한다. 남편과 결혼 생활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마저 힘든데, 여기에 새로운 엄마처럼 여겨야 하는 시어머님과의 사투. 처음엔 어려웠지만 작은 것들을 이해하고 맞춰 나가며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과 관계 맺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니 어머님, 앞으로도 하수구 청소는 제가 할게요. 걱정하시지 말라고요! 대신 똥 손이라 다림질을 못 하니 그것만 부탁드려요. 지금도 서재 의자에 걸려 있는데, 이것만 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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