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요가 쉽다고 했냐....
요가원에 등록하러 가면 매번 받는 질문이 있다.
“요가 몇 년 하셨어요?”
사실상 따지고 보면 2012년부터 띄엄띄엄 요가를 했으니까, 10년이 됐다고 말해야 하나? 합쳐서 연속으로 다닌 날은 365일이 안되니까 1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전굴도 아직 완성하지 못하는 찌랭이니까 완전 초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가장 후자에 위치한 포지션이 그나마 덜 쪽팔려 보였던 나는 요가원에 등록한 날 최초로 요가를 시작한 날로 카운팅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왜냐면 그동안 내가 했던 요가는 요가의 ㅇ 혹은 와이자도 모른 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전 다녔던 요가원에서는 시간표도 보지 않은 채 그냥 무작정 들어가 따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3개월 정도 연속으로 출석했던 2년 전의 요가원에서는 부동으로 머무는 요가와 음악에 맞춰 춤추는 요가가 따로 있다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나는 그것들을 하타요가, 비트요가 혹은 인사이드 플로우라고 부른다.
아무튼, 요가에 익숙해진 지 6개월 차에 나는 정말 요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다음 시간표에는 어떤 요가가 있는지 궁금해했던 때가? 술을 끊기 전 전날 새벽 2시까지 위스키와 맥주를 들이키며 영화와 넷플릭스를 시청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했던 나날에도 나는 요가와 함께했다. 숙취와 요가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으로 나는 감히 해장을 하며 내 간을 괴롭혔다. (간아 정말 미안했다....)
한 번은 술이 덜 깬 채 처음 보는 수업에 들어갔다. 그게 바로 아쉬탕가였다. 평소와 다르게 선생님은 아무런 웜업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사마스티티(시작하는 선자세)'를 외치셨고, 바로 수리야나마스카라 에이 세트를 연달아 5번을 굴리셨다.
'아, 이거 완전 버피테스트 아니냐?'
사실 헬스의 버피테스트와 요가의 수리야나마스카라는 언어와 외피만 다를 뿐 움직임은 거의 같다. 아쉬탕가에서의 웜업은 수리야나마스카라이다. 에이세트가 끝나면 숨이 가빠오고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는데 무서운 사실은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다. 에이세트가 끝나면 비세트가 나오는데, 이건 비라바드라 1 (전사 1번) 자세를 중간중간에 넣은 자세라 그런지 따라가기도 벅차고 감히 숨 쉬기도 벅차다.
숙취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는 수리야나마스카라 에이, 비 세트를 하다가 처음으로 전 날 술 마신 과거의 나의 뺨을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들숨에 신선한 공기는 온몸을 타고 흘러 날숨에는 독한 술 냄새와 함께 탄식의 한숨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아쉬탕가의 첫 경험은 강렬했다.
웜업을 지나 스탱딩 포즈, 시팅 포즈의 여정 중간중간에는 빌어먹을 버피테스트와 같은 빈야사가 꼭 포함되어 있다. 정말 정말 하기 싫은 나바아사나(보트자세)가 끝나면 아쉬탕가 하프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끝이 보인다. 그 뒤에 나오는 피니싱도 만만치 않긴 하지만..
정말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왜 기합을 받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요가하면 평온해진다는데, 명상이 된다는데 이 미친듯한 속도감은 명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반복되는 빈야사는 숨통을 조였고 '제발 죽여줘..'라 스스로 되뇌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다음 주 아쉬탕가 수업에 또 출석체크 하고 있는 날 발견한 것이다. 당시 아쉬탕가가 무엇인지 어떤 시퀀스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던 나는 지난주와 꼭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는 걸 보며 매우 의아한 마음과 궁금증이 동시에 들었다. 대체 아쉬탕가는 왜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것인가? 이게 의미가 있나?
그런데 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다음 주에 재미없어 보이는 반복되는 시퀀스를 또 체험하러 출석하고 있는 날 발견한 것이다. 평소에 규칙과 반복이라곤 담을 쌓고 살아가는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대체 왜? 아쉬탕가의 매력이 뭐길래?
신기하게도 이 미친 속도감을 파도 타는 즐기는 나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반복되는 빈야사와 시퀀스 속에서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게 발전적인 방향성은 있을지언정 매번 다른 컨디션과 내 몸상태에 따라서 좋아졌다 나빠졌다 달라졌는데, 그걸 관찰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재미 중 하나였다.
반복과 규칙, 그리고 정갈함 속 아름다움과 예술을 발견한 것 같은 새로움이었다. 그 뒤로 나는 아쉬탕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빈야사도 하타도 번갈아 가며 수련했지만, 그래도 몸이 찌뿌둥하거나 몸을 좀 풀어야겠다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아쉬탕가 구령 영상을 찾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에는 아쉬탕가를 전문적으로 수련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아쉬탕가는 인도의 마이솔이라는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요가를 수련하는 수련생들이 마치 자기주도학습을 하듯 아쉬탕가 시퀀스를 자신의 호흡과 속도대로 수련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수련 방법을 그대로 가져온 아쉬탕가 전문 수련 클래스를 ‘마이솔’이라고 부른다. 동네에는 아니지만 마침 옆 동네에 마이솔 클래스가 열리고 있어서 내년쯤엔 등록해 보려고 계획만 가지고 있었다.
흔히들 요가는 그냥 이완하고 몸을 쭉쭉 눌리는 동작만 있다고 생각한다. 요기니들이 긁히는 가장 큰 물음이다.
'야, 요가 그거 운동 안되지 않냐?'
보통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큰 확률로 대근육 운동을 주로 하는 남성분들이시다. 그럴 때마다 그분들을 가둬놓고 아쉬탕가 하프 한 번만 체험시키고 싶다. 과연 그 말이 나올까? 빈야사를 제대로 하면 버피 100개 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근육통을 얻을 지어니... 다시는 요가를 무시하지 마라...!
아무튼 변태 같은 나는 이런 아쉬탕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매일 똑같은 시퀀스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다른 내 몸의 컨디션과 조금씩 발전하는 아사나를 보자니, 이게 묘하게 뿌듯함이 있다. 그런데 그 뿌듯함을 느끼려면 이제 매일 같은 수련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 이거야 말로 요가가 지향하는 진짜 수행에 적합한 수련 아닐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다 마이솔을 하는 사람들은 문데이(보름달 뜨는 날)를 제외하고 매일 수련한다. 그 모습이 나에겐 신을 모시는 사제와 같은 수행자의 모습이었기에, 언젠가는 나도 꼭 마이솔에 발을 디디는 날이 오길 이 글을 통해 또 한 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