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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Feb 05. 2018

맨해튼 산책 (4)-오큘러스 비상하는 그라운드 제로

뉴욕의 젊은 건축물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진 자리 Ground zero에 만들어진 거대한 추모 폭포는 지상에서 지하로 쏟아진다.

모든 건축물이 수직 상승. 키 높이를 자랑하며 부동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맨해튼에서

수직상승이 아니라 지하 9 미터 땅 속으로 수직낙하하는 건물.

쉼 없이 심연으로 흘러드는 현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현재 진행형의 폭포라니....

가장자리에 반듯하게 새겨진 그들의 이름과 음각된 이름에 바쳐지는 장미 한 송이.


Memorial Reflection Pools 앞에 처음 섰던 몇 해 전, 아무런 설명 없이도 그 자리가 갖는 상징성은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꼈고 말문이 잠시 닫혔었다.

마이클 아라드, 조지아텍에서 공부한 이스라엘 특공대 출신의 젊은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소식.

그의 명징한 철학과 시각화 능력에 존경을 표한다.


© Lee Shanel.  Arial view of Ground Zero Memorial Reflection Pools and Museum


다시 와서 선 리플렉션 풀 앞에서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구조물은 추모의 인공 연못 너머

비상을 위해 날개를 펼치려는 흰 새의 형상- 오큘러스라고 한다.

맨해튼 남단에 들어선 가장 젊은 건축물.

풍경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연못 앞에서 도약하려는 흰 새를 현대적이거나 미래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듯하다는 주관적인 느낌.

오큘러스가 올라가는 동안엔 뉴욕 올 때마다 그 앙상한 생선뼈 같은 구조와 형상을 보면서

무엇이 될까 늘 궁금했었는데, 승리의 날개 모양을 한 멋진 흰 새가 탄생해 있었다.  

 

© 구름바다, Oculus - One Rainy day , January 2018
© 구름바다, Oculus - One Rainy day, January 2018


© 구름바다, Inside Oculus - One Rainy day, January 2018


빛이 들어오는 길고 긴 눈. 삼엽충의 등껍질을 닮아보이기도. 판테온의 맨하탄 버젼이다. 아이폰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오큘러스. 구글이미지

오큘러스는 눈이라는 의미지만 건축학적으로는 천장이 개방된 구조를 뜻한다. 새의 날개를 닮은 구조의 중심 부는 밖에서 보자면 척추를 이루지만, 실내에서 보자면 빛이 들어오는 천창- 눈이 되는 오큘러스이다. 판테온의 맨해튼 버전인 셈이다. 판테온의 동그란 눈동자와 댓구를 이루는 맨해튼의 오큘러스의 등뼈 같은 긴 눈동자는 전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오큘러스는 매년 9월 11일 오전 열 시 28분, 911 추모식 때 눈을 뜬다고 한다- 천창이 완전히 개방되어 햇살을 받아들인다는....


Copy Right. Berlin Rosen, "Way of Light - 911 Memorial 2017"
© 구름바다, Inside Oculus- One Rainy day, January 2018


예술미 무척 풍기는 외양과는 달리 내부의 쓰임새는 매우 실용적이다. 명품 쇼핑몰 그리고  뉴욕과 뉴저지를 가로지르는 일곱 개의 지하철이 교차하는 환승역 World Trade Center Station -PATH. 이 역이 한참 건설 중이던 두 해 전에 전철을 타고 친구에게 가던 길에는 전차가 이 역을 건너뛰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흰 새는 전철역의 커버인 셈이다. 건축기간 12년이 걸린 오큘러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지하철 역에 이름을 올렸다. 카툰을 그릴 수 있다면 기다란 일곱 개의 무지개색 전철들을 리본으로 묶어서 입에 물고 맨해튼 위를 비상하는 익룡을 그려도 좋을 것.



오큘러스의 설계자는 스페인 출신의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라는 이름의 건축가인데, 이런 선형이 두드러지고 곡선이 탁월한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건축가로서 만족하지 않고 스위스로 건너가 구조공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까지 마쳤기 때문이라는 소식을 동행했던 건축가님으로부터 들었다. 가우디의 스페인 건축 헤리티지를 이어가시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선생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맨해튼에서 맹활약 중이신 건축가님과 세계 해양 구조물 설계에 투신 중인 구조 공학자는 고등학교 동기들이다. 지하도를 건너 브룩필드 쇼핑몰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그들은 이 건축물의 재료와 마감 기법, 이 공사를 어느 나라에 맡겼으면 더 잘 했을 것이라는 의견들, 공사 기간과 비용 등에 관한 매우 구체적이고 따분한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나누고 있었다. 물론 설계자인 칼라트라바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들을 포함해.... 나는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동안 가오리 혹은 익룡의 뱃속에 들어온 기분이 되어 물속을 유영하는 가오리 혹은 비행하는 익룡의 골격을 닮은 환승역의 천정과 측면 구조를 살피며 순백의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곡선의 빔들 연결부위마저 평범하지 않다. 이분은 해부학에도 정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으로는

아름다운지고... 참으로 창의적 인지고....

오리지날리티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로군....

가오리의 유영은 부드럽기도 한지고....

딱딱한 재료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 낸 설계자와

기술자들은 복 받으소서..... 를 되뇌면서, 내가 좋아하는 맨해튼 95번 도로의 지하에 새로 난 터널을 걸어서 건넜다.


© 구름바다. 불도 켜지는 오큘러스의 깃털끝

 뜻하지 않은 국가적인 사고를 당한 후, 삶과 죽음을 반추하며 다시 힘찬 비상과 도약을 약속하는 뉴욕의 다짐을 형상화한 이 도심 속의 공원은 아름답다. 현대문명의 정점에서 웬일인지 인간의 본연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이스라엘 특공대 출신의 젊은 건축가와 스페인 출신의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하이얏트 호텔이 제공하는 구글 이미지

두 해전 겨울, 눈이 발목까지 푹푹 쌓인 소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동기 건축가님을 만나던 날. 그날은 우리 테이블 좌우로 각각 이탈리아와 프렌치를 구사하는 핸섬하고 슬릭 한 뉴요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던 우리 테이블의 구성원들 역시 글로벌 시티 슬리커들 못지않은 멋진 모습들이었던지라, 좌우에서 스테레오로 들려오는 유럽어들을 음악처럼 들으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 와인을 곁들인 성게 파스타가 인상적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일월의 마지막 주, 옷이 젖지 않을 만큼만 습기가 내려앉던 일요일 오후의 한적하고 깔끔한 맨해튼 남부. 그리고 오큘러스 지하도를 건너가 브룩필드 이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았던, 우리가 헛슨 씨라 부르는 허드슨 강의 평온한 흐름. 장갑을 끼지 않고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만큼 포근한 주말 날씨가 허락되었던 일월의 마지막 주말. 우리가 도착하기 전 1월 내도록 수은주는 영상으로 올라온 적이 없었다지만, 지난 주말만큼은 인간적인 온기를 잠시 되찾아 주었다. 잠시간의 만남 뒤에 또 긴 이별을 해야 하는 친구는 이젠 잘 가라는 말 대신에 다녀오라는 말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선형으로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선생이 세계 곳곳에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건축들을 감상하는 이월의 첫 주말도 나쁘지 않다. 오늘도 대기는 지난 주말의 뉴욕처럼 하루 종일 포근한 습기를 머금고 있고, 쇼팽이 어울리는 날씨다. 조만간 그가 설계한 아일랜드의 사뮤엘 베케트 다리를 건너볼 수 있게 되기를...

https://calatrav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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