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던 길 새롭게 보기
한동안 걸렀던 아침산책을 오랫만에 시작하는 것은 늘 다니던 동네도 새롭게 보게하는 효과도 있어 좋다. 평소에는 졸릴정도로 고요하다고 생각했던 롤랜드 데인즈의 차분하고도 경쾌한 기타 재즈가 딱 맞아떨어지는 아침의 대기다. 은은한 노란빛으로 물들었던 거리의 나무들은 이제는 잎을 모두 떨구었다. 잎을 벗은 유선형의 나무는 거대하고 예쁜 빗자루 같다. 사방은 환했지만 해를 삼킨 구름 덕분에 눈이 부시지도 않았다. 해를 삼킨 독특한 구름의 모양새를 올려다 보며 나는 지금 빙하와 빙산이 녹고 있는 북극해 상공 어디쯤에 떠 있는거라고 주문을 걸어보기도 했다. 바다와 하늘의 얼굴은 매우 흡사해지는 때가 많다. 서로를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면서 닮기밖에 더하겠는가... 거대한 빙하의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공간을 가로지른 두개의 전깃줄이 눈에 띄었다. 전깃줄을 독점하고 앉은 작은 새 두 마리가 날 좀 봐줘 하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고 깨끗한 산책길에 쪼그리고 앉아 새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주 홀가분하고 자유로와 보였다. 어젯밤에 쓰기 시작한 책의 머릿말의 마지막 부분을 오늘은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산책이 끝날즈음, 해는 구름을 빠져나왔다. 쨍한 햇살이 시작되면서 롤랜드 데인즈의 기타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로 바뀌고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기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두 마리의 새는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고, 나는 그 녀석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분명히 전깃줄 위에 앉아 노니는데, 사진 상에 녀석들의 형태가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카메라의 눈과 나의 눈의 차이다. 비록 점으로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새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작은 아이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보라고 하자 아이는 깔깔깔 행복해 했다. "너무 웃겨~" 그리고는 새를 찾았다. 먼지가 아니다. 이것은 새다.
우주인의 눈으로 보면 나 역시 우주의 먼지로 보이지 않겠는가. 나는 여기 북극해의 상공에 떠서 온갖 상상을 다하며 오감을 작동시키지만 또다른 별에서 나를 건너다 보자면 한 알의 우주먼지에 지나지 않지 않겠는가.
명확하고 심플한 언어로 말하는류시화 작가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공허한 말과 비난으로 채우기에는 이 지상에서의 삶이 너무 짧다. 당신과 나, 별의 먼지인 우리는 어느 날 더 이상 이곳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