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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03. 2016

색채를 통한 감정의 치유, Mark Rothko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tragedy, ecstasy, doom, and so on. And the fact that a lot of people break down and cry when confronted with my pictures shows that I can communicate those basic human emotions… The people who weep before my pictures are having the same religious experience I had when I painted them. And if you, as you say, are moved only by their color relationship, then you miss the point.

                                                                                                                                                   Mark Rothko


당신의 슬픔은 어떤 색깔을 띄고 있을까? 당신의 기쁨은 어떤 색이며, 좌절은 어떤 색을 띄고 있을까?  노랑과 오랜지를 입은 로스코의 캔버스 앞에서 침묵할 때 가슴에 은근히 차오르는 감정이 바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인가?  로스코가 표현한 희로애락의 색채 앞에서 나와 당신이 느낀 희로애락이 공명하는지....


이차대전 후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자리를 점하고 있다는 로스코의 중기와 후기 작품 60여 점이 타운을 방문하는 큰 기획전이 연초에 있었다. 물론  로스코의 초기작들은 누가 보더라도 그가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잔통적인인 구상에 가까운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의 캔버스는 2차 대전을 지나면서 형태와 색이 점차적으로 단순해져 갔고 종국에는 미니멀리즘으로 불릴 정도로, 거대한 캔버스를 한 두 가지 색채만으로 채색한 작품들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전시된 작품들은 아마도 지난해 가을 한국에서 몇 달의 전시를 마친 뒤 이곳으로 날아온 듯하다.


(사진들은 전시장에서 찍어왔으며, 그림 아래 부연은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한 미술관의 정책에 감사를 드립니다.)

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져 양팔 뻗고 기절한 초록색 외투를 입은 옛날책... 초록색 외투의 질감이 손끝에 느껴지는 것만 같은... 환촉을 유발하는 초록




단무지에 마요네즈 한줄? 또는 상자곽 속으로 들어간 노랑 나비. 잘린 더듬이의 쓰라림.



그림이라 하기엔 뭔가 평평하다. 색상의 거대한 팔레트 전시였다고 말하면 심플하다. 캔버스가 거대하였으므로 사용된 물감의 양은 상당하였겠지만, 물감의 양이 그의 작품들의 가격과 비례하는 것은 아닐진대,  그가 55년에 그린 제목 없는 작품 "노랑과 오랜지, 노랑과 밝은 오랜지 (YELLOW, ORANGE, YELLOW, LIGHT ORANGE)" 가 2014년 소더비 경매에서 36.5 밀리언에 낙찰됐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문장은 읽히는데 내용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미술품 가격에 대해서는 좀 다른 류의 이해가 필요한것이 아닐까. 구글로 찾아본 이 그림은, 노랑과 오랜지가 배합되어주는 밝음, 경쾌함, 삶의 찬란한 한 때... 등의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후레지어 꽃향기도 묻어오는 열 세살의 기운찬 아침같은 느낌이다.


YELLOW, ORANGE, YELLOW, LIGHT ORANGE. Mark Rothko 1955



그러고 보면 잭슨 폴락을 필두로 미국의 현대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물감을 펴서 바른다기 보다는, 물감 자체를 캔버스에 들이 붇고 흗뿌림으로서 그야말로 틀을 깨는 생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쳐갔던 것이리라. 미국식 자유와 풍요를 지구 반대편 유럽에 선전하기에 딱 맞아 떨어지기도 했던 움직이었으리라. 잭슨 폴락을 늘 "꿈보다 해몽"이 아닐까라 생각하고 있던 나이지만, 제한된 크기의 프레임에 갇혀있던 정적인 이차원의 평면에서 뛰쳐나와,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 위를 뛰어다니며 동적인 움직임을 더한 3차원의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때가 온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다. 그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나에게는, 색채주의 일변도의 현대 추상미술의 세계는 자칫 발을 잘못들이면 마음이 삐딱해지고 흥이 사그라들어 버리는 난해할 수도 있는 세계다.  

이게 대체 뭐람?


그러나, 자신의 그림을 통해 관람자와 소통하고 대화하기를 무엇보다도 원한다고 하는 로스코는, 최소한의 형태와 최소한의 색채를 보는 이의 눈 앞에 제시하면서도, 개개인들로 하여금 깊은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게 하는 신기한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다. 내게는 그렇다.  로스코의 색채를 입은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 있으면, 봉인되어 있던 참으로 사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스멀스멀 풀려나와 현재의 내게 말을 건넨다. 같은 그림일지라도 매번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롤랑 바르트의 언어를 빌린다면 punctum을 경험하는 순간일 것이다.




Back and Gray, 그가 그린 많은 "검은색과 회색" 그림 중 하나. 2016년 휴스턴 전시에서



뜬금없는 위로도 건넨다. 이 무미건조한 회색과 까만 색채의 그림이 느닷없는 위로를 건네 온다.

화면 바깥에 앉아 화면 속 저 건너편의 어둠을 들여다볼 때 갑자기 이유모를 친숙함과 포근함이 느껴져 마음이 안정되고 긴장이 스르르 풀어지는....

좀 이상한 그림이다.


전시회를 다녀온 다음날 아침, 서재의 모니터 앞에서 무척 열중하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뭐하시느냐는 나의 물음을 고개를 돌리는 남편의 눈은 장난끼 가득 반짝이고 있었고, 모니터 위에는 어제 미술관에서 본 로스코의 노랑색 그림과 같은 노랑 팔레트가 펼쳐져 있었다. 그렇지, 요즘같으면 어림없었겠지. 로스코는 역시 때를 잘 만나고 부자 친구를 많이 두었던 작가라는데 동의하며 "또 뭐 그려줄까?" 라는 남편의 질문에 둘이서 껄껄 웃었다.


그리고, 이름... 러시아계 유태인이었던 그의 원래의 이름이 마르쿠스 로스코포비치였단 사실은 의미심장게 다가온다. 나찌가 기승을 부릴 때, 자신의 핏줄을 숨기고자했던 그가 포비치를 생략하였던 것인데, 우리는 또 첼로를 연주하시던 로스트로포비치 선생이 있으니... 포비치로 끝나는 라스트 네임을 가진 유태가문들의 유전적 비밀이 궁금해진다.  



로스코 채플 Rothko Chaple

다운타운에는 그의 말년 작품 열네 점이 영구 전시되고 있는 그의 이름을 딴 채플이 있다. 이름하여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이라 한다.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이름으로 건립된 조그마한 채플을 이런 류의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세상을 마감했다. 사실은 채플이 완성되기 전에 뉴욕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채플은 그가 죽은 다음 해에 완성되었다.  이 채플은 세계적인 석유재벌 Schulumberger 슐럼버거가의 상속녀, 도미니크 슐럼버거 메닐 여사가 예술대학 학장으로 있던 세인트 토마스대학원 캠퍼스 내에 설립을 하려하였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캠퍼스 울타리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대학의 건너편 공원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 로스코 채플은 메닐 컬렉션 여섯 채의 건물 중 하나이며, 로스코가 생을 마감할 당시 여섯살이던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스코 박사가 로스코 재단의 프레지던트로 있으며 관리하고 있다.


71년에 완성된 채플은 돌로 지은 나즈막한 단층의 작은 건물이고, 창문이 없는 벽의 사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완전히 깜깜한 검은색 또는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에 가까운 색으로 가득 찬 캔버스들이다. 뾰족하게 솟은 천정의 중앙부에서는 빛이 흘러 내려온다. 그러니까 이 채플은 45년 정도 된 건물이다. 종교를 초월하여 각 종교계의 세미나나 회합 등의 행사들이 이곳에서 종종 주최되고, 대중에게 개방되어 연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그림이 종교적 경험이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그의 그림이 가끔 나를 위로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가 바랬던 종교적 경지의 체험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로스코 채플을 처음 방문했던 그 봄 날, 사면이 검은 그림으로 덮여 있는 그 공간에서는 흔히 생각하기 마련인 고요와 안정의 느낌인 종교적 체험을 한다는 것은,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 같았고, "차단"과 "단절"의 감정들이 안절부절하며 마음 끝자락에서 맴돌았다. 바깥은 환한 봄날인데,  돌로 지은 요새같은 실내에 들어와 거대한 검은 벽면을 마주하며  뾰족한 천장을 통해 인색하게 실내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오는 듯하여, 남편과 나는 5분여를 머물지 않고 로스코 채플을 빠져나왔다.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이게 뭐람.....



나는 아마도 종교적인 체험을 하고자 애쓰고 있을 듯한 그림 속의 저 사람이 존경스럽다.


로스코가 말년에 제작한 이 검은 캔버스들은 그가 한참 활동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색상들과는 무척 다르다.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껴지던 사방에 걸려있는 그의 캔버스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단과 좌절의 기운은, 그러니까 그가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과 환각에 시달리던 그 시절의 절망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그림들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스코의 그림들은 보는 사람들과 정말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로스코를 추앙하는 애호가들이 들으면 화를 낼 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방을 검은 그림으로 막아 놓고 뾰족한 천정으로만 빛을 흡수하는 그 공간을 채플이라 부르는 것이 나는 아직도 미심쩍다.


그의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색채의 팔레트들을 충분히 역동적이고 마음을 끈다.  

어쨌든,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을 치유하기를 바랐으며, 그중 많은 그림들은 실제로 치유의 그림들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왜 세상으로부터의 통로를 차단하고 자신해서 세상을 등졌던지는 좀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

그의 캔버스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기운을 건네고 또 동시에 자신의 고독과 절망을 고백하는 아이러니다.  실은 인생의 단순한 희로애락을 가장 원초적으로 가감없이 드러내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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