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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Aug 15. 2020

맑은 날의 해변

a fine day afternoon at the gulf of mexi

지구가 어느 날 문득 소강상태에 진입하고 반년이 지났다.태양이 작열할 무렵이면 긴 터널의 끝을 볼 수 있을거라던 기대는 사그라들었고 8월 중순의 태양아래에서도 여전히 맥을 못추는 현재라는 시간의 지도. 삐뚜루서서 안간힘을 쓰고있는 팜트리 한 그루는 현재의 상황만큼이나 안쓰럽다.

나사 존슨센터를 지나 한시간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대륙이 바다를 만난다. 멕시코만의 연안을 떠가는 선박들과 석유시추시설이 눈에 들어오는 그곳은 겔베스톤 아일랜드. 이베리아의 향기가 느껴지는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들도 자주 눈에 띄지만 이 고픙스럽고 화려한 건물들을 고이 잘 보전 하겠다는 시당국의 의지같은 것은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가 맞닿은 멕시코만의 바다에는 오일 리그들이 포진하고 있다. 몇 시간 동쪽을 향해가면 BP의 딥워터 호라이즌도 나타난다. 역사상 최악의 오일정 폭발로 인한 오일누출 사건의 그 현장 말이다. 그 사건을 내용으로 만들어진, 말코비치가 주연했던 그 영화는 조마조마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위기상황 현장대응 프로토콜의 적절성과 비록 비극적인 사고는 일어났지만 리더들의 수습하는 용기에 눈물을 찍어내며 엔딩장면에서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무시무시한 사고였고 많은 인명 손실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스스로 신속대응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장에 있던 인원이 전멸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예상대로라면 화석연료는 지금쯤 고갈되어야 했겠지만, 왠일인지 방치되어 메말랐던 오일정에서 오일이 새롭게 샘솟는 기적같은 일도 보고되곤 한다. 오일 화수분이라니.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연과목 시험이었다. 문제는 다음 중 고갈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아껴 써야 할 자연자원은 무엇인가였고 네 개의 선택지에는 물과 석유라는 잠정적 정답이 있었다. 배우던 내용이 석유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석유가 분명해 보였지만 나는 점수가 깎일 것을 각오하고 물을 아껴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답을 냈다. 근래에 처치곤란한 지경에 이르른 오일 수급에 관한 세계의 사정들을 전해들을 때면 어김없이 동반되는 어린 시절 기억이다. 그래 니가 맞았어...

모래톱이 만들어낸 수평선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모래톱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바다는 아니었지만 약한 미풍에도 바다가 뿜어내는 소금기와 고운 모래가 섞여 날았다. 해상 산업과 교통로인 이 현장은 싱가폴의 센토사 섬 앞바다를 연상시켰다. 휴양지로 이름 높은 샹그리아 호텔의 파라다이스 같은 전경을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 그곳은 와이키키해변과 같아보였다. 와이키키의 맑은 바다와 라군에서의 상쾌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섬에 도착했으나 다음 날 아침 맞닥뜨린 해변의 꼬락서니는 선박으로 가득한 해상 교통로였던 것이다. 멕시코만의 이 바다와 같았다.  그 어이없음을 상쇄시켜 주었던 동물들은 골목을 어슬렁 거리던 공작새들. 유기견도 아니고 길고양이도 아닌 화려한 초록빛의 날개를 가진 공작새가 호텔 안 밖을 어슬렁거리며 유유자적 이 구역의 주인은 자기들임을 알리고 있었다.

vacation home이 대단지로 건설된 비치타운의 평화롭고 이국적인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짧은 여행을 며칠 내려와도 좋겠다.

미국 에너지 산업의 메카. 그 중심부의 화려한 마천루 위로 밤이 내리고.... 이 도시에서 보낸 여름의 추억들은 스카이돔에서 펼쳐지던 금요일 밤의 야구경기, 경기 후에 끝없이 길었던 불꽃놀이의 열기. 키가 무척 큰 야오밍이 성큼성큼 걷기만 하며 경기를 펼치던 NBA농구장... (야오밍은 요즘 뭐하나?) 과 함께 했다.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었던 컨서트 홀과 오페라 극장. 이번 가을은 컨서트를 양보를 해야할 걸 생각하니 아주 쓸쓸해진다. 그렇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찍기도 하다보니 익숙해진다.

왕관 쓴 병원 건물은 여섯 동의 병원 컴플렉스 중 하나. 지난 여름 내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의 오피스가 저 건물 22층에 있다. 다음주엔 annual check up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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