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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23. 2016

대기의 온도, 마음의 온도

그리고 시간의 온도

일평생 사계절을 만끽하며 산다는 것은 알고 보면 흔치 않은 축복이다. 대기의 온도가 변하는 자리에서 마음 가득 차오르는 다채로운 일렁임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대단한 축복이다.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인 나라에서 살았었다. 아이들이, 끝내 봄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은 긴 겨울에 스키복 차림을 하고서 눈으로 뒤덮인 유치원 가는 길을 힘들어하는 날은 거실의 유리벽을 통과한 복사열 아래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토마토 싹을 틔우며 봄날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계란 케이스에다 동그란 흙 디스크를 넣고 토마토 씨앗을 두어 개 떨어뜨린 후 따뜻한 물을 부어주면, 납작하던 흙 디스크가 순식간에 열 배쯤 키가 커졌다. 며칠 후에 토마토 잎의 파란 싹이 트고, 아침마다 마술처럼 돋아난 파란 솜털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은 미리 봄을 느껴보곤 했었다.


계란 대신 흙 뭉치 위에 돋아난 토마토 싹들이 하나씩 들어있는 케이스를 들여다보며 아이는 물었다. "엄마, 그럼 이건 토마토 호텔이야?" 네 살짜리의 시적인 유추였다. 그러고 보면 말을 못 하던 시절에도 아이는 그 조그만 손가락을 움직여 짧은 무언가 (無言哥)를 쓰곤 했고, 엄마는 그것을 언어로 옮기는데 골몰했던 날들이 있다. "엄만 루비, 나는 맥스." "차도 집도 열쇠로 열고 들어가요."  "대한항공을 타면 맛난 사탕을 먹을 수 있어요." "여기도 맥도널드 저기도 맥도널드- 맥도널드의 m자 사인 탑"  


식료품점에서 사 온 상추의 뿌리를 물이 담긴 큰 보울에서 담가 뿌리를 낸 후, 갤런들이 물병에 흙을 넣고 밭 삼아 일군 미니어처 상추밭도 아이들의 눈에 봄의 색깔을 물들여주곤 했다. 계란 껍데기를 가장자리에 둘러 동그랗게 솟은 울타리도 만들어 주었다. 해가 일찍 지는 오후, 거실의 유리벽에 반사된 토마토 호텔과 상추의 정원이 있는 풍경은 귀여운 데가 있었다. 눈이 녹으면 잔디밭이 넓게 드리워진 공원으로의 산책길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조금은 들뜨는 기분이 들곤 하였다. 이웃들과 갖는 차 시간과 여러 나라 언어를 쓰는 친구들이 갖는 모임에서는 공기의 색깔마저 다채로웠다. 각자가 가진 마음의 온기를 나누며 눈이 녹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일 년의 반이 여름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 여전히 식물에 마음을 기대며 살고 있지만, 장난 같은 토마토 호텔을 만들 것이 아니라 토마토 농장을 꾸며도 좋을 만큼 땅도 햇살도 풍부하다.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어느새 덩그러니 자라난 오이며 허브들이 내가 자릴 비운 시간들을 증거 하곤 한다. 햇살이 키워내는 식물의 놀라운 생명력과 번식력은 늘 감탄이다. 멋대로 자라는 식물들과 공생하는 일이란 적잖은 노동력과 참을성을 요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름이 절반인 나라에선 모두가 태양을 피하고 싶기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공원엘 나갈 일 같은것은 없다. 모두들 자신들의 성채에 들어앉아 종종 파티나 열어 사교를 즐길 뿐 산책길은 언제나 조용하다.


여름나라와 겨울나라의 상반되는 기후의 차이는 물리적인 온도 차이만은 아님을 발견한다. 구성원들의 마음의 온도는 대기의 열기와 반비례한다. 구성원들의 마음의 온도는 대기의 냉기와 반비례한다. 네발 달린 가족들의 체구도 햇살의 강도와 반비례한다. 일 년의 반이 겨울인 나라에선 몸의 크기라도 키워 공기를 데우려는 듯 이웃의 강아지들은 송아지만큼 컸었다. 일 년의 반이 여름인 나라에선 이웃의 강아지들은 농구공만큼 작고 앙증맞다.


꺼지지 않는 태양의 열기에 마음조차 타들어가고 그와 반비례하는 구성원들의 마음의 온도에 정신이 혼미해져 갈 무렵 대학 초년에 읽은 신영복 씨의 옥중 서간이 생각나곤 했다. 옆사람을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하는 여름 징역살이의 고역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서술하셨던 대목이 각인되어 있는데, 징역살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듯 하다. 내 몸이 견뎌야 하는 외부의 온도에 따라 옆사람을 원수로도 여겼다가 전우로도 여길 수 있는 인간이란 얼마나 단순하고도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가. 태양의 고도가 높은 자본주의의 정글에선 옆사람은 열 덩어리 이상인가 보다. 북극권 국가들이 절반쯤은 사회주의적인 복지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아마도 몸으로 체화한 겨울나라의 공생의 절박성, 옆사람을 난로로 인식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해 본다.


겨울나라와 여름나라 주민들의 마음의 온도차에 당황하고 있을 무렵, 서로를 적도인과 극지인이라 칭하는 친구 부부와의 만남은 냉기와 온기가 섞여 만들어 낸 적절한 공생을 보여주었다. 핀란드인 남편은 베네수엘라 출신의 엔지니어인 마리엘라 여사와 결혼을 하고, 그녀의 사촌 또한 남편의 핀란드인 친구와 결혼을 하여 이웃해 살고 있다. 극지와 적도의 호혜로운 만남을 성사시킨 두 커플이다. 적도 출신 부인들의 열정이 극지 출신 남편들의 차분함을 뒤흔들어 놓았던 지지난해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대채로왔다. 덴티스트로 은퇴하신 그녀의 부모님은 베네수엘라로부터 날아오셨고, 프랑스로부터 날아온 그녀의 사촌의 사돈 아가씨까지 초대되어 그 저녁은 세대와 대륙을 넘나드는 재미난 가무의 하모니를 연출했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각자 담요를 하나씩 뒤집어쓰고 수영장 가에 둘러앉아 난로를 쬐며 한국의 컵차기와, 일종의 자치기와 같은 베네수엘라의 자파따 놀이 등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핀란드 출신의 토미 씨에게 "당신 노래할 때 보니까 해리슨 포드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젊쟎은 토미씨는 그런 칭찬이 쑥스러웠던지 옆차기를 하는 시늉을 했다.해리슨 포드를 싫어하나 보았다.   


서리 내리기 전 무렵의 가을 아침.

아침에 깨어나 보면 문득 낯선 여행지에 와 있는듯한 생경하고도 상쾌한 느낌이 들곤 하던 그 시간의 온도.

온몸의 감각기관들과 세포들이 모두 깨어나 계절을 반기고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그 시간의 온도를 기억한다.


또는 아이의 유치원 하교를 기다리며 주차장에 앉아 차창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접사 하던 시간. 맨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지만, 카메라를 접사 모드에 놓으면 눈송이의 결정이 제법 또렷이 보이기도 하였다. 하교한 아이와 멀리 있는 친구들과 그날의 눈꽃을 함께 나누며 지낸 겨울날들... 여름에 일용할 겨울의 양식. 태양의 고도가 높아져 피부에 닿는 햇살이 따끔따끔한 날, 집안의 온도를 한껏 낮춰놓고 시간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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