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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Sep 22. 2021

교교한 달빛 속에 mare nubium

추석을 전후로 변화무쌍했던 것은 심야의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의 동태였을뿐, 달빛은 언제나... 오늘도 교교하다. 추석의 보름달은 지상과 가까웠고 깜짝 놀랄만큼 컸다. 저녁 운동에서 돌아오다 지평선 위에  있는 달을 발견하고선,  달과 오래  맞추고 싶어서  호수를 따라 20분을  달렸다. 달의 초상화를 열심히 그리던 작년,  남쪽 분화구 티코 바로 북서쪽에 위치한 mare nubium 구름의 바다를 발견하고는 기뻤다. 오래 써오던 이름.. 나는 구름바다. 여전히 구름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날아와 오스틴에서 첫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속깊은 아이 J에게 달 사진을 보내주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달과 별의 예쁜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중이라는 대답.... 천상의 구체들을 자주 올려다보렴. 니 마음도 예뻐질거야.  


달의 지리 공부. 그 옛날 한참 어린 시절의 소설가 이승우는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말도 안되는 감상적인 제목의 소설을 펴냈는데, 기발하고도 서정적인 제목에 끌려서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소설에서 뭐라고 했던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달을 볼 때마다 이승우의 소설 제목이 떠오르고 그 이름이 떠오르니, 내가 그의 소설의 내용을 새까맣게 잊었다 하더라도 그는 실패한 것은 아니다. 제목의 중요성.


 아이 패드 위에 미끌거리는 애플펜은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손글씨가 이지경은 아니지만, 미디움이 도와주지 않을 때는 뭐 어쩔 수 없다. 아이 패드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좀 덜 부드럽고 압착력이 강한 연필같은 느낌이 나는 펜이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9월 초입에 날아온 허리케인은 무거운 비를 며칠 뿌리고는 우리를 살짝 비켜갔다. 봄과 여름에 허리케인이 불면  그해 겨울엔 여지없이 눈이 내리곤 했다. 2008년 9월에 허리케인 피해가 꽤나 있었고, 그 겨울에 이 열대의 텍사스에도 눈발이 날렸다. 잠시 마음이 동해 여기저기 전활 걸어 눈발을 환영했으나 ‘그게 어쨌다고…’ 심드렁했던 텍사스인들. 무시무시한 하비가 휩쓸고 간 그 겨울에도 눈이 제법 많이 내려, 아침에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싣고 떠난 자리에는 난장이 눈사람들이 머플러를 두르고 서 있었다. 눈을 소복히 뒤집어쓰고서도 여전 선명한 핑크빛이 생생하던 마당의 장미송이. 잊지못할 장면. 올해는 아직 이렇다할 강한 바람도 허리케인도 없고, 내가 자리를 비운 지난 봄과 여름에는 궃은 비만 오래 오래 내렸다.


니콜라스 북상 전야 거리의 온도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올려퍼져야 할 것만 같았으나 이제는 완전히 회복이 되어 한낮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고, 맑은 하늘 뭉개구름은 의리 깊은 친구처럼 여전한 얼굴.  


예정대로라면, 지난 봄에 미리 등록해 두었던 suzan lichtman & catherin kehoe의 워크샵에 참가하면서 지금쯤은 신나게 새로운 작품에 투신해 밤을 세고 있어야 하건만... 투신은 매우 위험하므로 몸을 사리고 있는 시간.


여기까지 읽으신 모든 분들께도 평화와 안녕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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