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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Jul 26. 2024

St. Bavo cathedral in Ghent

adoration of mystic lamb

손에 잡힐 듯, 벽의 온기가 느껴질 듯 환한 빛. 반가웠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출입할 수 있을 듯 아담한, 견고한 벽 가운데 난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게 될 이야기가 궁금했다. 유럽의 땅끝인 브루게는 북위 51도. 우리가 기억하는 화려한 도시들의 이름은 대체로 북위 60도에서 끝난다.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러시아를 연결하는 오슬로, 스토크홈, 세인트 피터스버그. 인류의 문명이 꽃필 수 있는 북방 한계는 아마도 북위 60도 일터. 북위 40-60도 사이에 담긴 시간이 궁금했다.

 


지구의 야간 위성사진은 북부 이탈리아와 맞닿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가  만나는 국경지역을 제외한다면 플랑드르와 맞닿은 북해 연안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대륙이 바다와 만나는 땅의 가장자리는 진주 목걸이를 두른 듯 환하다. 그러므로 밤의 불빛은 농축된 시간과 문명을 증거 한다. 지중해를 둘러싼 국가들의 교역이 한축이었다면 북해를 둘러싼 국가들 간의 교역이 또 다른 한축으로 유럽의 역사는 이어져 온 것인데…결국 인류의 운명은 육상로보다는 물길에 달려 있었다.물과 바람의 힘을 이용한 기동력. 대양 ocean은 육지와 육지 사이에 놓인 장애물이지만  바다 sea는  대륙과 섬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그런데 조선은 삼면이 물길이었는데도 왜 그 긴 시간을 꼼짝도 않고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섬나라 일본은 지구 반대편의 북해권 국가와 물길을 튼 역사가 400년 인데 어째서 조선은 먼바다로 나가는 백성들의 목을 쳤던 것일까. 착취적 지배구조의 극악한 예다.


북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상 연합 한자 동맹의 일원이었던 브뤼게는 12-15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때 그ㅡ도시의 tavern에선 들뜬 분위기 속에서 여러 나라 말들이 뒤섞여 왁자지끌 했었다. 그러나 퇴적물이 쌓여 운하가 막히면서 그곳은 죽음의 도시로 변했고 지도자는 도시를 떠나야 했다. 1430년대, 지구 반대편에선 조선이 서서 나라를 정비해 나가고 있었다. 운하가 막혀서 교역이 끊어지자 이 지역 선한 수장 "버건디의  필립공"은 브루게를 등지고, 현대시간으로 한 시간 운전 거리에 있는 겐트 Ghent로 옮겨 갔다.  졸저 <자화상의 심리학>에서 소개한 유명한 얀 반 에이크의 24폭짜리 겐트 제단화가 겐트의 바보 성당 st babokerk, st. bavo's cathedral에 소장된 이유가 그것이었다.



불신자들을 일시에 가톨릭으로 교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첨탑의 높이가 90미터에 달하는 바보 성당의 웅장함과 온갖 화려한 예술픔으로 장식된 화려한 위용은 일주일 정도 성당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내게 말했다. 성당의 지하로 내려가 메타 퀘스트를 쓰면 성당을 건축하던 시절과 얀 반 아이크가 제단화를 그리던 시절로 순식간에 시간 여행을 한다. 홀로그램이 수백 년 전 성당이 건축되던 시절과 제단화가 제작되던 역사를 실감 나게 재현하는 성당 지하. 입체적 역사 체험.


종종 메타 퀘스트를 쓰고서 각국의 거리와 미술관을 방문한다. 그런데 그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경험과 혼동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영상 매체에서 같은 거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저기 가 봤던 곳인데 하며 나는 순식간에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놀랐다. 증강현실의 교육 효과는 대단하다. 응용은 더 굉장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학교들에서는 메타 퀘스트가 사회 역사 교육에 필드 트립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성당은 10 세기에 로마의 영향을 받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성당 지하 입구에는 로마네스크식 교회의 흔적이 남아있는 섹션이 있다. 당시에는 성화보다 소박한 점토로 빚은 디오라마가 성서의  이야기를 전했다. 15세기에 본격적으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시장 부부의 기부로 얀 반 아이크가 그린 그 유명한 24폭 병풍이 봉헌되었다.

성당은 계속해서 증축되었다. 그 덕분에 성당의 안팎으로 모든 건축양식, 프랑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에서 고전양식을 흡수하고  마침내 21세기에는 소프트 웨어로 메타 퀘스트와 홀로그램을 응용한 교육 관광용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조용히 숨어있는 도시지만 여전히 겐트는 문명의 최전선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이 반포되던 그 무렵, 브뤼게를 버리고 통치자 필립공을 따라 겐트로 간 얀 반 아이크는 현대적 하이퍼리얼리즘 번쩍이는 스물네 폭짜리 제단화를 그의 형과 함께 제작했다. 성경에 기록된 영광된 역사가 진행되는 브루게라는 자부심 가득 안고서 도시의 거리를 배경 화면으로 깔았다…

성당 입구에 거룩하게 정좌한 반 아이크 형제. 왼쪽이 일찍 돌아가신 형님 휴버트. 가슴에 징표를 달았다.


플랑드르 국가들이 수천 년 치열한 전쟁터였던 결과로 정말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초행임에도 목적지 근처에 가서 주차장이 어딜까 궁금해질 무렵이면 (물론 구글맵의 유능한 안내가 있었다고는 해도) 딱딱 눈앞에 "어서 옵시오 여기가 주차장" 하면서 한치의 틈도 없이 지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나곤 했다. 지하 주차장은 겨우 2층 정도지만 엘리베이터는 사방에 설치되어 있다. 길을 헤멜 틈을 주지 않는 최단거리의 동선 배려는 유난히 매력적이다. 길을 잘못 들거나 실수하는 일을 유난히 질색하는 나는 특히 한 도시의 지성이란  거주자와 방문객들에게 날렵한 동선을 만들어 주는데서 드러난다고 믿는다. 한번 가 본 길은 온전히 기억하는 습성이 있기에 한 도시의 동선이 이렇게 선명하면 그 도시를 매우  가깝게 느낀다.



얀 반 아이크 제단화의 <adoration of mystic lamb>의 하이 라이트는 문자 그대로 제단 위에서  "피 흘리는 어린양"을 그렸다. 양모를 직조해 패브릭을 만들어 되파는 무역으로 번성했던 브루게의 화가 얀 반 아이크 다운 선택이다. 그것은 필립공의 오랜 친구 얀 반 아이크이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얀 반 아이크는 첫 부인을 잃은 선한 목자 필립공의 재혼을 위해 포르투갈까지 가서 이사벨라 공주의 초상화를 그려오기도 했다.  필립공은 이사벨라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 뒤 이베리아 국가들과 연대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황금양모 기사단"을 결성하고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양모부심 넘치는 지도자의  만화 같은 명명이다. 황금양모 기사단이라니. 국가적 길드 같은 것이었을까? 국가가 주도하는 양모의 국제교역 동맹 같은?  즐겨 입는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의 로고 양 한 마리 "골든 플리스"도 바로 그 "황금양모 기사단"의 문장과 꼭 닮았다.

12세기 교회 초창기의 로마네스크 흔적이 남아 있는  낮은  예배당. atomement of jesus  christ --

주교님 영면에 드신 모습도 스웩 넘치심.

 

브루게의 그 웅장하고 한없이 높았던 고요한 성체,

‘우리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석가탑이라면

바보 대성당은 열 배쯤 큰 다보탑에 비길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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