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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Apr 20. 2020

정성을 다한다는 것

Lesson Learned

 요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있는데, 과연 프로페셔널은 분야를 막론하고 유용한 깨달음을 준다. 그중 내가 평소에 생각해 왔던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과 ‘자기 확신’에 관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소설가 지망생을 청자로 삼고, 자신이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소설을 완성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과 함께 마음 가짐 등을 “전수”하는 책이다. 소설을 1차 완성한 후 퇴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일단 완결된 소설을 아내와 편집자 등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오랜 기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완성한 글인 만큼 비판이 결코 달갑진 않지만, “지적된 부분은 무조건 전부 고친다”는 원칙을 갖고, 납득이 안 가더라도 반드시 수정한다고 한다. 퇴고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을 제시하진 않지만, 아래 레이먼드 카버의 말을 인용한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마디로 고친 부분을 다시 똑같이 고칠 때까지 퇴고를 한다는 거였는데, 이렇게 퇴고를 거친 소설이 발표되면,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한다 해도 전혀 마음이 동요될 일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할 만큼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이 ‘실감’을 ‘자기 확신’이라고 해석했다. 이 부분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일에 정성과 노력을 쏟아붓는 과정에서 ‘자기 확신’이 생기고,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아웃풋에 대해 어떤 평가를 받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어쨌든 구체적이진 않지만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에 대해 모호하지만 ‘기한’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첫 입사 후 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시간을 무한정 투자했다. 일을 잘하고 싶으니,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여겼고, 정성을 다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 투자라 결론지었다. 신입 교육 기간에는 퇴근 후에도 계속 불안해하며 교육 내용을 복습했고,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고 난 후에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줄곧 일을 했다. 학창 시절,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을 금언처럼 여기며 공부했던 미련한 한국 학생다운 결정이었다. 고등학교 3년을 나면서 오래 앉아 있어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다는 의무감 같은 게 생겼고, 그렇기에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너무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파행 속에 첫 번째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지만,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때만 해도 일에 무한정 시간을 부어 넣는 일이 바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자부했다.


 당시 회사에서는 저렇게 파행적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더 심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날 걱정하던 선배 하나가 티 타임 중에 “오래 일하고 싶냐”고 물으며, “오래 일하고 싶으면 오래 일할 수 있는 습관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새벽 3시에 잠드는 생활을 감당할 사람은 없었다. 그때에 나는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것만 끝나면” 하면서 면죄부를 주고 있었는데, 그런 삶을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1, 2년 일하다 말 게 아니고, 10년, 20년, 아니 평생을 일과 함께 살고 싶다면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그때부터 일과 여가 시간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일을 하는 거였는데, 무조건 일주일에 3번은 칼퇴를 할 것, 주말에는 절대 노트북을 켜지 않을 것, 일을 안 해서 불안할 땐 다음 날의 TO-DO를 메모지에 적고 잊어버릴 것 등등 일과 여가를 분리시키기 위한 일종의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밝을 때 퇴근하는 게 너무 어색했고, 집에 가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안한 마음에 노트북을 들고 퇴근을 했는데, 한 몇 주 이렇게 지내다 보니, 매일 야근을 해서 얻은 아웃풋과 일과 여가 시간을 명확히 분리해 얻어낸 아웃풋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명확히 정해져 있으니 집중이 더 잘 됐고, 여가 시간에 쉴 수 있으니 삶의 질은 더 올라갔다. 아마 학창 시절에 ‘4당 5 락’ 같은 말을 듣고 불안해하며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에 공부와 휴식 시간을 명확히 구분했다면, 효율도 오르고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하고 싶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기한을 마련해두는 것은 삶의 어느 영역에나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입사 초기에 잘못된 습관을 뜯어고쳐 놓은 덕분에 지금은 야근 없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스킬이 많이 생겼다. 직원이 효율을 생각하게 되면, 어쨌든 한정된 자원을 진짜 중요한 일에만 투여하고자 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직도 일부 리더들은 아웃풋 자체보다도 업무에 투자하는 시간만을 피상적으로 보면서 “야근하는 사람=고생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조언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의아할 때가 많다. 하루 8시간 이상 온 힘을 다해 일에 집중하는 데도 야근하는 일은 많지 않고, 대부분 불안해서 그냥 앉아 있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중요하지만, 그게 무한정 노력을 투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루키의 퇴고도 ‘실감’ 속에서 언젠간 끝이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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