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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May 26. 2019

도쿄, 말차바바루아는 내 운명

카구라자카 키노젠




카구라자카, 골목길, 성공적


도쿄의 하이라이트라는 거대한 구역들만 찾았었으나, 도쿄 n회차로 성장(?)할수록 조금씩 작은 골목과 동네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계획에 없이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작은 골목에서 나만 누리는 아기자기함을 원하게 됐다. 서울에서도, 대세로 여겨지던 큰 상권보다 점점 골목 상권들이 하나둘씩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들을 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 같다.


그래서 카구라자카를 찾았다. 숱하게 도쿄행을 감행하면서 한번도 접해본 적 없던 동네. 의도적으로 이 곳에 숙소를 잡고, 골목을 거니는 시간을 늘렸다. 활달한 메인거리의 뒷켠에 아직 에도시대의 감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붐비지 않는 동선, 로컬들의 평화로움이 물씬 느껴지는 풍경, 관광에 의해 정돈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러운 경험. 영어 메뉴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시그니처를 굳이 추천하지 않고 아무거나 먹어도 무방한 동네 상권. 그 '자연스러움'이 내가 원한 여행의 테마였으니, 완벽하게 목적을 달성해버렸다.



이른 오전, 오픈을 준비하는 카구라자카 상인들의 모습.





간직해왔던 디저트 로망의 실현


<키노젠> 발견한 것은 참으로 신기한 순간이었다. 오전 산책을 마치고, 점심을 해결한 식당을 탐색하던  구글맵에 빼꼼하고 나타난 키노젠. 어딘가 익숙한 명칭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1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접했던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디저트 가게였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12개의 에피소드  단연 맛보고 싶은 디저트로 기록해두었던  .  로망이 카구라자카의 골목 속에 펼쳐져 있었다.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숨겨진 디저트 덕후(블로거 "달콤한 기사") 영업사원 칸타로가 도쿄의 디저트 맛집을 업무시간중에 들르며 짜릿한 일탈을 즐기는 내용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컬들이 짝을 지어 오픈전부터 기다리는 디저트 명가의 클라스. 발견한 타이밍은 셔터를 올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과 머릿 속에 아른거리는 말차바바루아의 모습. 셔터가 올라감과 동시어 사람들은 줄을 지어 입장했고, 이내 자리를 찾았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주문하는 메뉴는 단연 "말차바바루아"다. 아직 식사도 하지 않았을 시간. 다들 이 맛이 무엇이기에 디저트로 첫 끼를 시작하는 것인지.



오픈 전 대기중인 사람들. 셔터가 올라가는 순간에 딱 맞추어 발견해버렸다.


<세일즈맨 칸타로>에 등장한 키노젠의 모습. 말차바바루아와 물아일체급으로 교감한 주인공의 모습이다.
나무와 풀빛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말차 바바루아 외에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검은대지, 흰 구름, 초록빛의 말차 산


디저트를 기다리는 시간. 창밖으로 보이는 풀빛에 동화되어 차분히 앉아본다. 돼지모양의 전병과자와 녹차가 준비된다. 이 전병과자는 야마가타산 쌀 '하에누끼'에 부르타뉴산 소금을 곁들여 만들었다. 디테일 하나하나에 정성에 깃들어 있고, 그것을 감싸는 포장지에도 감각이 넘친다. 아이구 좋다.


그리고 등장하는 주인공. 키노젠의 대표가 1년동안 연구한 디저트, 말차바바루아. 열에 따라 색깔을 쉽게 바꾸는 말차의 특성 탓에 세밀하게 조합을 맞춘 말차 푸딩이다. 젤라틴과 생크림을 적절하게 섞어서 탄생시킨 깊은 숲의 초록을 성공적으로 드러낸다. 말차가 주인공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세가지 재료의 조합 속에서 팥 앙금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단바의 무농약재배 다이나고를 사용한 팥의 맛은, 키노젠이 서양식 디저트에서 잃고싶지 않았던 일본스러움에 대한 당당함을 느끼게 한다.


칸타로는 이 것을 "검은 대지, 흰 구름, 초록빛의 말차 산"으로 묘사했다. 각 재료가 충실하게 맛을 내고, 화과자와 양과자의 경계에서 그 조화를 절묘하게 살려낸 디저트다. 도쿄에서 이것을 맛보지 못한다면, 참 안타까운 여행이 아닐런지. 고마운 카구라자카, 그리고 내 운명과도 같았던 말차바바루아. 다음에 다시 들르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해졌다.



테이블에 아기자기하게 차려진 말차 바바루아 풀세팅의 모습



한 스푼에 삼위일체를 얹고 맛을 본다. 좋구나.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말차바바루아를 만끽하는 순간들이다. 아쉬움에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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