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부쿠로 오오토야
덕력 집합소의 신흥강자 이케부쿠로를 찾은 날이다. 아키하바라에서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면 이 곳 이케부쿠로는 여성들이 조금 더 즐겨찾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영등포와 청량리의 감성을 간직한 지역. 꽤 반경이 넓고, 굿즈들을 하나 두개씩 들었다 놨다 하다보면 시간이 금새 흘렀다. 시계가 저녁을 가리킨다. 배가 고프다.
여정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일까. 굵은 우동가락, 달큰한 소바, 지글지글한 구이메뉴로 장식된 거리에서 서성였지만 영 당기지가 않았다. 이런 날은 밥이지. 한 끼는 응당 밥알을 씹고, 국을 머금어야 든든하다.
일본 여행에서 예쁘게 차린 가정식 한상을 찾았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다만, 항상 '유기농'이라든가, '수 가지의 계절반찬'을 거느리고 있다든가, 100년이 다 되는 '전통의 손맛'이 있다든가. 미리 픽해둔 명소를 찾기가 일쑤였다. 따라서 캐주얼하고 간단한, 내가 원하는 밥상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그치만, 이 저녁은 밥이 아니면 안되는걸.
그러다가 <오오토야>를 발견한다. 일본 전역에 넓게 진출해있는 가정식 체인점. 꼭 거창한 라벨링이 없어도, "로컬들이 가장 편하게 즐기는 밥상"을 추구한다면 더없이 최적의 공간이다. 운영시간도 자정 직전까지인 지점이 많아서, 시간대에도 구애받지 않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자연스러움, 이 가성비. 오늘 저녁 가장 애타게 찾던 공간이 아닐지.
입장하면, 1인석과 소규모에서 대규모에 이르는 단체석을 쭉 둘러보게 된다. 착석해서 시선을 강탈하게 되는 것은 굉장히 빽빽하게 풀컬러로 인쇄된 메뉴판. 밥(쌀밥/잡곡밥)의 유형, 밥에 올리는 토핑(줄기, 참마즙 등), 밥 양까지 디테일하게 주문하도록 가이드를 주는 메뉴판이 더없이 반가웠다. 최대한 먹고 싶은 밥을 '먹여주겠다'는 친절함에 발마저 동동구르며 나의 밥상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밥상의 메인 디쉬(혹은 메인 반찬)의 종류도 실로 다양하다. 구운 고기, 튀긴 고기, 생선, 스튜, 야채 볶음 등 굉장히 폭넓은 커버리지를 자랑한다. 기회가 된다면 이 다양한 메인 디쉬를 하나하나 맛보고 싶은 마음.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보글보글 뜨겁게 끓여진 된장 베이스의 닭튀김요리를 후후- 잘도 불어가며 먹었다. 그릇이 비워지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이치. 배가 부르면 세상이 한 층 더 아름다워 보인달까. 대단한 조사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지갑에 큰 타격을 준 것도 없었다. 아주 아주 일상적인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풍경 속에 침입해 들어간 듯한 기분에 매우 마음에 든 식사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