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쏸라펀 식당 <川渝小吃坊>
친절한 뭇 여행자의 설명을 곁들이고, 충분한 정보를 쥐고 방문하는 식당에서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이라고 할 지언정 방문 시간까지 정해두고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할 지까지 깨알같이 메모했다면, 그 계획을 그대로 이행하는 1시간짜리 밥집 이상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웨이팅에 급급하고, 이미 맛 평가까지 줄줄이 읽어버렸다면 그 식사는 당신에게 영감을 줄 수 없다. 숱하게 검증되어 너무 친절하다면 재미없지.
간단한 검색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장에서의 감각으로 아예 모르는 식당의 문지방을 넘어봤다. 자리 안내를 받고, 메뉴를 선정할 때도 온갖 손짓, 발짓을 섞어서 개척한 경험이다.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비주얼과 맛의 메뉴를 기다리는 떨림의 시간, 그리고 생애 처음 맛보는 찌릿한 로컬의 음식. 타이베이 시내에서 새로움이자 충격으로 각인된 어느 오후의 식사를 기록한다.
감각적인 소품 가게들이 많아 발걸음을 두기 좋은 중산역 일대에서 적당한 샤오롱바오 식당을 찾다가 길을 잃었다. 구글 맵조차 잠깐 멈춘 상황. 빙글빙글 골목길을 돌던 중, 인적이 드물어 방향을 바꾸려던 찰나 골목 깊숙한 곳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고기 국물을 우리는 따뜻한 공기에 얹힌 시큼한 향신료의 향이 바람을 타고 호기심을 자극했고, 쭉 골목길을 따라 들어간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어느 일행이 나온 곳, <川渝小吃坊> 이라는 이름의 식당. 크지 않은 가게 내부는 마치 작은 우주처럼 대단히 바쁘게 작동하고 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이 된 것 처럼, 예상할 수 없었던 광경 앞에서 무작정 '오늘 여기서 밥 먹자' 라고 결정한다.
마주한 직원은 나를 낯설어하는 눈치다. 제 발로 찾아온 이방인이 드물었던 모양. 몇마디의 짧은 영어로도 소통이 어려워서 테이블을 스캔한 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릇을 (손가락으로) 주문했다. 심지어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된 내 도전의 결과물은, "쏸라펀(酸辣粉)"이었다.
쏸라펀은 시큼하고 매운 국물에 땅콩, 고수, 청경채 등을 넣은 면요리다. 그 국물을 처음 떠 넣을 때에는 향과 맛이 모두 강렬하여 놀라지만, 이내 적응하고 쫄깃한 고구마 면발을 쭉쭉 당기게 된다. 생애 한 번도 맛본 적 없던 미(味)적 충격을 받는다. 그 맛으로 양귀비의 식욕을 돋우어 그녀를 치유하게 했다고 전해질 정도의 매력. 그만큼 오랜시간 구전되며 이어져 온 로컬의 음식이다.
그 시작으로 설명되곤 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삼국지>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기리는 의미를 담는 한 그릇이랄까. 쏸라펀의 면과 국물로 도원결의를 응원한다는 사실이 재밌다. 유난히 마음에 들어했던 길고 쫄깃한 면의 질감은, 삼형제의 인연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강렬한 국물은, 시큼하고 매운 세상의 갖은 고초를 이겨내라는 응원이다.
60권으로 구성된 만화 삼국지를 60회독 하며 유년기를 보낸사람으로서, 타이베이 시내의 골목을 굽이굽이 따라 들어와 쏸라펀 국물의 원천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오늘 나의 식사가 그 의미와 함께 꿰어지는 순간, 그 감각과 영감은 고스란히 여행자에게 각인된다.
우리가,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