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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Sep 27. 2018

오사카, 커피로 열고 닫기

살롱드아만토 - Biotop - 우테나킷사텐 - 마루후쿠


가다랑어가 펄럭이는 타코야키, 잘 익은 빨간 빛깔의 꼬치, 왕초밥 간판이 떠오르는 도시 오사카.

조금만 길을 틀어보면 보물같은 코히텐(커피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신사이바시, 오렌지 스트리트, 나카자키쵸를 쭉 둘러보면서 만났던 찐한 커피의 도시를 기억하며.



글리코상과 화로구이, 하이볼 한 잔이 생각나는 왁자지껄한 오사카 도톤보리의 풍경

첫번째. Salon de AmanTo (살롱 드 아만토)


나가자키쵸에서 처음 방문했던 커피점. "여기 커피 마시러 오라"는 시그널 하나 없는, 아는 사람만 알고 오라는 느낌의 외관이다. 자전거가 놓인 문 앞에서 10분 정도 빙글 빙글 돌다가 들어섰다. 작은 정원을 끼고 있는 곳이며, 겸손한 겉모습과 달리 웨이팅은 끊이질 않는다. 까맣고 뜨거운 드립커피를 하얀 사기그릇에 담고, 낡은 철제 테이블에 올리니 "커피 마시기 좋은 날이군!" 하고 후룩거리게 되었다.  


숨겨진 곳을 파고 들면, 이미 알고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나무와 양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빈티지한 느낌을 형성한다.




두번째. Biotop


오렌지 스트리트에는 편집샵과 예쁜 디저트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서, 웬만해서는 도전에 대한 성공률이 높다. 편집샵과 꽃집, 카페가 결합된 복합 공간인 biotop은 그 초입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골목을 지킨다. 번화한 골목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게 뚫린 뷰도 좋다. 커피맛이 나쁠리 없는 드립의 장인이 음료를 준비해준다.


안 예쁜 게 거의 없는 오렌지 골목의 초입을 평화롭게 응시할 수 있는 biotop의 뷰 되시겠다.


샵을 한바퀴 돌고, 여행지에서 결코 살 것 같지는 않은 꽃집의 데코들을 살펴보다가, 간단히 여행 기록을 정리하고 오렌지 스트리트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적합한 곳이다. 커피를 맛보러 온다기보다는 공간의 '충만함' 안에서 커피와 함께 쉴 수 있는 곳이랄까.



<시인과 촌장> 중 촌장을 맡을 것 같은 soloist가 내려주는 드립커피와 비스코티





세번째. 마루후쿠 코히텐


1934년에 문을 연, 그러니까 거의 100년이 다되는 세월을 이어온 마루후쿠 커피점. 옛날 고급 다방을 방문하는 듯한 입구를 거치면, 의외로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레모를 눌러쓴 노인과 양복을 갖춰입은 직장인, 독서하는 대학생 등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렇게 오래된 공간에서는 베이직을 맛보는 게 답이라고 생각해서, 뜨거운 기본 드립과 달콤한 토스트를 함께 먹었다. 흡연이 허용되는 공간이라, 숨을 머금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고급 다방의 모습을 간직한 마루후쿠의 풍경
커피 세팅의 기본형인 설탕 두 알과 우유, 차가운 얼음 물컵이 달콤한 토스트와 함께 준비된다.




네번째. 우테나 킷사텐(찻집)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나카자키쵸의 대표 킷사텐이다. 차와 커피를 따숩게 끓여내는 곳. 이 역시 "따뜻한 커피하러 오시라"는 시그널을 수신할 수 없는, 알고 오는 찻집이다. 나카자키쵸를 기나길게 구경하고 해가 저물때 즈음 도착했다. 다행히 딱 한 테이블이 비워진 채로 나를 기다린다. 드르륵- 문을 열면, 뜨거운 물을 끓인 증기와 조용히 책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이 곳.


나카자키쵸의 골목에 조용하게 존재하는 우테나 찻집의 입구


뜨겁게 덥혀진 공기를 가르고 자리에 앉으면, 조용히 주문을 청하게 되고,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담백한 기본 드립 커피와 달콤한 버터 토스트 조합을 고수하며, 후룩후룩 좋은 커피를 마신 시간이었다.


나무와 양철, 종이 냄새가 번갈아 나면서 정취를 돋운다.소근거리는 대화들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들이 슬며시 섞이며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누가 오사카를 타코야키와 글리코상으로만 기억하는가. 가장 기본형 커피를 마시면서도 감탄을 뱉을 수 있었다. 공간을 가꾸는데 참 능숙하다는 느낌을 오사카의 코히텐들에서 처음으로 가졌던 것 같다. 까만 커피와 하얀 사기 그릇, 달콤한 베이커리를 곁들이는 것 만으로도 직선 일색이던 여정에 입체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오사카는 그렇게 커피로 열리고, 닫히는 도시로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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