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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대폭발 Sep 06. 2024

아빠 없는 사람이 아빠에 대한 영화 보기

영화 '애프터썬'과 우리 엄마가 읽지 않았으면 하는 편지

아 우리 엄마가 이거 읽으면 안 되는데


 학부모 참관 수업날은 포도 스티커의 날. 참관 수업을 위해 아이들의 책걸상도 마치 어른들의 회의실처럼 칠판을 향해 ㄷ자로 배치를 바꾼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신을 뽐낼 수 있도록 쉬운 질문들을 유도하고, 발표를 하거나 정답을 외친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나와 포도 스티커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한글을 채 다 떼지 못했던 아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포도 한 송이를 메꿔가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보고 있었다.

 포도송이를 채우기에 한두 알만 남은 상황! 아버지의 직업을 설명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얼어버렸다. 아깝게 실한 포도송이가 되지 못 한 내 종이를 보며 떨어진 내 눈물은 빈 포도알 자리를 적셨지만, 그 모습을 본 우리 엄마가 흘린 눈물의 양은 몇 그루의 포도나무가 되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아빠 없이 자랐다. 물론 아예 날 때부터 아빠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내 아빠의 기억은 엄마와 아빠가 집 앞 슈퍼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과 아빠가 메리야스만 걸치고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까지 두어 장면이 전부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뒤에는 엄마와 누나,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만 지냈다. 누나나 내 생일이 되면 아빠를 만나 넷이서 외식을 했지만 그마저도 초등학교 4학년까지가 마지막이었다.

 아빠의 소식을 내가 알 방법은 없었다. 엄마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숨겼다기보다는 나도 물어보지 않았고, 가끔 아빠로부터 전화가 오면 엄마는 통화 후 꾹 참다가 아빠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나지막이 말했을 뿐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름 석자만 알았지 아빠라는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당시 나는 아빠가 이라크 파병을 간 줄 알았다. 어느 때는 아빠와 닮은 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영화에서 보고 우리 아빠인 줄로만 알고 외국에서 배우를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엔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모르고 별거 중인 줄로만 알았고, 그 착각은 머지않아 깨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알 만한 건 알 것 같은데 모르는 건 또 모르는 나이에 나는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친가 사촌형을 통해 전해 들었다. 당시 아버지와의 교류는 없었더라도 친가와는 종종 왕래했는데, 그것은 '아빠 없는 아이'로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목표는 친가에 방문해 사촌형이 내뱉은 '너네 아빠랑 엄마 카드빚 때문에 이혼했잖아'라는 말 한마디로 산산이 부서졌다. 사촌형의 말 한마디 자체보다 어린애 입에서 그런 사실이 나올 정도로 뒤에서 온갖 말이 오르락내리락했다는 사실이 엄마를 더욱 속상하게 했을 것이다. 사촌 형은 그 뒤로 엄청나게 혼났다던가? 그 뒤로는 자연스레 친가와의 왕래도 없어졌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긴 했다. 행정상 내게 아빠가 없다니? 키아누 리브스가 내 아빠가 아니었다니? 이라크 파병을 간 게 아니었다고? 남들에겐 다 있는 게 나에겐 없다고?

 그럼 그 사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애당초 기억도 없는 사람이 '없어졌다'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엇나간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 사실은 '나는 남들과 달라!'라는 정체성을 한 스푼 더 얹어줘서 자기애를 강화시켜 줬다.

 다만 아빠가 없는 게 조금은 불편하긴 하네, 싶었던 적은 있었는데 그것은 미디어에서 '아빠와의 교감'을 볼 때였다. 정확히 전달하자면 '아버지와의 교감'을 보여주는 미디어를 볼 때 내가 그 미디어를 완벽히 즐기지 못한다는 점이 불편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수용소에서조차 킬킬대던 부자 사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아! 아버지의 사랑!'이라며 감복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공감할 수 없었다. '위플래시'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며 즐기던 팝콘의 맛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어떤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 아들을 보며 더 이상 팝콘을 같이 먹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응답하라 1988'의 선우가 아버지에게서 면도를 배우지 못해 얼굴에 온갖 상처가 나 어머니의 걱정을 샀을 때는 이해했다. 나 또한 면도가 서툴러 얼굴에 붙인 밴드가 나날이 늘어갈 때 엄마도 '얘가 드디어 엇나갔구나,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해 의미 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보통 공감하지 못할 만한 장면이 나오면 엄마를 대입해 이해하려 했는데 그건 정확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혼자서 둘을 키워야 했던 말 그대로 슈퍼우먼이었다. 너무나 슈퍼우먼이었던 탓에 엄마는 당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쳤고,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버지처럼 유머러스하지는 않았으며 '위플래시'의 아버지처럼 아이의 발자취를 모두 함께 해주지는 못 했다.


 얘기가 얼핏 보기에 무거울 수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말하지만 난 전혀 부족함 없이 자랐다. 이건 단순히 "술을 못 마셔서 술 마시는 사람들의 재미를 몰라 아쉽다" 정도의 무게인 내용이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영화나 책 또한 씹고 뜯고 할 부분이 많아지듯이, 이제 '아버지'에 대한 경험은 풍부해질 수 없어서 앞으로 즐길 미디어 중 어느 것은 백 퍼센트 즐길 수 없으리라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휴, 다시 말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 글을 읽지 않는다면 좋겠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주인공은 셋이다. 아빠와 딸,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어른이 된 딸 '소피'. 영화에 대한 설명은 차치하고 넘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감명받았고, 씨네필의 원 앤 온리 지향점 이동진 평론가님이 충분히 설명을 해주셨다.


 아버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피력하는 작품은 많다. 하지만 대게 '아버지'라는 인간상은 여러 미디어를 막론하고 전형적 규격이 있고 그 역할의 가치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숭배되어 왔다. 2000년대 이전까지 아버지는 보통 권위적이며 대화조차 쉽게 나눌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영화 내의 피양육자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굴복하거나 저항했지만 끝내 그 이면에 전달되던 사랑을 재발견하면서 '성스러운 아버지'를 해석한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점으로 권위적 아버지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가정적으로 변모한 양상이 등장한다. 그 흐름을 타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이 엠 샘', '행복을 찾아서'처럼 기성 아버지로서의 기능을 벗어난 인물을 조명하며 '아버지'라는 역할의 수행 조건에 대해 탐구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아버지'를 하나의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라는 개념을 더욱 성스럽고 굳건하게 추앙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빅 피쉬'에서 권위 없는 인간인 아버지를 묘사함과 동시에 죽음으로써 다시 한번 '아버지'로 재탄생하면서 '아버지' 숭배는 최고점을 찍는다.

  그 와중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는 '파송송 계란탁'을 통해 아버지의 조건에 대해 관객에게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물음은 '과속스캔들'로 지속되는 듯하더니 '7번 방의 선물'로 '아이 엠 샘'을 답습하고, '국제시장'으로 '아버지'를 다시 숭배의 최고점으로 올려놓는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한 인간이 '아버지'라는 관계적 지위를 획득하고 그에 걸맞은 인간상이 되려 노력하는 국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되려 하나의 개성적 인간이 '아버지'라는 개념으로 흡수되는 것으로 귀결되고 이를 숭고한 것으로 여기며 결말을 맺는다. 동시에 '아버지'라는 지위를 '가족' 자체로 투영시켜 결국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제창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해외보다 국내가 '아버지'라는 지위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요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러모로 해외 또는 국내 영화에서 '아버지'라는 그 성스러운 경계는 매우 단단해 쉽게 끌어내릴 수 없었다.


 영화 '애프터썬'은 새로운 시각으로 이것을 뒤집는다. 영화는 아버지를 촬영하는 캠코더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딸은 11살, 아버지는 31살.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또 오랜만에 만나 여행을 한다는 것으로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떨어져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1살 생일을 맞는 아버지에게 딸은 '11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고, 이에 아버지 표정은 일그러지며 오프닝 시퀀스가 끝이 난다.

 영화는 그렇게 캠코더 영상을 통해 떠올리는 싱그러운 여행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다. 부녀의 튀르키예 여행 장면들로 일상적인 듯 특별한 모습을 나열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부녀가 함께 있는 모습에서 벗어나 혼자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튀르키예 장면들은 '소피'의 회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혼자인 아버지의 모습은 회상될 수 없다. 한 공간에 혼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소피는 말 그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 그렇기에 홀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재 시점 '소피'의 유추이자 상상인데, 이는 의도적으로 수많은 관계성을 내포한 '아버지'라는 역할을 해체하고 한 명의 사람인 '캘럼'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딸'이 없는 공간에서는 자연히 '아버지'라는 관계도 의미를 잃고, 불안정한 30살 남자 '캘럼'으로 발가벗겨진다. 그는 녹아내리듯 울고, 피를 흘려내고, 아이처럼 웅크려 외롭게 눕는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사회적 입지를 얻는다. 그 사회적 입지는 관계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의미를 잃는다. 의미를 잃는 것과 더불어 사회적 책망까지 떠안는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듯 그 역할을 부여받는 것은 무수한 책임을 부여받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사회적 인식으로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리더이며, 가정 내 구성원들에게는 의지가 되는 버팀목으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에 더불어 수많은 미디어에서 묘사한 '아버지'의 가치가 숭고해질수록 그 책임은 더욱 무거워져 간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을 '아버지'라는 개념에 귀속시켜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개념을 벗겨낸 인물 자체를 본다. '아버지'라는 숭고한 이름 뒤에 선 '그 사람'은 어땠을까. '소피'가 이해하기 시작한 한 명의 인간 '캘럼'은 누군가를 보살피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도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무너졌으며, 정신적으로도 무너졌으리라고 소피는 유추한다. 캠코더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캘럼'의 모습을 볼 수록 소피는 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캘럼'만큼의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아버지의 임무가 그에게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영화적 상상으로나마 캘럼과 소피가 서로 껴안는 장면은 소피가 캘럼을 향해 용서와 이해를 건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해당 장면의 연출은 용서가 '캘럼'을 향한 원망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한 원망까지 용서함을 시사한다. 피양육자로서 '딸'인 20년 전 모습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 '소피'의 모습으로 연출된 것은 소피 스스로도 피양육자-양육자인 '딸'-'아버지' 관계에서 벗어난 것을 뜻하고, 왜 그때의 '딸'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왜 '딸'은 그를 보듬어줄 수 없었는지 따위의 관계적 책임을 묻는 자책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용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려 한다.


 어느 누가 내가 사랑받고 자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아버지'로서의 무게까지 떠안은 우리 엄마, 엄마는 이 편지를 읽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의 아픔을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을 후회해.

 엄마, 나는 있지도 않았던 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정말 정리했어. 내가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밉다면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해서 미운 거야. 난 정말 아빠에 대한 미움이 들어갈 마음의 빈자리조차 없을 만큼 부족함 없이 자랐고 그건 전부 엄마 때문이야. 그러니까 엄마, 이제 내게 어떤 부족함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 나에게 아버지를 주지 못 했다는 마음은 이제 그만 놓아주자. 나에겐 엄마뿐이고, 그건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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