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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Apr 04. 2020

열여덟, 세상을 학교로 삼다 - 베트남 사파(1)

1-07 열여덟 자퇴생의 동남아 배낭여행

< 시즈의 방랑일기 ; 동남아편 >

190511~190512 : 베트남 사파 (Sapa, Vietnam)



#이 글 전의 이야기

새벽에 펍에서 돌아온 후 아침에 일어나 체크 아웃. 기찻길 마을과 하노이 시내를 잠시 둘러본 다음 호스텔로 돌아와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다음 행선지를 정함. 그러던 중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 에이미가 또 다른 친구 빅토리아와 함께 '사파(Sa pa)'라는 산악도시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우리는, 둘의 여정에 합류해 함께 슬리핑 버스를 타고서 이른 새벽 사파에 도착.



 

새벽녘의 사파.

 사파의 첫인상은 신비로웠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 일행을 맞이한 현지인 가이드 분을 따라 밥을 먹을 식당으로 가는 내내 나는 도시 전체를 가득 채운 안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베트남이라고 믿기에는 힘들 정도로 서늘한 날씨도 어딘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한몫을 했다.


 아침으로 주문한 핫케이크를 다 먹어갈 때 즈음 아까 그 가이드 분이 다시 오셨다. 우리는 출발 준비를 마치고 가이드 분의 안내에 따라 필수품만 챙긴 후 배낭을 전부 오토바이에 실어 우리가 머물 곳으로 먼저 보냈다. 컨디션이 좋지 않던 아글라이 역시 회의 끝에 목적지까지 걷는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늘 에너지 넘치고 씩씩하던 아글라이와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떨어져 있게 되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글라이가 먼저 떠난 후 나머지 네 명의 친구와 나는 가이드인 마마 무와 뉴뉴, 사파에서 일생을 보낸 원주민 두 분을 따라 길을 나섰다.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사파는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마마 무와 뉴뉴 역시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가진 소수 민족 '흐몽족'으로 우리의 목적지는 하루 동안 홈스테이를 하게 될 마마 무의 집이었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본인을 소개하며 나와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팔찌를 하나씩 선물한 두 분은 곧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 후 본격적으로 우리를 마을 안으로 이끌었다. 짧지만 강렬한 설명은 사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사파 트래킹을 출발한 지 30분 만에, 나는 이 도시가 앞으로 평생 내게 각인된 채 지워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물안개 속에 숨은 고요한 사파는 마치 판타지 영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날것의 자연이 숨 쉬는 곳, 그게 바로 사파였다.


아름다운 사파의 자연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나와 친구들은 연신 감탄을 뱉으며 마마 무와 뉴뉴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쉽게 한눈을 팔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생생한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는 대신 마마 무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엄청나게 고되고 험했던 것이다!

 

마마무의 집으로 향하는 험난한 길. 참고로 저 다리를 건너기 전, 우리는 저 뒤에 보이는 경사 길에서 내려왔다.

아니, 실은 대부분 사람이 다니기에도 어려운 곳들이었다. 숲 한가운데로 들어가 덩굴과 나뭇잎을 헤치고 나오면 진흙으로 뒤덮인 가파른 경사길을 돌부리를 붙잡고 미끄러지듯 내려가야 했고,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진 계곡 위는 아슬아슬하게 놓인 외나무다리를 밟아야만 지날 수 있었다. 사람 한 명 지나는 것조차 힘들 만큼 좁은 길 반대편에서 커다란 황소가 걸어오는 바람에 가까스로 돌부리 위에서 균형을 잡아본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그렇게 네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니 드디어 새로운 마을이 나왔다. 그러나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은 식당인데 식당이라고 할 수는 없는 곳)에 들어가 빨갛게 익은 얼굴로 "이제 거의 다 온 건가요?" 하고 물었을 때, "네, 거의 다 왔어요. 세 시간 정도만 가면 돼요."라는 말과 함께 평화롭게 미소 짓는 마마 무를 보며 얼마나 망연자실했는지 모른다. 그땐 진짜 솔직히… 오토바이 타고 간 아글라이가너무 부러웠다….


 어쨌든 그 험한 길 위의 여정을 슬리퍼를 신고(!) 앞장선 마마 무와 뉴뉴, 얼굴 표정 한 번 바뀌지 않던 강철 체력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끝이 없는 오르막길을 걷는 내내 흙길에 드러누워 그냥 여기서 자면 안 되냐고 조르고 싶었다. 조세핀 역시 많이 지쳐서, 우리 둘은 마지막 고비에서는 거의 반쯤 울며 걸었다.(가끔 개들이 옆으로 지나가면 넋이 나간 채 네 발로 기어가면 더 편할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각,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마마 무의 집에 도착했다. 다들 신발을 벗어던지고 숨도 쉬지 않은 채 물을 들이켰다. 핸드폰에 깔린 만보기 앱을 보니 아침 8시부터 총 18km 정도를 걸은 상태였는데, 예상보다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길의 난이도가 최상이었던 데다가 30도가 넘는 땡볕까지 더해져서 그랬는지 한 100km는 걸은 것처럼 느껴졌다.


트래킹 중 만난 풍경들. 사파는 고요하고 정적이었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생동감이 넘쳤다.


 그래도 극한의 수준으로 피곤했던 몸과 다르게 마음은 무척 풍요로웠다. 중간중간 만난 생경한 순간들 덕분이었다. 떠돌이 개가 따라오면 길을 내어주고, 오리 가족이 걸어가면 잠시 멈춰 지나가기를 기다려주는 따스한 여유로움. 다 먹은 옥수수를 태워 밑그림을 그린 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수를 놓아 공예품을 완성하는 문화처럼, 사파의 원주민들은 공존하는 모든 생명과 흐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중하고 반짝이는 마음을, 시원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와 우노(카드 게임) 몇 판을 끝냈을 때 돌아온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마마 무로부터 말이다.



To be continued…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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