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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라이터 Apr 11. 2018

보통 날을 탐닉하다

나는 어느샌가 주도적인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주체가 내가 되고, 마치 인생의 작가처럼 스스로 창의적인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그런 보통 같은 삶을 탐닉해보기로 했다. 





과거엔 한동안 하루 동안 엄청나게 스펙터클한 일들이 이뤄지길 바란 적이 있다. 가령 시내 한복판을 지나가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다던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모델로서 스카우터의 제안을 받는다던가 하는 것 등이다. 단지 내가 벌려 놓은 판에 운명 같은 무언가에 하루의 스토리를 맡기는, 뭐 그런 식이다. 


생각이 생각을 낫는다는 말이 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획한 모든 것들이 짜인 시나리오처럼 거의 완성되어져갔고, 레이 찰스가 천재적인 음악을 작곡한 것과 같은, 그런 완벽한 일들이 생각 속에서는 퍼펙트한 억만장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20대 대학생 시절, 이른바 스펙이라는 것을 쌓아가기 위해서 메모지에는 계획들로 빼곡히 쌓여만 갔다. 물론 내가 이루어낸 들은 꿰나 부족하지 않을 만큼 스스로 이뤄낸 것들이 많았지만, 애초에 계획한 일들의 반도 못 채우고 포기한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스스로 느끼기에 '불만족'한 스펙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30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생활에 대한 적응이 무르익어가며, 가장 먼저 깨달은 부질없는 행동이 바로 '계획'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나치게 허무맹랑하고 단기간에 달성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거였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능력 밖의 범주에 속해있는 일들을 계획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몇 개월이 지나간 후 불만족할 수밖에 없는 결과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획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난 후, 머릿속에 계획 비슷한 것들이 떠오르더라도 글로 적어 놓지 않으니 불안하긴 했다. 하지만, 불필요하거나 달성 불가능한 것들이 나의 범주에서 꽤나 빨리 벗어나버리게 되었다. 그 결과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들만 내 머릿속을 맴돌게 되었고, 그것들에게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같은 여행의 날을 탐닉하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 성과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건 사실 얼마 안 되었다. 여유와 이유 사이에서 난 여유를 택했고, 지금의 시점에선 그 여유를 어느 정도 정당화시켜 줄 충분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꽃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나의 소식을 들려주는 것보다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게 좋아졌다.


그래서, 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행하는 내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길 바랬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다. 멈춰져 있는 아름다움의 꽃들은 그곳에서 더욱더 특별했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일상을 살아간다고 맹신하게 되었다.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의 슬픔과 고통도, 여행지에서만큼은 아름답게 미화되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도 들긴 했지만, 사실은 그것마저도 그 비극적인 결말의 영향력은 작아지는 것 같아 한편으론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이래서 여행이 좋은가 보다. 누군가 말한 긍정적인 기운. 두 발로 걸어가 한 손으로 사진을 찍고 나머지 한 손으로 펜을 잡으며 그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 말이다. 광양의 일출광경은 보통의 출발을 알리는 시작이었고, 진해의 벚꽃들을 쓰다듬으며 일상의 감정을 보통처럼 느껴본다. 


광양의 일출광경. 그 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될 것만 같은, 아름다운 시절들이 떠오를 것 같다. 


축제 때 가본 진해의 벚꽃들은 나를 맞이할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여행 이후의 무례함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보통 같은 여행의 단꿈에 젖어있다. 회상하고 그 날들을 기억한다. 보통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삶에 있어서 적당한 동기부여 같은 게 조금 필요하다.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뭔가 뜻깊고 자유러워졌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여행은 그래서 꼭 필요한 존재 같다. 일상을 보다 더 윤택하게 만들어 주고, 일상의 온도를 정화시켜준다. 지루함과 무기력함과 맞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와 동시에 새로운 원동력이 짙은 여행 같은 동기부여로 만회해보자. 



에필로그: 평범한 사랑에 대하여


사랑도 보통 같은 여행이 아닐까? 시간이 되면 숟가락을 들고 때가 되면 서로 마주 보고 잠을 잔다.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땐 손을 잡고 걸어가며, 기분이 답답할 땐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며 갈증을 풀어나간다. 누군가 변해진 인생의 가치관을 논하고자 할 때, 지금 나에겐 보통과 평범함이 너무나 와 닿는 느낌이다. 밤하늘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들도 아름다울 따름이지만,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저 별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간절하지도, 명확하지 않아도,
보통 같은 여행의 날이 또 그리워진다




*writer, poet /  즈음: 일이 어찌 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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