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편을 만나고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취향이 같은 사람 만나서 부럽다’, ‘너랑 너희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좋아하는 게 똑같아?’ 같은 류의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취향이 같은 남자 만나고 싶어’라는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갸우뚱해진다. 단언컨대 나와 남편의 취향은 애초부터 같지 않았고 함께 하다 보니 취향이 같아졌을 뿐이다. 나를 만나기 전, 오빠는 와인이라면 아주버님이 자주 드시는 칠레산 1865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고, 와인보다는 맥주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빠를 만나기 전에는 새벽에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볼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오빠는 지금 나와 와인을 마시며 미네랄리티와 페트롤 향을 논하며, 나는 토트넘 기사를 오빠에게 공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대답한다. ‘우리는 취향이 같았던 게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해야 행복하고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분명 처음 만났을 때 취향이 같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우리 커플은 서로 이렇게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걸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성향’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성향과 취향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르다. ‘성향(tendency)’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각자의 기질이나 성정 같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잘 변하지 않는 요소라면, ‘취향(taste)’은 후천적으로 내가 계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취미와 같이 때때로 변할 수 있는 요소다.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것은 성향인 것이고, 그리너리한 카페를 좋아하는 것은 취향인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나와 남편은 취향은 달랐지만 성향이 비슷해 취향까지 같아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남편과 나의 공통적인 성향에 대해 말해보자면, 우리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이라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보는 데에 부담이 없다. 간혹 익숙하지 않은 것에 무작정 거부감을 드러내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만약에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남편이 거부감부터 내비쳤다면,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대신 남편은 매우 흥미로워하며 나에게 와인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고, 하루 뒤 내게 전화를 걸어 감바스를 해 먹으려고 하는데,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만큼 와인 구경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봤다. 예전 연애 상대 중에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자, 책은 보여주려고 들고 다니는 게 아니냐며 진짜 읽는 것이 맞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분명한 비난조의 힐난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점차 그 사람 앞에서 책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각자의 시간이 길어졌다. 취향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의 취향을 존중해주지 않고, 더 나아가 비난하는 듯한 그 부정적인 성향이 거북스러웠을 뿐이다. 만약에 내가 누군가의 비난에도 별로 굴하지 않는 ‘마이 웨이’ 성향이었다면 상대가 그런 성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안됐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나는 비난을 무시할 수 있을만한 성질의 사람은 아니었다. 성향이 맞지 않으면, 관계는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성향이 다른 것은 여러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계획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사람과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 등 개인의 기호나 성격에서 많이 드러난다. 개인의 성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때는 아마도 결혼 준비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주어진 시간 내에 수많은 선택을 스테이지별로 해야만 하는 결혼 준비야 말로 본인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 다행히 우리는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결정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완벽주의의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대충 적당히 조사하고 주어진 리스트 안에서 크게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니라면, 딱 봤을 때 좋은 느낌의 것을 고르는 편이었다.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비교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고, 우리처럼 많은 대안을 알아내기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성향의 차이이다. 우리는 다행히 ‘대충 귀찮지 않을 정도의 조사’와 ‘빠른 의사결정’이라는 공통된 성향을 거쳐 단 한 번의 다툼 없이 결혼 준비를 마쳤다. 플래너도 웨딩홀도 한 두 가지의 선택지 안에서 당일 계약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만약에 둘 중 한 명이라도 반대의 성향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사람은 상대가 너무 대충 한다고 생각하며 불만이 쌓였을 것이고, 다른 사람은 상대가 너무 숨 막힌다고 생각하여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취향이 같으면 물론 좋을 수 있다. 그걸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취향이 100% 맞을 수는 없는 법. 서로 취향이 갈라질 때 성향이 안 맞는다면 서로 안 맞는다고 느낄 확률이 커질 것이다. 둘 다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성향인데, 한 명은 그리너리 카페를 좋아하고 한 명은 모던한 카페를 좋아하면 새로운 곳을 알아볼 것 없이 가던 곳을 한 번씩 번갈아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 명은 새로운 곳을 찾아보는 것이 귀찮아 집 앞에 있는 카페를 가길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카페를 탐방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번갈아 가더라도 한 사람은 귀찮은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지루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취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성향을 먼저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취향은 맞춰줄 수 있지만, 성향은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취향은 바뀌지만,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