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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28. 2020

내가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누구와, 어떻게, 왜)

하늘 아래 같은 와인 없다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청주, 황주, 백주, 위스키, 칵테일…

여기에 지역별로 브랜드별로 줄줄이 하위 나열을 하면 세상에는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단연 와인. 와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말하자면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인 샴페인이다.


내가 처음 와인이라 할 만한 것을 마셨던 것은 대학생 때. 엄마가 집 싱크대에 몰래 숨겨두었다가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마셨던 진로 포도주. 내가 세상에서 아는 와인은 진로 포도주가 유일했다. 마치 포도주스 같았던 특유의 단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와인이 주는 그 특유의 근사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알기 시작했던 건, 2013년 처음으로 엄마와 스위스 여행을 갔을 무렵이다. 파아란 유럽 하늘과 거대한 산 줄기를 바라보며 호텔 테라스에 앉아 엄마와 와인을 먹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른했던 우리의 대화라든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환상적이었던 느낌까지 고스란히.


왜 와인이어야 할까? 사회 초년생 때는 소주와 맥주를 말아 마시면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와인이 아니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가 이렇게도 힘이 들까. 내가 꼽는 와인의 매력은 이와 같다. “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다는 것”. 와인은 내 기분에 따라, 같이 먹는 음식에 따라,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뀐다.




기분에 따라: 기분이 안 좋을 때 마시는 와인과 기분이 좋을 때 마시는 와인은 느낌이 다르다. 기분이 좋을 때 마시는 와인은 사실 뭘 마셔도 정말 너무 맛있게 느껴진다. 입 안에서 레몬, 라임, 식빵 테두리, 아몬드, 살구, 하얀 꽃 등 다양한 풍미가 마구 터져 나오고 미네랄리티가 긴 여운을 가져다준다. 기분이 좋을 때면 이러한 조그마한 하모니에도 오버스럽게 감탄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어!”. 반대로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작은 단점 하나하나가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탄닌감은 왜 이리 씁쓸한지, 산미는 또 왜 이리 강한지, 이것저것 트집을 잡게 된다.

내가 슬플 때는 와인의 향이 나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을 때는 샴페인의 기포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하게 느껴진다. 같은 와인이더라도 내 기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오늘 먹은 이 와인은 다음에 먹을 이 와인과는 분명히 다른 와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맛이 없었더라면 다음에 더 기분 좋게 먹으면 되는 것이고, 오늘 맛있었다면 다음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맛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내 기분이 또 어떤 향과 풍미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 줄지, 와인 코르크를 따기 전은 언제나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음식에 따라: 다른 술과 비교했을 때 내가 최고로 꼽는 와인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음식에 따라 퍼포먼스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 소주나 맥주는 그 어떤 음식과 먹어도 두루두루 잘 어울려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와인은 그런 술이 아니다. 와인은 결코 어떤 음식과 그냥 매칭 해서는 그 맛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술이다. 그것이 귀찮고 번거로운 사람에겐 이것은 와인의 단점이 되겠지만, 나같이 각기 다른 음식에 매칭해 보고 최고의 조합을 찾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것은 완벽한 장점이다. 내 브런치 소갯글을 보면 “5만 원짜리 와인을 최대한 맛있게 음식과 페어링 해서 먹고 싶은 보통의 미식가”라는 문장이 있다. 3만 원짜리 데일리 와인일지라도, 안 어울리는 음식과 매칭 할 경우 1만 원짜리 와인으로 급락할 수도 있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음식과 매칭 하면 7만 원짜리 와인의 퍼포먼스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가격과 맛은 비례하는 게 또 와인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그 갭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음식과의 조화다. 3만 원짜리 보르도 엔트리급 와인을 소고기 갈빗살과 같이 먹었을 때 갈빗살의 꼬시꼬시한 향기가 극대화되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4만 원짜리 호주 쉬라즈 와인을 양고기와 같이 먹었을 때,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쉬라즈의 스파이시한 향에 버무려져 코를 뻥! 하고 뚫고 나오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와인은 이런 것이다. 어떤 음식과 매칭 하느냐에 따라 다른 매력이 비집고 나오는 것. 



사람에 따라: 마지막으로 와인은 같이 마시는 사람에 따라 정말 많이 달라지는 술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보통 와인을 분위기 있게 마시고 싶은 누군가와 좋은 날에 마시지 않는가. 오늘 기분 내자며 소주를 먹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와인을 마시는 것이 더 납득이 될 것이다. 와인이 사람을 타는 이유는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가 이 소주는 이런 향이 나고 이런 맛이 난다고 심층적으로 논하기는 힘들지 않나(물론 오늘은 소주가 달다 같은 단편적인 표현은 제외다.) 우리 팀에 나보다 더한 와인광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은 나랑만 와인을 마시면 완전히 취한다고 한다. 내가 계속해서 옆에서 이런 향이 나고, 이런 맛이 나고를 이야기하는 게 너무 신나고 함께 그 감정과 풍미를 나눌 수 있음이 즐겁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내 남편과 함께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논하며 마시는 와인이 우주에서 제일 맛있다. 반면에, 윗분과 함께 하는 자리라 와인이 그저 소주 대용일 뿐인 자리에서는 어떤 맛있는 와인이라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윗분이 고른 와인이라면 극찬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내가 고른 와인이라면 괜히 긴장이 되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와인만큼 사람을 타는 술이 또 있을까.





나는 이렇게 단편적이지 않고 변화무쌍한 매력의 와인이 좋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와인을, 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비비노 앱에 적어둔 603개의 테이스팅 노트를 보면 깜짝 놀란다. 매번 꾸준히 좋았던 와인들도 있지만, 반면에 너무 좋았던 와인이 안 좋아지기도, 안 좋았던 와인이 좋아지기도 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분에 따라, 같이 페어링 한 음식에 따라, 그리고 함께한 사람에 따라 달라진 탓이리라. 오늘은 비가 오다 말다 하는 꿀꿀한 날이다. 이런 날, 막걸리 대신 누룩향이 제대로인 경쾌한 스파클링 와인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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