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브로드밴드 업체와 통화하던 중 나의 이 말 한마디에 사무실이 뒤집어졌다. ‘배우자’라는 나의 말이 낯간지럽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부럽게 느껴진 모양이다. ‘배우자’라니. 내 입에서 ‘배우자’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다시 곱씹어 발음해 보니 몹시 낯선 기운이 서렸다. 배, 우, 자.
아내와 남편, 반려자, 동반자, 배우자…
결혼한 상대를 일컫는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단연 ‘배우자’이다. 짝지을 配(배), 짝•배필의 偶(우). 즉, 짝지어진 베필을 의미하는 배우자. 이 단어는 곱씹어 볼수록 다른 동의어의 단어들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먼저 ‘아내와 남편’은 따로따로를 일컫기에 하나인 느낌이 적어 별로다. 부부라면 그래도 모름지기 하나라는 아름다운 느낌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아내라는 단어는 여러 어원에 대한 설에 따라 집 안에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애를 낳는 사람 같기도 해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들며, 남편은 어원과는 별개로,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연상되며 뭔지 모르게 서러운 느낌이다. 남의 편이라니!
짝 伴(반)에 짝 侶(려)의 ‘반려자’는 짝이라는 의미가 정겹게 느껴지지만, 요즘 반려동물, 반려견, 반려식물 등 ‘반려’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면서 다소 식상해진 것 같다. 게다가 식물, 동물은 같이 생활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내가 돌봐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비록 반려자의 의미는 그게 아닐지라도, 내가 상대를 돌보아야 할 것 같아 다소 의존적인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반자’로 말할 것 같으면, ‘동반자’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당신은 나의 동반자~”라는 트로트 한 구절이 맴돌며 구수한 느낌을 풍긴다. 게다가 사전에서 뜻을 살펴보면, ‘어떤 행동을 할 때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으로 결혼이란 인연으로 이어진 듯한 느낌이 비교적 적게느껴진다. 회사에서 자주 쓰는 "회사와 당신의 ‘동반 성장’"같은 문장도 이 단어의 느낌을 퇴색하게 하는 데에 한몫을 한다.
반면에 ‘배우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의미부여를 하고 싶다. 결혼한 상대를 지칭하는 말이라 해도 아내와 남편과 같이 각각의 단어를 쓰지 않아 하나의 느낌이 날뿐더러, 배우자의 偶(우)는 짝이나 배필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연’이라는 뜻도 갖고 있어 우연으로 만났지만 인연이 된 것 같은 낭만적이고 필연적인 서사까지 부여해 준다. 게다가 배우자의 者(자)를 子(자)로 바꾸어 쓰면, ‘성숙한 반수체(半數體) 생식 세포. 다른 세포와 접합하여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세포로, 정자 또는 난자를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과학용어로도 남과 결합하여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듯한 인문학적 의미를 내포한 것 같아 더욱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中 –
배우자, 반려자, 동반자… 느낌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어쨌든 내가 인생에서 만난 짝꿍이란 의미의 단어들이다.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노래 가사와 같이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당신이라는 한 사람을 만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우연’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연’이 된 기적. 무한대의 숫자들이 당신이라는 하나의 존재에 수렴하게 된 엄청난 확률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