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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Oct 15. 2020

내 몸 하나 뉘일 곳은 몇 평짜리 편의점뿐

평범하길 원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 <편의점 인간>


사회가 은연중에 정해놓은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나이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마치 실패자처럼 여겨진다. 사회의 기준에 몸을 맞추려면, 으레 30살이 되기 전에 결혼은 해야만 하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분명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생은 무언가 하자가 있는 인간이다. 주인공 후루쿠라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만큼 튀는 것을 싫어하는 사회가 있을까. H.O.T. 가 ‘열맞춰!’에서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외친 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모두가 평범해지길 원한다. 결혼을 안 한 사람은 결혼을 해야만 하고, 정규직이 아닌 사람도 꼭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만 하고, 결혼을 하면 또 애를 낳아야 한다. ‘딩크족’이라서 애를 안 낳고 대신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사람들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분명히 무언가 생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판단한다. 결혼을 안 하면, 취직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그런 재판관들이 하나 둘 모여 결국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땅땅땅! 판결하고야 마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 하지만 나를 쫓아내면 더욱더 사람들은 당신을 재판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계속 먹일 수밖에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성세대가 정해둔 사회적으로 옳은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 배워온 나로서도, 이런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바득바득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노력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도 많았다. ‘저 사람은 왜 대학을 나오고도, 자발적으로 저런 인생을 살아?’라는 시각으로 바라본 적도 분명히 있었다. 결국엔 내가, 주인공 후루쿠라에게 보통의 삶을 강요하는,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등을 돌릴 각오가 되어있던 사람 중 하나였구나, 싶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참 인간미가 없어 보일 때가 많다. 천편일률적이고, 기계적이다. 확실히 재래시장 같이 인간과 인간이 대면하고, 소통을 나누는 곳과는 다른 느낌이다. 규모적인 측면에서 마트와도 다르다. 시식 코너도 없고, 여유 있게 둘러볼 공간조차 없다. 콤팩트한 건물에 콤팩트하게 쌓여있는 물건을 발 빠르게 집은 뒤 계산하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편의점인 것이다. 그런 편의점에서, 모순적이게도 주인공은 보통의 사람으로서 기능을 한다. 구실을 하는 셈이다. 편의점에서만 주인공은 자유로울 수 있다. 편의점 밖을 나서는 순간, 끊임없이 재판당한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편의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또 재판을 당한다. 더 보통 사람이 되라고 사람들은 후루쿠라를 강요한다. 무엇이 ‘보통’인지 모르는 후루쿠라는 응당 인간이라면 남자도 만나야 하고, 안정적인 직업도 구해야 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데리고 살고, 편의점을 관두고 면접을 보러 갈 채비를 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안도한다.


후루쿠라는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간다. 이런 결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그만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라고 생각하는 사회에 끝까지 맞추지 않는 점이 좋았지만, 동시에 결국엔 후루쿠라가 있을 곳은 몇 평 되지도 않는 편의점 한 곳뿐인 셈이니까.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편의점으로 몰아낸 것 같아서 영 찝찝했다. 모두의 인생을 인정해줄 수 있는 시대가 오긴 올까. 나는 모두의 인생을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사회가 바뀌는 데에는 내 사고가 완전히 깨어나는 데에 걸리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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