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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Nov 25. 2023

별이 빛나는 밤

누군가 삼켜내지 못한 별들의 그림자

요 근래 근본적인 고민이 생겼다

이제껏 겪었던 슬럼프들은 그저 게으름이나 귀찮음을 빙자한 변명이었을 뿐 현재 찾아온 고민이 꽤나 제대로 된 슬럼프가 된 듯하다. 근본적으로 글 쓰는 데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는 좋은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다. 글짓기에 관련된 업을 꿈으로 삼는 내게 이러한 시련은 마치 사과나무인 줄 알고 열심히 농사를 짓던 농부가 4년째 되는 해에 그게 사실 과일이 나지 않는 다른 나무였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 과 다름없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학창 시절 때는 거침없고 신선한 상상력으로 둘러싼 깡패 같은 무기를 휘두르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대학교 새내기 시절부터 군입대 전까지는 상상력에 나의 세계를 덧칠하여 텅 빈 풍선이 거대하게 부풀던 시기이다. 그리고 군대부터 올해 대학교 졸업반 시기에서는 세상의 위대함과 나의 부족함을 배우며 고진감래를 끝없이 느끼며 완만하게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가장 성장한 저저번주에서 오늘 새벽까지는 나에게 가장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상상력을 토대로 내 마음대로 쓰던, 나만 읽더라도 나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던, 도전과 포기 그리고 성장과 회피를 시간에 태워 언제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던 터인데, 이제는 다르다. 좋은 글을 쓸 거라는 자신감이 없고 글을 잘 쓰고 있다는 확신도 사라졌다. 이유는 강박증 때문인 것 같다. 아주 달달하진 못해도 그런 단향이 나는 자그마한 결실을 맺은 이후로 나의 5년이라는 세월이 하나의 성장 스토리였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보이지 않더라도 끝없이 노력한다면 결국엔 성장한다는 것‘을 감명으로 '오늘'은 '어제'보다 반드시 더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들이 나의 글을 하나둘 의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좋은 글, 더 나은 글

좋은 글에 대한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모든 글이 중용에 이르기를 바라며 날카롭기보다 부드러운 글, 현란하기보단 단단한 글, 깨뜨리기보단 울림이 있는 글. 나의 글은 원체 부드러워 이제는 적절한 날카로움을 가진 것 같아 위안이 된다. 하지만 나머지 두 신념에 대해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고 있다. 먼저 울림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글쓴이인 내가 글로써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모르고,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떠한 교훈이나 지혜를 담아내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결국 내가 쓴 글은 텅 빈 풍선과 같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안이 텅 비어있는 물체는 울림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에 글은 단단하지 못하고 점점 화려해지기 시작한다.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자꾸만 독특한 문체를 시도하고, 내가 쓴 글을 글에서 설명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문예; 예술로서의 문학을 이르는 말

이렇듯 창작은 어렵다. 당대에 위대한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빈센트 반 고흐가 오늘날이 돼서야 찬양과 사랑을 받듯 개인이 풀어나가지 못하는 비운도 따른다. 누군가는 이러한 비운마저 받아들이며 동시에 또 좌절감에 빠지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서랍에 담아 기어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그 마음으로 써 내려간 공책에는 그 누구보다 제 자신이 제일 엄격하고 냉철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안타까운 순간이다.


하늘에 비가 내리면 손에 쥔 우산을 펼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지 못하는 것이 창작이다. 그래서 매력이 있는 행위이고 그만큼 가치도 있는 일이다. 창작이든 꾸준한 노력이든 뭐가 됐든 누군가가 느끼는 좌절감은 사실 텅 빈 풍선일 수 있다. 한껏 부푼 풍선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날 때, 이 먹구름 아래 우산을 펼쳐들지 않고 풍선을 하나씩 깨뜨린다면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은 금세 그칠 수 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가장 위대한 순간이기도 하다.


별이 빛나는 밤

꼬인 이어폰 줄을 풀고 또다시 주머니에 쑤셔 박듯, 지금 느끼는 슬럼프도 언젠간 풀릴 줄이고 또다시 자연스레 꼬일 줄이다. 가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낼 때 반듯한 이어폰 줄을 발견할 때가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주머니 속에서 꼬여있는 줄을 발견할 때도 반듯한 줄을 발견할 때도, 나는 매번 바르게 줄을 풀어 주머니 속에 고이 넣었다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삼켜내지 못한 별들의 그림자는 밤하늘을 더욱 환하게 비춘다. 그게 설령 빈센트 반 고흐라고 해도 말이다.


사진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Prawny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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