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날엔떡국 Nov 30. 2023

어느 새부터 세상은 안 멋져

사실은 멋져요, 적어도 우리의 세상은

잘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 것.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 때 그리고 잠들기 전 이불을 덮어 올릴 때, 세상 밖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까 궁금해진다. 내가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을 바라는 것처럼 모두가 상상하는 세상 밖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래도 우린 세상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소식들을 꽤나 잘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소중히 보내고 있다. 누군 sns를 보며, 또는 뉴스를 통해, 아니면 서적을 읽으며, 그리고 입소문을 건너 건너 펼쳐진 흥미로운 사건들을 매일 접한다. 나는 이렇게 접하는 소식들이 어느 새부터 재밌지 않아졌다.


텔레비전을 틀면 일상, 여행, 여가, 체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치명적이다. 영화나 음악방송 이런 것보다 오히려 잔잔한 일상 속 이야기들이 더 자극적인 느낌을 준다. 텔레비전을 틀면 나올만한 그런 인물이 아닌 모두를 가정한 사람들은 다들 굶주려있다. 텔레비전에 펼쳐지는 그런 세상들이 굶주린 그 사람의 소원이자 꿈이고, 대리만족이라는 명분 하에 도파민으로 가득 절여진 매개체는 겨울날 추운 공기가 얼굴을 찢어가듯 결국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끄고 직접 세상 밖으로 나가본다. 작게는 대학가를 장식하는 고성방가, 가로수 옆 흘러 다니는 담배 연기, 종량제 봉투 더미 위에 올려진 일회용 컵과 여러 종이 쓰레기들, 그리고 크게는 갈수록 흉악해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온갖 범죄 행위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 민주주의가 살피지 못하는 것들. 집에 들어와 다시 텔레비전을 켜본다. 그 속은 다시 잔잔하고 평온하다. 그래서 참 자극적인 세상이다.


연예인 또는 유명인이나 사치스럽고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삶의 의미가 좁아진 세상과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아프다는 것이지 모두가 최선을 다 한다는 사실을 퇴색시키고 싶지 않다. 다만 매체가 전해주는 내용에는 울림이 사라졌고, 그것을 되찾으려 하는 젊은이의 열정은 오직 자본주의라는 다른 곳에만 쓰이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싶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결국 젊은이만의 문제인지 아님 더 복잡한 문제로 꼬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헷갈려진다. 그래서 스스로를 '요즘 세상과 결이 맞지 않구나'라며 '요즘 세상을 재미없다'라고 회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내가 병들어 가는 건 아닐까?


죽은 시인의 사회

이곳은 시인이 필요할까, 인류의 일원으로서 목소리가 세상에 닿기는 할까. 내가 내야 하는 목소리가 정해져 있고,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가 잠겨가는 이곳은 시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담아 누군가에게 전하는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 주위만 돌아봐도 나의 동네, 마주치는 사람들, 들리는 소식들은 모두 녹슬어가고 있다. 흘러가는 세월에 맞춰 모든 것들이 진해지며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 아닌 그저 고유한 맛 자체가 변질되고 있다. 모두가 아프고 병에 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아프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슬프지 않은 게 아닌 것처럼, 아프지 않아도 세상은 병들고 있다. 이곳은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한국인의 정'을 팔아 돈을 택했다.


씁쓸한 책상 앞에 앉아 씁쓸한 글을 쓰고 있는 씁쓸한 나를 바라보면 씁쓸함이 꽤 짙어진다. 고장 난 곳이 생겨도 애써 모른 채 지내려는 것처럼, 이렇게나 아픈 실상을 들쑤시는 것은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씁쓸함을 남긴다. 그래도 나는 기필코 단언한다. 언젠간 세상 속에 숨어있는 괴리감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넘어서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끈기와 열정 그리고 한이 흐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과도기를 충분히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지난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나서는 내가 낯설기는 하지만 가끔은 내가 막대한 일을 맡은 히어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한 편의 시

나는 사람들이 좀 더 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고, 불의에 솔직해졌으면 좋겠고, 추위에 덜덜 떨어봤으면 좋겠다. 봄꽃은 꽃피우기 위해 봄을 택한 것이 아닌, 내년에 피어날 씨앗을 남기기 위해 봄을 택한 것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말이다. 모두가 당장 꽃을 피우지 않아도 괜찮아하고, 모두가 끝내 꽃을 피우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며, 그 끝에 피어난 들꽃의 진한 향기들에 다 같이 취하고 싶다. 그런 날에 나의 시가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조심스레 찾아가겠다고, 감히 낯선 소망을 품어보겠다.

작가의 이전글 별이 빛나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