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녀석을 주재료로 골라볼까
지저분한 책상 앞에 앉아 불편한 자세를 취해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듯이 글을 쓴다는 건 나름 행복한 행위에 속하지 않을까. 게다가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고 '흠.. 그럴지도?'라는 산뜻한 공감을 해준다면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모두가 좋아할 만한 주제'와 '신선한 소재'가 가장 중요 식재료이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하는 생각처럼 글의 주제를 고르는 일은 사실 행복한 고민이다. 뭐든 그에 따른 맛이 있고, 누군가는 맛있게 먹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서일까. 그래서 오늘 주제는 '시를 쓰면 좋은 점'이다. 이유는 별 거 없다. 지난달 검색을 통해 나의 브런치에 방문한 손님의 검색 키워드를 보니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시를 쓰면 좋은 점'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나의 글에 도달한 손님이 있었던 것이다. 시인 지망생인 나는 곧장 옅은 미소를 지으며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밑밥을 깔다: (비유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 미리 준비하다.
제목이 너무 뚜렷하다. 시를 쓰면 좋은 점에 대해 얼른 서술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에 한 발짝 다가오려는 그대를 위해서 장황하게 서술해야 할까. 아니면 있지도 않은 과장을 하며 그대를 현혹시켜야 할까. 뭐가 됐든 나는 그저 시인이 되고자 하는 한 명의 나그네로서 솔직한 느낌을 털어놓아보겠다.
시를 쓰면, 그냥 좋다.
내가 쓴 시를 직접 눈으로 읽을 때면 괜히 음유 시인이 된 것 같기도 하면서 뿌듯하기도 하다. 하나의 낙서가 아닌 문예 창작을 나름 고민하면서 해냈다는 게 나를 감성적으로 좋게 만든다. 쾌락과는 다른 결로 스스로를 좀 더 꽉 차게 만들고 단단하게 하는 성질이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편의 시를 짓고난 뒤 불쾌감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밤늦게까지 핸드폰을 하고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에 즐거움보단 후회를 하고, 배부르게 야식을 먹고 나서는 자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포만감보단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詩作)은 생산적인 교양 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옅은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결과가 좋은 행위에 속한다.
또 시를 쓰면, 나에게 좋다.
시와 일기를 비교한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기는 오늘 하루에 대한 줄거리를 요약하며 종합적으로 느낀 감정을 사실적인 글로 남기는 것이고, 시는 보다 세세한 감정을 건드려 '오늘의 나'만이 쓸 수 있는 서정적인 일기라고 생각한다. 어제 못 쓴 일기를 오늘 써도 크게 달라질 부분은 없지만, 어제 못 쓴 시를 오늘의 내가 쓸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이유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지만 실제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로 은연중 시에는 이러한 것들이 담겨 표현되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경우 다르겠지만, 취미로 시를 쓰는 사람에 한해서 시에 여러 표현을 남기는 과정 속에는 최근 겪은 감정이나 경험한 것들이 적극 활용된다. 그래서 시를 쓰고 몇 개월 후 다시 읽어보면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정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시를 쓰면, 시를 읽을 때 좋다.
시집을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 종종 시를 읽다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을 발견하기도 한다. 해석이 어렵기도, 흐름이 어색하기도 그리고 공감이 되지 않아서도 어려운 표현에 막힐 때가 생긴다. 그렇게 우린 시집을 덮고 시와 한걸음 멀어지게 된다. 시는 가벼워선 결코 안되지만 어려워선 더욱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어려운 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해석하기 다소 복잡한 표현이 있더라도 그 부분은 시인으로서 독자의 상상을 기대하며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라는 장르가 워낙 열려있기에 각자가 읽고 상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감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당연히 주변 지인에게 보여주면 된다. 온라인상으로 감상하는 시에 대해서 독자는 자신의 상상을 시인에게 공유할 수 없다. 공개적인 댓글로 나의 해석을 남기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친분이 없는 것도 이유이다. 반대로 현실에서 혹은 친한 친구나 지인에게 시를 보여준다면 그 공간은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를 공유하는 제3공간이 될 수 있다. 내가 지은 시이지만 '이 표현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하며 새로운 영감을 받는 순간도 생긴다. 그래서 시는 맺어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고, 독자가 읽는 순간 한 편의 시로서 완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읽는 시도 그렇게 완성이 된다.
참 어려운 주제였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의 글에 잘못된 정보가 담기지 않을까, 독자에게 회의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아닐까 경계하며 써 내려갔다. 동시에 너무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에 솔직한 느낌과 생각을 정리하며 써 내려갔다. 이렇게 나름 정성을 들이며 누군갈 위해 써보았지만, 뭐.. 사실 좋은 점이 어디 있겠나.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 사소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이미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 속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은 비로소 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무작정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