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물건
What is this? 강당에서 열린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다.
A table? 하고 앞자리에 앉은 한 학생이 피식거리며 대답했다. Oh, really? 교수님은 갑자기 테이블 위로 휙! 올라가 철퍼덕 앉더니 다시 물었다.
Now, I am sitting on this. What is this?
건축이론 첫 수업 날. 하이데거를 논하면서 교수님이 던진 이 첫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사물은 고유한 형태와 용도에 따라 그것의 의미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놓여있는 관계에 따라 의미, 형태, 용도가 변하고 매 순간 새롭게 정의된다. 존재란 그렇게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형태를 만들면서 종종 막혀서 답답할 때 이 기억이 찾아온다. 그러면 그때 느꼈던 대학 1학년의 열의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폭풍 같던 질문들도 같이 따라와 왠지 신이 나고 해방감이 든다.
물건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존재까지 논하면서 삼천포로 빠지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원래는 사라진 양말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사라진 양말과 사라진 귀고리 한 짝과 백 개를 사면 어느새 백 개가 다 사라지는 실핀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그리고 나선 사라져버린 양말 때문에 의미가 없어져버린 남아있는 양말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고, 그 양말이 걸레로 전락해버리고 나서야 소파 밑에서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는 사라졌던 양말의 뻔뻔함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가면 없어진 줄 알았는데 문득 외투에 손을 넣으면 나타나는 립밤이나 버린 줄 알았는데 모든 주머니 구석마다 구겨진채 숨어있는 영수증에 대해서도 조금 쓰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다보니 어느덧 옛날 강의실의 테이블까지 생각나버렸다. 아니, 한때 테이블이었다가 교수님 엉덩이에 뭉개지고 나서 의자가 돼버렸다가 교수님의 일장 연설이 끝나고 나자 깨달음의 상징으로 남은 어떤 물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양말 두 짝의 상호 관계성과 영원히 양말을 찾아다니거나 양말을 발견하는 나와 양말의 관계성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어쩌면 이런 관계성은 나와 양말이라 불리는 그것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나와 내가 아닌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까지 생각이 미치자 굳이 어떤 물건을 특정해서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모든 물건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사라진 물건은 우리가 사라짐을 알아차릴 때에야 비로소 사라진다. 어떤 물건들은 사라짐으로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는다. 또 모든 물건들은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 나타난 물건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어떤 물건들은 나타남으로써 영원히 우리 기억에서 지워진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타날 동안 남아있는 것들과 나를 생각한다. 간절히 바랐기에 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마음을 생각한다. 지상에 닿으면 금새 녹아 사라지는 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늘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나는 눈. 첫눈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을 생각한다. 양말과 귀걸이와 실핀이 백만 번 사라지고 백만 번 나타나는 동안 변하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포로로 떨어진 눈 한 송이가 아이의 혓바닥에 닿아 녹기 전, 반짝하고 빛나는 그 순간을.
(2021. 9.14. 물건이라 불리는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