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그림, 벽)
어릴 때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색감이 강렬했던 드라마였는데 여주인공의 직업이 세트 디자이너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왜 세트 디자인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무대가 끝나고 세트가 무너지는 걸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했던 그녀 목소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민 온 후, 언어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이제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먹고 살기는 틀렸구나. 하고 활자 대신 잡은 건 그림이었다. 그림쟁이가 되려면 집을 나가라는 부모님의 벽에 부딪혔을 때, 그림으로 먹고 살기도 틀렸구나. 하고 마지막으로 잡은 건 벽이었다.
나는 벽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살만한 건축을 선택했다. 세트 디자인이랑 비슷하네. 생각하면서 잠깐 그녀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던 것 같기도 하다.
무너지는 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서 무언가 새로 돋아나는 걸 보는 게 좋다.
벽은 무너지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한다.
오래된 것들일수록 그 안에 생명이 동결되어있다가 무너질 때야 소리를 내고 아픔을 드러낸다.
벽은 무너지면서 오랜 시간 자신의 몸통을 파고들어 온 물과 공기의 역사를 보여준다. 벽돌이 닫힌 돌이 아니라 숨 쉬고 있었다는 걸, 물을 마시고 내뱉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돌산은 갈라질 때야 그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드러낸다. 자연 광석의 패턴은 사실 불순물이 돌에 스며들어가서 오랜 시간 돌을 먹으면서 퍼진 건데, 이걸 보다 보면 가끔 이 패턴이 돌의 생명줄, 혈관처럼 느껴져서 섬뜩할 때가 있다. 매끈한 대리석의 단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돌산이 잘릴 때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아름다운 것들은 저마다 선혈이 동결되어있는 순간을 안고 있다. 돌산이 갈라지는 순간, 생명과 죽음이 교차되는 그 순간을 단면에 영원히 기록하면서 돌은 벽으로 다시 태어난다. 돌산으로 머물렀다면 영원히 발견되지 못했을 비밀, 천고의 자연이 그린 생명의 그림으로.
벽은 스스로 무너지기 위해서 태어난다.
아프고 늙어가고 갈라지고 낮아진다.
그래서 또 태어난다.
어릴 땐 무너지는 것들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허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그녀의 입장이 되어 수없이 무너지는 벽과 태어나는 벽을 바라본다. 이제 나는 그것이 허무가 아닌 세상에 대한 연민이었음을 안다. 누군가는 무너지는 것들을 끝까지 바라보아 주어야하니까.
벽 중에서도 특히 벽돌벽을 좋아한다.
하나라도 허투루 놓이면 다른 모든 벽돌들도 흐트러지기에 하나하나 정성과 온전한 마음을 다해서 놓아야 한다. 벽돌 하나로는 벽이 될 수 없으니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놓아야 한다.
사이의 틈으로 숨을 쉬고 비를 마시고 그러면서 몸에 난 작은 홈에 이름 모를 씨앗을 들이기도 하고, 담쟁이의 어린 손을 잡아주기도 하는 구멍 많은 벽.
그렇게 쓸모를 다하고 나면 다시 바스라져 흙으로 돌아가는 그 마음을 좋아한다.
이제 다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렇게 조금씩 숨쉬며, 벽에 부딪히지 않고, 숨 쉬는 벽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2022.2.20 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