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번째 편지- 너는 나의 꽃
# 다섯번째 편지: 나의 예쁜 꽃에게
그날 오후를 기억해.
나는 소파에 앉아 너를 무릎에 앉히고 어르고 있었지. 마당 자목련이 가득하게 피어오른 초봄이었어. 등 뒤에선 오후 햇살이 쏟아져 마루에 산란되고 있었어.
은어떼처럼 반짝거리는 빛을 보고 너는 까르르 웃었고 나는 너를 내 품에 꼭 안았어.
내 목과 어깨 사이 오목한 골짜기에 네가 얼굴을 푹 파묻고 부빌때, 그제야 나는 내 몸 곳곳의 의미를 알았어.
우린 어쩌면 이렇게 꼭 맞춰져 있을까.
내 팔을 둥글게 감아 요람을 만들면 그곳에 네 작은 몸이 꼭 들어맞아. 네 볼록한 귀여운 엉덩이는 내 한 손에 쏙 들어와. 나의 팔과 팔꿈치 사이, 목과 어깨 사이, 옆구리와 힙 사이, 가슴과 배 사이의 모든 오목한 곳은 어쩌면 너의 볼록한 곳을 받아주기 위해서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은 모든 공간의 원형은 결국 너를 위한 모든 오목한 골짜기일 거라 생각해.
뾰족뾰족 삐뚤빼뚤한 네가 결국 돌아와 가슴에 가슴을 맞대고 얼굴을 푹 파묻을 수 있는 집. 배부른 곡선과 배고픈 곡선이 만나 손을 잡는 사이. 그 사이에 너를 품고 영원히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해.
그러나 나는 너를 늘 품고 있을 수 없을 거야. 내가 품고 있으면 넌 영원히 그저 나의 뾰족한 조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셀 실버스타인이라는 아저씨가 쓴 동화 읽어본 적 있니? 거기에는 이가 빠져서 슬픈 동그라미가 나오지.
어느 날 동그라미는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 여행길에서 뜨거운 햇볕에 헉헉거리기도 하고, 추운 눈을 맞고 덜덜 떨기도 하고, 그러다 햇살에 다시 몸을 녹이기도 해. 때로 꽃도 보고 풍뎅이도 만나고...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드디어 자기 몸에 꼭 맞는 조각을 만나지. 둘은 서로를 찾아 너무나 행복했지만 완전해진 동그라미는 너무 빠르게 굴러 멈출 수가 없었어.
더 이상 꽃냄새도 맡지 못하고 풍뎅이와 놀지도 못하자 둘은 살며시 서로를 놓아주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해.
하지만 그 길은 이제 슬픈 길이 아니었지. 둘에게는 서로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니까. 동그라미는 여전히 비어있었지만 서로 나누었던 마음만큼 넓어지고 넉넉해졌어.
동그라미는 비로소 자신이 되었어.
한 때, 나도 날카로운 조각이었어.
엄마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드는 날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어.
하지만 엄마 없이 떠난 여행길에서 부딪히고 다치며 내 뾰족함은 점점 마모되어갔지.
그래도 괜찮았어. 나는 그만큼 자랐으니까. 뾰족함이 깎여갈수록 동그람은 점점 자라났어. 그러나 가끔 큰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면 그 자리는 깊게 파여 영영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나기도 했어.
상처가 아문 곳은 오목하게 남아 다른 이를 기다리고 품을 수 있었어.
그렇게 내가 오목한 동그라미가 되었을 때, 너를 만났어.
우리가 서로를 품고 있는 곳,
나의 오목과 너의 볼록이 만나 꼭 끼어 있는 곳,
네가 너만의 여행을 떠나기 전, 지금 이 공간의 가득함을 기억해.
기억하는 만큼 그 힘으로 너는 더 멀리 여행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이 품의 기억이 너를 지켜줄 거야.
외로운 여행길을 가다가 너도 깎이고, 꺾이고, 파이고, 그만큼 자라겠지.
그래서 네가 오목해질 때, 너만의 볼록을 만날 때,
어느 반짝이는 오후에 기억해줘.
나는 너의 집이었다는 걸. 너는 나의 길이었다는 걸.
# 여기, 피어나는 노래:
(다섯번째 공간 이야기: '꽃, 품의 공간' 으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