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번째 사연 - 당신 마음 속 공간의 이야기
: 다섯번째 편지- 너: 다섯번째 편지- 너는 나의 꽃는 나의 꽃
#여섯번째 사연 - 당신 마음 속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독자님의 사연: 성균관 명륜당 앞, 은행나무가 있는 뜰
나무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은행나무를 참 좋아해요.
지금은 없지만 어릴 때 마당에 은행나무가 있어서 그 잎을 가지고 많이도 놀았네요. 커서도 마음이 울적할 때 가까운 큰 은행나무를 찾아가 기대어 있기도 하고, 단풍이 드는 철에는 좀 멀리 있는 이름난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여행을 몇 번 하기도 했어요.
사진은 은행나무가 만드는 공간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서울 성균관 명륜당 앞, 은행나무가 있는 뜰이에요. 웅장한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도 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지만, 그 아래에서 명륜당을 바라보면 낡은 것과 새 생명, 어두운 색과 밝은 색, 널찍함과 아기자기함이 어루어지는 공간감을 느끼게 해요. 이런 공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 수진의 답편: 그늘의 공간
안녕하세요 ㅇㅇ 님,
은행나무 아래 공간에 대해 사연을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이야기를 듣고 요새 제가 겪은 일이 생각났어요.
최근에 제가 키우던 화분들이 다 말라버린 사건이 생겼어요. 재택근무하는 날, 빛 쬐어준다고 마당에 내놓고, 일하느라 딱 한나절 깜빡했을 뿐인데.. 쨍쨍한 시드니의 태양이 그새를 못 참고 여린 잎사귀들을 다 태워버린거에요.
한 달 동안 뿌리를 내리겠다고 물꽂이를 해왔다가 바로 며칠 전 화분으로 옮겨준 어린 식물들이라 더 속상했어요. 같은 식물을 다시 살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제가 그동안 마음을 준 그 아이들이 아닐 테니까요. 그동안 유행 따라 ‘식집사’ 노릇 해보겠다고 부산 떨면서 이것, 저것 욕심내면서 화분을 늘렸는데.. 정작 잘 키우지 못했구나...갑자기 맥이 풀려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질 못했어요.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생명들,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마당 한 구석 큰 떡갈나무 그늘로 모두 옮기고 한동안 안 쳐다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돌아보니 글쎄, 죽어가던 애들이 다시 서서히 살아나고 있더라고요. 그동안 촉촉이 내렸던 비와 큰 나무의 그늘, 그리고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자연의 시간이 다시 생명을 살린 거죠.
ㅇㅇ님이 나눠주신 은행나무가 만드는 공간에 대한 추억을 읽으면서 나무 그늘이란 공간이 가진 치유의 힘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고, 빛과 어두움이 섞이는 곳, 본체가 하늘로 상승하면서 크게 자랄수록 더 깊어지는 그늘이 품어주는 자리, 그곳에서 태어나는 아스라한 작은 고사리 같은 생명들. 그늘이라는 고이는 공간이 주는 쉼과 위안, 그곳에 머물면서 치유받는 마음, 그리고 또 다른 시작에 대해 생각하다가….
오늘은 다시 일어나 작은 이끼 테라리움을 만들었어요.
#그늘에 고이는 노래
Trois Gymnopedies, by Erik Satie
(여섯번째 공간 이야기: '그늘, 고이는 공간' 으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