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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08. 2022

7.(일기) 컷 (Cut)

: 일곱번째 일기 - 용서할 수 없는, 용서 받을 수 없는

“Light red over black”, 1957, Mark Rothko  ©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DACS 2022
누군가의 죽음이 한번 뚫고 나간 삶의 구멍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그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오기 위해 달아나고, 실제로 까마득히 떨어져서 평생을 살아간다 해도, 뚫고 나간 자리는 여전히 뚫려 있으리란 것을, 다시는 감쪽같이 오므라들 수 없으리란 것을 몰랐다.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사건: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Forgiving the Unforgivable)


20대 초반, 나는 설익은 치기와 배부른 멜랑콜리가 최대치에 달해 건축 공부는 제쳐두고 철학과 미술에 빠져 온 세계의 고민이란 고민은 다 짊어지고 있었다. 아직 말랑거리던 시절. 쉽게 상처받고, 쉽게 자신만만하고. 쉽게 세상과 사람을 불신하고 또 그만큼 굳게 믿었던 시절. 


마침, 철학자 쟈크 데리다 교수님이 전 세계를 돌면서 ‘용서‘를 주제로 세미나를 하셨고, 운 좋게도 내가 있던 대학교에도 일정이 잡혔다. 부푼 마음으로 세미나에 참석했다.

대학생뿐 아니라 오클랜드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은 모두 다 그 자리에 모여있었다. 그 사이에서 난 몇 안 되는 어린 동양 여자였다. 영어도 공부도 제대로 못 하면서 내가 여기에 끼어도 될까 하는 자격지심을 누르면서 자리에 앉았다. 


홀로코스트를 통해 ‘용서는 이미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었다‘라고 선언한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주장을 인용하며 강의가 시작되었다. 용서, ‘Pardon’이란 단어를 쪼개 음절 par-don으로 해체하고 의미를 재해석해나갔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해야 용서‘라는 아포리아를 세밀히 고찰하며 사고를 확장시키는 강의였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는가, 누가 용서를 요청하며, 누가 용서를 허용할 자격이 있는가, 인간의 인간다움 즉, 존엄성을 흔드는, 속죄 불가능한 범죄(홀로코스트)가 일어났을 때, 과연 그 반인류적 사건은 과연 용서될 수 있느냐 라는 등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용서의 한계, 용서와 기증, 용서와 속죄, 용서의 시효성, 회복성 또는 회복 불가능성, 화해의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난제들이 하나하나 다뤄졌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듯, 미로를 하나하나 헤쳐나가듯 짜임새 있는 명강의였다. 


그전에도, 후에도 평생 그처럼 집중해서 강의를 들은 적도, 그렇게 강렬한 지적 자극을 받은 적도 없다. 

데리다 교수님이 던진 생각을 하나 따라가면서 그럼 이건? 하고 질문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면 강의는 동시에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어졌다. 질문과 답, 답과 질문이 교차하면서 위대한 철학자의 사유  안으로 내가 초대되는 환상적인 희열의 순간을 맛보았다.

결국 용서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할수 없는 것을 용서하려는 서로의 지속적인 시도를 통해 우리에겐 적어도 계속 나아갈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며 강의가 끝났다. 나는 두 시간 동안 전기 자극을 맞은 것처럼 노곤하게 각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일은 내가 나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철학자의 명강의 -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짜인 마스터피스 같은 강의가 끝나자 모두가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부터 드레드록 머리를 하고 온 히피 대학생들까지, 오래 묵은 클래식한 정장을 잘 차려입은 백인 노부부부터, 총기 가득한 눈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젊은 백인 청년들까지,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내는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내가 완전히 사라진 듯한, 섬처럼 완벽하게 고립된 듯한 단절을 느꼈고, 박수의 물결에 동참할 수 없었다. 대신 미친 듯이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 큐비클에 들어가 혼자가 되자마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알 수 없었고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머릿속엔 온통 이 문장들이 폭죽처럼 팡팡 터지고 있었다. 


너희가 어떻게 알아! 너희가 뭘 알아!
짓밟혀보지도 않았으면서 너희가 뭘 알아!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완벽한 강의를 들었고, 20대 내가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유희를 겪은 후였다. 데리다 교수님도, 여기 있는 사람들도,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은 조상을 두고 있을 수 있다는 것, 혹은 더 큰 역사의 상처를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이런 빛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터질 듯한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기억은 오로지, 


서툰 영어로 입을 못 떼는 나에게 Go back to your country!! 라고 소리 지르고 그게 영웅담이나 되듯 킬킬 거리던 사람들. 아니, 그들은 차라리 순진했다. 

말을 못 한다고 해서 바보가 되는 건 아닌데, 수줍은 나를 표적 삼아 친한척하면서 미묘한 우롱으로 살살 약 올리던 학교 아이들. 일본인인 줄 알고 친해지려다가 내가 한국인인 걸 알면 차갑게 태도가 바뀌던 소위 쿨한 백인들, 불편하단 이유로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던 선생님들….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하듯 희열과 각성의 꼭대기에서 만난 것은 마음의 심연 속에 숨겨놓았던 가장 밑바닥의 상처였다. 상처가 구토처럼 올라왔다. 


차별을 눈앞에 맞닥뜨리면, 첫 반응은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경악이다. 

너무나 현실감이 없어서 머리가 새하얘지고, 나의 존재는 그 자리에서 지워진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장 기본적 가치라고, 믿으며 온실 속에서 자라난 나를 비웃듯, 너무 쉽게 드러난 인간성의 추악한 밑바닥. 그건 쉽게 맞서 싸울수록 있는 공격이나 위협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맞받아 칠만한 말을 생각해 냈을 땐 이미 늦었다. 

응당 가해자에게 표현했어야 할 분노가 갈 곳을 잃자, 화살은 부끄러움이란 이름으로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왜 그때 그렇게 대항하지 못했을까.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애초에 왜 꼬투리를 잡혔을까. 내 말은 왜 이렇게 아직도 거지 같을까. 그렇게 방향을 잃은 상처는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아직 나는 상처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싸우지도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린 내 상처, 말할 자리도 힘도 기회도 없었던 아픔. 나에게 용서는, 상처는, 철학으로 매끄럽게 구성될 수 있는 머릿속 지적 유희가 아니라 매일의 현실이었다. 


당신들은 말할 수 있구나. 당신들은 이제 용서를 ‘말할 수’ 있는 힘이 있구나.
당신들은 이제 울지 않고 박수 칠 수 있구나. 


나는 그들의 거리가 부러웠고, 화가 났고, 동시에 역겨웠다. 그날 내 머리는 뜨겁게 박수를 치고, 내 가슴은 완전히 찢어져 울고 있었다.       



0+12개의 공간 이야기

 

(일곱번째 공간 이야기: '컷(Cut), 상처의 공간'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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