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면서 몇 가지 마음의 규칙을 정했다. (이 중 일부는 이미... 지켜지지 않은지 오래인 것도 있다.)
1. 회사 다닐 때처럼 밤에 자고 아침에 깨기
2. 하루에 한 끼는 적어도 끼니 되는 밥 먹기
3. 외출하지 않는 날에도 꼭 씻고 단정히 지내기
4.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운동 꼭 하기
5. 별 일 없더라도 햇볕 쬐어주러 나가기
6. 앞으로 얼마나 길어질지 모를 순간순간들을 두려워 말고 죄책감 갖지 않기
7. 이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진다고 해서 절대로 자학하지 않기
나름 1~5번은 그래도 우리 콩이 덕에 산책을 나가야 하고 나가기 전이든 후든 씻어야 하고, 콩이 밥 먹이다 보면 내 밥도 먹게 되고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6,7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자기 방어기제가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방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 방어를 해야 할 상황 자체를 피해버린다.
퇴사는 내 인생 처음으로 피하지 않고 방어를 한답시고 하면서 내가 산산조각이 나버린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첫 도전치고 참 화끈했다. 이 시간이 길어지긴커녕 반년도 채 쉬지 못한 나는 온갖 불안한 마음에 리크루트 사이트를 보기도 하고, 심지어 사기성이 짙은 이름만 존재하는 회사의 프리랜서 실장이 되었다. (잠깐 스쳐간다는 생각으로 4대 보험을 거부했다.)
거기다 얼떨결에 작은 부수입을 위해 간이 사업자등록증까지 생겼다.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러다가 정말 영영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자 빨리 노력해야 돼. 뭐든 해야 돼. 공모전도 알아보고, 공채, 특채, 뭐든 해야 한다는 압박감. 불안감.
'어? 그러면 진짜 백수는 아니네? 뭐라도 하고 있는 거네?'라고 말하신다면 내 기준에서 그건 아니다. 사기성이 짙은 저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다시 극에 달해 약 투여량을 높였고, 연말이면 일을 관두게 될 거라고 다시 한번 '백수 선언'을 할 예정이다. 작은 부수입은 정말 말 그대로 1회성에 그칠 일이었는데 기관에서 개인으로 지급에는 상당한 증빙 서류와 복잡한 절차가 존재하기에 어쩌다 보니 사업자 등록증이 생겼다.
대체가 나는 쉬려고 관뒀는데 왜 쉬지를 못하는지?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나는 제대로 쉬어야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 없으면 언젠가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겠지?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내 용량을 다시 한번 늘려야 할 시기다. 작은 일들에 일희일비하면서 또다시 나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면 안 된다.
답정나.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있지 않다는, 나의 울타리가 없다는 불안감은 도대체가 떨칠 수가 없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않잖아요. 어쨌든 뭐라도 해보려고, 이겨 내보려고 시도해보고, 도전해보고 하고 있는데 왜 그런 그걸 못 보시는 건지 안타까워요."라고 말씀하셨었다.
이 조차도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남들이 뭐라고 말해도 내 마음을 고쳐 먹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지금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그게 쉽게 안된다는 것을. 내 몫이지만, 나 혼자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혼자인 것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이 너무나도 큰 사람이다. 도대체가 밸런스가 맞는 게 없다.
도움을 청해야 하고, 나눠야 하고 이 내성적인 성격을 내다 버리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내가 기존에 믿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쉽사리 새로운 사람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나마 가끔씩 콩이 산책을 나갔다 만나는 마음 따스한 반려견 보호자님들과 나누는 대화로 힐링을 할 뿐.
어쩌다 백수가 된 나는 오늘도 콩이를 안고 불안한 마음을 약을 먹고 진정시켜본다.
백수? 쉬운 줄로만 알았는데. 백수도 되기 위해선 나름의 준비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