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산책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귀차니즘 만렙 감자씨는 숙소로 먼저 들어가고 나 혼자 부른 배를 식히기 위해 동네 산책을 떠났다. 메콩강변을 따라 한참을 걸어내려 가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길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린아이들을 보기 힘든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집집마다 갓 일어나 돌아다니는 꼬질꼬질 귀여운 아이들, 꽃과 나무,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었다.
한참을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걷다 보니 건너편에 공항이 있는 대로변으로 길이 이어져 다시 숙소방향으로 보도를 따라 걸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어대는 차들 옆으로 얼마간 걸어가다 보니 맞은편에 총을 들고 서있는 군인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라 깜짝 놀랐지만, 괜히 눈을 깔고 최대한 자유로운 여행객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괜히 주위를 더 두리번거렸다. 선량함을 한껏 뽐내며 걷다 보니 이번엔 어느새 50여 명 정도 민방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도로변에 우르르 서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아세안 회의 때문에 차출된 사람들 같아 보였다. 무리를 지나쳐 코너를 돌아 숙소 쪽 골목을 접어드니 길가에 주차된 탱크가 보였다. 라오스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신기하게 탱크를 바라보다가 다시 골목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한쪽에 엎드려 있는 흰색 강아지를 발견했다. 그때 그냥 총 든 군인 앞을 지날 때처럼 눈을 내리깔고 지나갔어야 했는데... 최근 다녀온 더운 나라, 태국과 대만에서는 더위에 지친 강아지들이 주로 길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고 행인이 지나가도 눈알 하나 까딱할 기력이 없어 보였다. 라오스도 만만치 않게 덥기 때문에 축 늘어져있고 순할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섣부르고도 어리석은 오산, 나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괜히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핸드폰을 꺼내드는 순간 개가 눈빛이 돌변하더니 벌떡 일어나 컹컹 짖기 시작했다. 내 무릎까지도 안 오는 작은 강아지가 목청은 거의 대형견 못지않았다. 깜짝 놀라서 "미안, 미안"하고 뒷걸음질로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는데, 아뿔싸 그러한 나의 움직임이 개의 심기를 건드려 버렸나 보다. 개님이 미친 듯이 짖으면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카메라를 든 손으로 훠이훠이 손짓을 했는데, 그게 바로 흰 개의 발작 버튼을 제대로 눌러버린 것이다. 잔뜩 흥분한 흰 개는 키가 크지 않으니 딱 자기 눈높이에 있는 내 종아리로 돌진을 하면서 미친 듯이 아르르 아르르거리기 시작했다. 루앙프라방도 가보기 전에 라오스 길바닥에서 처음 보는 개한테 다리를 뜯기게 생긴 나는 '개를 어떻게 진정시켜야하지?', '물리면 119 신고는 어떻게 하지?', '라오스도 구급차가 119인가?', '여행자보험은 들었지만 개한테 물어뜯기는 것도 보상해 줄까?' 순간적으로 오만 생각이 휙휙 지나갔다.
그 어떤 생각에도 스스로 답할 수 없는 나는 결국 너무 무서운 나머지 조선시대에 억울한 일이 있으면 원님 앞에 납작 엎드려 사정하듯, 개님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미안, 미안 아니야. 안 그럴게. 나 그냥 지나갈 거야."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매섭게 쳐다보고 있는 개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 바디랭귀지도 더했다. 조심스레 팔을 들어 숙소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지? 나 저기로 그냥 지나가는 거야." 간절한 마음이 개님에게 가 닿은 것일까? 개님이 명판결을 내린 듯 아르르 거리는 것이 잦아들고 이빨도 조금 들어갔다. 이때다 싶어 왕 앞에서 신하가 물러나듯 뒷걸음질로 조금씩 물러나며 "나 지나간다? 지나갈게?"라고 개님한테 사정을 하며 최대한 심사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스레 뒷걸음질로 총총총 빠져나올 수 있었다.
미친개존을 지나 다시 메콩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절이 있어 구경했다. 절 입구에 입마개를 한 큰 개와 작은 개가 있길래 크게 데인 나는 이번엔 투명개인 것처럼 필사적으로 못 본 척하고 개들이 지나갈 때까지 딴청을 부리며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작은 절을 구경하고 나와 이번엔 미친개존으로 지나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골목에서 바닥을 쓸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먼저 인사하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셨다. 그녀들을 지나가려고 하니 또 입마개를 한 큰 개가 엎드려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 개는 잘 물어서 입마개를 했을까? 안 답답할까? 어딜 다친 걸까? 밥 먹을 때만 풀어주나? 목마르면 어떡하지?'라고 나도 모르게 잠시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빤히 쳐다보는 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였는지 일어나서 컹컹 짖어댔다. 다행히 내가 납작하게 사정을 하기 전에 아까 인사를 나눈 아주머니들이 개를 진정시켜 주셔서 얼른 빠져나왔다. 비엔티안의 개들은 용맹하다. 총을 든 군인이나 파킹된 탱크보다 겁나는 것은바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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