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행한 산책을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인드라이브를 불러 왓 씨 므앙 사원으로 갔다. 캐리어를 달달달 끌고 다니며 한 바퀴 구경을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입구에서 꽃과 초를 사서 사원으로 들어가길래,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우리도 그들을 따라서 꽃과 초를 샀다. 캐리어는 잠시 사원 입구 옆에 놓아두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먼저 곁눈질로 지켜보고 그대로 따라서 쟁반에 꽃과 초를 담아 자리를 잡고, 앞에 있는 큰 초에서 불을 붙여와 촛농으로 작은 초 두 개를 꽃 앞에 세우고 기도를 했다. 이 사원이 기운이 세고 기도빨이 좋아서 현지 사람들도 많이 찾는 절이라고 해서 마음을 다해 소원을 빌었다. 먼저 이번 여행을 안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이 풍요롭고 행복하도록, 그리고 내 꿈이 이뤄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한동안 두 눈을 감고 진심을 담아 기도를 했다.
왓 시므앙에서 기도를 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라오스를 떠나기 전 했던 간절한 기도가 떠오른다.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먼저 말해두자면 나는 종교가 없다. 평생을 걸쳐 무교였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간절할 때는 기도를 하게 된다. 왓 시므앙에서는 들입다 꽃에다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를 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꽃을 부처님께 바치면서 기도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라오스에 오기 전에 했던 기도의 대상은 바로 카드였다. 신용카드, 체크카드 할 때 그 카드...
사건의 발단은 기차 예약이었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육로를 이용해 벤이나 슬리핑 버스를 타는 것으로, 비포장 도로를 7~8시간에 걸쳐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다. 기차가 들어서기 전에나 선택되던 방식으로 멀미가 심하고 한 시간이 아쉬운 우리에게는 이 방법은 선택지에 아예 없었다. 다음은 항공편이다. 비엔티안 공항에서 루앙프라방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라오에어와 라오스카이웨이가 있다. 라오에어는 라오스 국적기로 가격이 비교적 비싸고, 라오스카이웨이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라는 점에서 겁이 많은 감자씨가 "놉"을 외쳤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기차. 시내에서 역까지 이동하는 게 조금 번거롭지만 비엔티안역에서 루앙프라방역까지 가는데 2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고, 항공보다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기차표 예약이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어서 구매대행을 맡길까도 고민했지만, 그렇게 하면 가격이 항공권과 맞먹길래 예약방법을 열심히 검색했다. 어떤 리뷰에서는 라오스 현지 연락처가 없으면 가입이 안되기 때문에 이심을 미리 구입해서 가입해야 한다고 나와있지만, 현지 연락처 대신 이메일 주소를 쓰면 되는 거였다. 먼저 LCR ticket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회원가입을 했다. 기차표는 3일 전 현지 시간 기준으로 오전 6시 30분부터 예약을 할 수 있고, 카드결제는 VISA 카드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카드결제가 안 되는 오류가 많다고 해서 지갑을 탈탈 털어 비자카드 3개를 준비했다. 비엔티안에 도착한 다음날에 기차를 탈 예정이었어서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8시 30분에 미리 준비한 비자카드를 놓고 예매를 시도했다.
회원가입을 미리 해놓고 여권정보도 미리 입력해 뒀고, 카드도 준비해 놨기 때문에 모든 게 수월한 듯했다. 일자와 시간을 정하고 준비한 비자카드의 정보를 넣고 결제를 시도했다. 오류가 났다. 신에게는 비자카드 두 장이 남아 있습니다. 후훗 웃으며 경쾌한 손놀림으로 다음 비자카드 정보를 넣고 결제를 시도했다. 오류가 났다. 신에게는 비자카드 한 장이 남아 있습니다. 식은땀을 닦으며 다음 비자카드 정보를 넣고 결제를 시도했다. 젠장, 또 오류다. 마지막 비자카드는 후기를 찾아봤을 때 가장 결제오류에 대한 글이 많았던 트래블월렛이었다. 오류가 많다는 후기를 보고 지난 여행 이후로 어디 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카드를 미리 찾아두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들추며 찾아봤지만 카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졌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결제 방식 중 하나인 알리페이를 다운로드해서 결제를 시도했다. 급하게 계좌연결까지 했건만 라오스인이거나 중국인인 경우만 사용할 수 있다며 결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비자카드도 이제 없었다. 온 방을 헤집어 마지막 비자카드, 트래블월렛을 찾아냈다. 답답한 마음에 결제오류와 관련해서 검색을 하다 보니 비자카드 결제 오류 때문에 다들 카드에 기도를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예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하면서도 절박한 마음이 이성을 이겨버렸다. 카드를 이마에 갖다 대고 '제발 이번에는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고, 간절히 염원하여 떨리는 손으로 트래블월렛으로 결제를 시도했다. 됐다!!! 간절한 기도가 카드신에게 가 닿았던 걸까? 30분간 불통이던 결제가 완료가 됐다. 감자씨와 나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뻐했다. 아니 기차 예매가 이렇게 기쁠 일이던가.
아무튼 간절한 기도는 간절한 마음을 기도 대상에게 전달해 준다. 부처님이 아니라 꽃에 대고 해 버린 기도도 간절한 마음만은 어딘가에 닿아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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