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erialists> - 셀린 송
* 이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셀린 송 감독의 Materialists를 보고 왔다. 처음에 예고편과 마케팅만으로는 가벼운 삼각관계 로코물인 것 같았는데 감독이 셀린 송이라는 걸 알고는 개봉하면 봐야지 하고 있던 영화였다. 예습 삼아 감독의 전작인 Past lives도 챙겨 봤다. Past lives는 감독의 데뷔작인데 기예르모 델 토로가 최근 20년 간 최고의 데뷔작이라고 한 평에 납득이 갈 정도여서, 기대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Past lives가 신진 감독의 풋풋함이 거친 붓질로 그려진 느낌이라면, Materialist는 소묘 정밀화를 보는 것 같았다. 다만 앞쪽에 치중하느라 뒤쪽이 아쉬웠던. 에이 설마?를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결말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갔고 뒷맛은 텁텁하니 개운치가 못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는데 마무리를 하려니 현실도 생각해야 하고, 이래저래 결론을 내리려니 영 쉽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중반부까지 영화가 끊임없이 관객에게 던져대는 질문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왜 결혼을 하고 싶어요? 그럼 사랑은 뭐죠? 여기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와 함께 사랑의 의미가 요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질문들인데 2시간 내내 답을 찾느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전쟁 비극이나 재난 영화가 아닌데 한숨을 푹푹 쉬며 보게 될 줄이야.
사실 처음에는 포스터만 보고도 주인공이 두 남자 사이에서 왜 고민하지 싶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남자 해리와 답도 없는 꿈을 붙들고 37살의 나이에 룸메이트들과 사는 전 남자친구 존. 이제 사랑만으로는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는 나이인지라, 양자택일을 하라면 현실적으로 해리를 택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가난이 문을 두드리면 사랑은 창문으로 달아나 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이 선택은 점차 더 확실해져 갔다. 해리는 돈만 많은 게 아니었다. 180cm의 큰 키, 좋은 집안 출신에 일생을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는 똑똑하고 잘생긴 남자. 해리는 ‘유니콘’, 즉 소위 육각형, 그것도 아주 꽉 찬 육각형 남자로, 결정사의 뛰어난 매치메이커인 주인공 루시에게 굉장히 탐나는 고객이다. 하지만 처음 본 날 해리는 루시가 자신이 찾던 여자라고 확신하며 그녀의 영업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조건만으로 사람을 소개하면서도 결혼의 환상을 팔아 잠재 고객에게 영업을 하는 루시를 보며, 그녀의 영리함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해리의 구애. 매번 고급 레스토랑과 값비싼 꽃다발로 싫어할 여자가 없을 데이트를 선사하는 그에게 루시는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건지, 당신이 데려가는 곳이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이어서 훨씬 어리고 예쁘고 집안 좋은, 당신과 비슷한 여자를 만날 수 있으면서 왜 나를 만나느냐고 묻는다. 해리는 자신에게 어리고 예쁘고 순진하기만 한 여자는 필요 없다고 답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루시의 ‘무형 자산(intangible asset)’에 투자하는 거고, 그 자산은 앞으로 더 예리해질 거라며. 이 대목에서 나는 해리가 진정한 유니콘인 이유가 이 답변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요소 너머의 가치를 본 그의 안목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형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러했기 때문에.
자신을 가치 있게 바라봐 주는 해리에게 루시는 마음을 열고, 둘은 사귀지만 결국 루시가 이별을 고한다. 우리는 '투자'로 시작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거고 당신도 나도 사실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는 거라며. 테이블에 올려진 사랑이라는 물음 앞에 해리는 사랑은 너무 어렵고, 사랑 앞에서 아이가 되어 버린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반면에 루시는 데이트가 어렵지, 사랑은 쉽다고 말한다. 그냥 와 버리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새 삶에 들어와 버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정말 그런가? 정신 차려 보니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가 사랑인가? 일단 가치관과 주관이 다 정립되고 사회에서 자리 잡은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스며든다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운 좋게 삶에 사랑이 찾아온다고 한들, 그 사랑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나 역시 객관적인 지표 너머의 것들을 - 감정적으로 안정적이고 그릇이 큰, 함께 하며 성장할 수 있는 사람 - 이상형의 조건으로 바라 왔는데 여전히 이 또한 ‘무형 자산’이며 그런 사람과는 사랑이 아닌 비즈니스를 하는 것일까? 질문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후반부에 존의 입을 통해 나름의 답을 한다. 함께 행복을 꿈꾸고 싶어지는 것이라는. 이 답을 듣고 루시는 존에게로 돌아간다. 존이 내린 사랑의 정의에 공감하긴 하지만, 어째 이 한 줄로 루시의 선택이 설명된다고 보기에는 영 부족해 보인다. 그보다는 과거 5년 간의 연애 때문이라는 게 더 납득이 간다. 루시가 과연 지금 미래가 불투명한 37살 남자를 새로 만난다면 그를 택할까? 어쩌면 정신 차려 보니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건 운명이라기보다 관성일지도 모른다.
냉정한 해석을 내렸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사랑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앞으로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송두리째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운명처럼 찾아온다면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이토록 중요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과연 찾아온 운명이 낭만적 신기루는 아닐지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 한편, 사랑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여전히 사랑이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간 수없이 바뀌어온 내 사랑의 정의들은 앞으로도 계속 변해 갈 것이다. 다만 언젠가 내게 답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랄 뿐.